천년의 도시 경주 K-컬처와 함께 세계를 잇다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APEC 정상회의 주간인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개최 도시인 경북 경주시에선 최종고위관리회의, 최고경영자회의,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에 이어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간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를 위해 21개 회원국 정상과 관계장관, 경제인, 언론인 등 2만여 명이 경주를 찾을 예정이다.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는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신라 천년 고도(古都)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과 풍경이 넘친다. ‘K-컬처’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진 지금 APEC 정상회의 참가자들에게 경주에서 만나는 풍경과 문화공연, 체험 등은 한국에 대한 새로운 기억과 함께 K-컬처를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K-컬처’의 뿌리와 현재, 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관광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인 김민석 국무총리는 8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문화·관광 분야 점검회의에서 “세계유산도시 경주의 특성을 감안해 세계유산을 활용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운영할 계획이고 20곳 11개 여행 코스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관광 코스는 대릉원, 첨성대, 월정교, 동궁과 월지 등 유명 문화유산을 거점으로 삼아 구성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APEC 정상회의 참가자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한국관광 홍보관’과 체험형 홍보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신라 금관 6점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이는 금관 특별전과 ‘K-팝’ 공연, 한복패션쇼, 멀티미디어 아트쇼 등도 열린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경주를 ‘K-공감’이 미리 다녀왔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가족과 함께 다녀오기에도 좋은 주요 코스와 문화공연·행사들을 소개한다.



신라의 랜드마크 ‘황룡사’
신라 제27대 왕으로 즉위한 선덕여왕(재위 632~647)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높이가 80m로 동아시아 최고층 건축물이었던 이 탑은 당나라와 왜국 사신들이 신라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랜드마크였다. 고려 고종 25년인 1238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불에 타 소실되기까지 600여 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9층 목탑과 함께 황룡사 가람 역시 불에 타 사라졌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부터 90여 년에 걸쳐 조성한 신라 최대 사찰이자 동아시아 최대 사찰이었다. 동서 길이 288m, 남북 길이 281m, 총면적은 8만 928㎡에 달했다. 지금은 광활한 대지에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한 건물터와 주춧돌 일부만 남아 있다.
신라를 대표하는 황룡사와 황룡사 9층 석탑의 위용은 ‘황룡사역사문화관’에서 체감할 수 있다. 황룡사지 바로 옆에 위치한 역사문화관은 황룡사 상징인 9층 목탑 10분의 1 크기의 모형탑 전시실과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 전 과정을 소개하는 3차원(3D) 입체 영상실, 출토 유물이 있는 신라역사 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황룡사 9층 목탑 모형은 실제 탑을 축소한 것이지만 높이가 8m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이 탑을 제작하는 데 4만 2000개의 나무 부재와 8만 5000장의 동기와가 사용됐다. 탑 사면 중 북쪽은 각 층의 탑 난간과 지붕에 기와를 얹지 않아 관람객이 목탑의 내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게 특징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신라시대 황룡사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3D 입체 영상물도 인상적이다.
황룡사지와 황룡사역사문화관 일대는 밤에도 아름답다. 주변 탐방로에 경관조명이 설치돼 있어서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옆으로 눕혀 놓은 형상의 조명을 따라 밤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
신라의 달밤은 ‘동궁과 월지’에서 만끽할 수 있다. 동궁과 월지는 왕자가 머물던 ‘동궁’과 달빛이 물에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를 일컫는다. 신라가 삼국을 제패한 직후 문무왕은 경주 월성 동쪽에 별궁을 짓는다. 왕자의 거처인 동궁이다. 동궁 앞에 큰 연못도 조성했는데 이게 바로 월지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 총둘레 1㎞ 크기의 저수지에 세 개의 인공섬을 만들고 못의 북동쪽으로 열두 봉우리의 인공 산을 만들어 진귀한 꽃과 나무, 그리고 짐승들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에서 신라는 국가적 경사가 생겼을 때 축하연을 거행했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조경예술의 극치를 만날 수 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월지는 남서쪽은 직선인 데 반해 북동쪽은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못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없어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은 느낌을 준다. 연회장소로 쓰인 건물인 ‘임해전(臨海殿)’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월지의 조경이 바다를 표현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해가 지면 그 진가가 확실히 드러난다. 동궁과 월지는 일몰 직후 경관 조명이 켜지면 연못에 비친 전각과 석축이 물에 일렁이며 장관을 이룬다. 임해전 맞은편 연못가에서 보는 야경이 가장 아름답다. 동궁과 월지 입장 마감은 오후 9시 30분, 경관 조명은 오후 10시까지 켜진다.
