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 고령화 농촌 AI에 맡겨! 트랙터가 알아서 밭 갈고 수확까지

밭으로 간 AI
경남 함양군의 한 양파밭, 트랙터 한 대가 종횡무진 밭을 누빈다. 달리는 트랙터 뒤쪽으로는 굵직한 양파들이 쏟아진다. 방금 전까지 땅속의 양분을 흡수한 양파에선 달달하고 매콤한 향이 진동했다. 그런데 트랙터에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없다. 작업자가 앉아 있긴 하지만 딱히 하는 일은 없다. 트랙터에서 내린 농부 이홍주 씨는 “트랙터가 스스로 주행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며 웃었다.
이 트랙터는 자율주행을 위한 자동조향장치를 장착한 트랙터다. 정부가 2021년 개발에 성공, 2023년도부터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각종 카메라와 센서, 전동 핸들 등으로 구성된 이 장치를 트랙터에 적용하면 자율주행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자율주행은 카메라, 레이더, 초음파 등 여러 센서를 통한 데이터 수집과 딥러닝 기반 학습, 실시간 판단·제어 등 다양한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으로 차량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술이다. 이 씨를 비롯한 함양의 양파 농가 10곳은 자동조향장치와 자율주행 트랙터 등을 지원받아 효과를 검증하는 사업에 참여해왔다.
이처럼 농촌에도 AI 바람이 뜨겁다. AI 기술을 활용한 자율주행차가 도로가 아닌 밭을 누비며 활약하고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했던 방제(해충을 예방하거나 제거하는 일), 수확도 이제는 AI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 위기의 농촌 해결사로 AI가 나섰다.



작업 시간은 줄고 생산성은 높이고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자율주행 트랙터와 자동조향장치를 비롯한 농업용 로봇의 2023년도 실증 사업성과에 따르면 2975㎡(900평) 기준 관행 농기계는 모나 모종을 16골(두둑과 두둑 사이)로 이식하지만 자율주행 트랙터는 17골로 정밀 이식이 가능해 토지 이용 효율이 6% 증가했다.
고정밀 위성항법장치(RTK-GNSS)를 사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 차량의 내비게이션은 1m 정도의 오차가 발생해도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농진청이 개발한 자율주행 기술은 오차가 7㎝에 불과하다. 그만큼 정확한 주행이 가능하다. 생산량도 이에 비례해 10아르(1000㎡) 기준 시 연 436㎏가량이 증가했고 작업 시간은 20% 감소했다.
모나 모