‘월정교’ 역시 야경 명소로 인기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월정교는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던 다리로 조선시대에 유실됐다가 2018년 4월 정교한 고증과 복원 과정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로 다리 양끝에 문루(門樓)가 두 개 세워져 있다. 고대 교량 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는 월정교는 다리 위에 지붕이 있고 양 끝에 누각의 웅장함이 더해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새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월성을 휘감아 흘러내리는 남천 위에 웅장하게 자리한 다리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야경이 더 유명하다. 특히 월정교 바깥쪽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일품이다. 월정교 앞에 설치된 징검다리도 건너보길 권한다. 강 위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월정교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인증샷 명소 ‘대릉원’
도심 한가운데 거대한 고분이 올록볼록 솟아 있는 모습은 경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고분의 도시’라고 불리는 경주에선 신라시대 왕과 귀족들의 무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대릉원’은 그중에서도 미추왕릉과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 모여 있는 대규모 고분군으로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지 중 하나다. 12만 6500㎡에 달하는 넓은 땅에 신라시대 고분 23기가 모여 있다. 대릉원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이 백성에 대한 정성이 높아 신하를 각지에 파견해 백성들의 애환을 듣게 했다. 재위 23년 만에 돌아가니 대릉에 장사 지냈다’라는 기록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추왕릉은 대릉원에 있는 고분 중에서 유일하게 주인이 알려진 능이다.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 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제13대 왕인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대릉원의 수많은 고분 가운데 미추왕릉을 제외하고는 관련 기록이 부족해 대부분 왕릉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무덤(높이 23m·길이 120m) 5만 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나온 황남대총조차 무덤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는 근거가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 황남대총 너머에 위치한 ‘목련 포토존’은 누리소통망(SNS)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대릉원 인증샷 찍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주말에는 무덤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들이 일렬로 줄을 서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금관총은 1921년 가옥 공사 중 우연히 신라 금관이 발견되면서 붙은 무덤 이름이다. 당시 금관 외에도 유물 3만 개가 출토됐다. 그러나 정식 발굴조사가 아닌 데다 고분이 상당 부분 파손돼 무덤 구조나 유물의 정확한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천마총은 대릉원에서 유일하게 내부 관람이 가능한 고분이다. 천마총 내부에선 천마도와 금관, 금제 허리띠 등 각종 유물이 발견돼 신라시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됐다.
대릉원과 맞닿은 관광지 ‘황리단길’도 경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황리단길은 황남동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을 합친 이름으로 대릉원 입구에서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 이어진 700m의 도로와 대릉원 서편 450m가량의 돌담길을 일컫는다. 원래 경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인근에 대릉원과 첨성대 등의 사적지가 있고 1960~70년대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이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경주의 명물 거리가 됐다. 한옥 형태의 카페와 음식점들이 주를 이루며 금관과 귀걸이 등 신라 전통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위치해 있다.
대릉원에서 남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신라시대의 천문 관측 시설인 ‘첨성대’가 나온다. 9~11월이면 첨성대 바로 옆에 위치한 핑크뮬리 군락지에 핑크빛 핑크뮬리가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첨성대와 함께 낭만적인 가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강정미 기자



2025년 APEC 정상회의 기념 문화 행사
신라 금관 특별전, 한복 패션쇼… 보고 즐기고 체험까지!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기념하는 문화 행사도 경주에서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시대 금관 6개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신라 금관 특별전’이 열린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대 순금 금관 13개 중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금관이 7개인데 그중 가야 금관 1개를 제외한 신라 금관이 총집결하는 것이다.
신라 금관은 1921년 금관총 금관을 시작으로 1924년 금령총 금관, 1926년 서봉총 금관, 1972년 교동 금관, 1973년 천마총 금관, 1974년 황남대총 북분 금관이 차례로 발굴돼 서울과 경주, 청주 등에서 전시돼왔다. 모두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0월 31일부터 이틀간 특별전을 열고 각국 정상에게 신라 금관을 선보인 뒤 12월 14일까지 일반에게도 공개한다.
우양미술관에서는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해 현대미술의 거장 백남준의 미공개 작품 12점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인 ‘나의 파우스트’ 연작 중 ‘경제학’과 ‘영원성’ 두 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특별전은 11월 30일까지 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의 미(美)’를 보여줄 한복 패션쇼도 열린다. 10월 29일 ‘우리 한복, 내일을 날다’를 주제로 경주 월정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한복 명장 강미자 씨를 비롯한 유명 한복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50~60여 벌의 한복을 선보인다. 특히 한복·한글·한지·한옥·한식 등 한국의 ‘5한(韓)’ 전통문화를 융합한 독창적인 무대를 통해 한복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알린다. 이밖에 신라 문화와 한복을 접목한 ‘신라 복식’, 인공지능(AI)과 한복을 융합한 ‘AI 복식’, APEC 회원국 정상 및 영부인 선물용 한복 등도 무대에 오른다.
APEC 정상회의장과 미디어센터가 있는 보문단지에서는 융복합멀티미디어아트쇼가 열린다. 보문호를 배경으로 10월 17일부터 11월까지 음악과 영상, 불꽃, 레이저, 드론 등 다양한 미디어가 결합된 야간 공연이 펼쳐진다. 보문호 호반광장부터 수상공연장까지 ‘달이 머문 천년의 신라, 세계를 잇다’를 주제로 APEC 21개 회원국을 상징하는 21개 고화질 발광다이오드(LED) 미디어폴을 설치·상시 운영한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10월 29일까지 경주 교촌마을과 첨성대, 육부촌에서 전통예술공연인 ‘서라벌 풍류’를 개최한다. 창작국악, 국악관현악, 무용, 연희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선보인다.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단심(單沈)’이 무대에 오른다. 고전 설화 ‘심청’을 기반으로 하는 단심은 심청의 효심과 내면을 현대적 감각의 LED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경주 동부사적지 일원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첨성대에 행차하다’ 행사가 열린다. 9월 13일 첫 행사를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 정오와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진행된다. 신라문화콘텐츠개발원이 주최·주관하고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선덕여왕이 금관을 쓰고 가마 ‘보연’에 올라 행차하는 장면을 재현한다. 행렬 종료 후에는 첨성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행사 시작 1시간 전 등록하면 관광객도 행렬에 참여할 수 있다. 또 경주향교 뒤 분장실에서는 신라 전통복식 착용과 금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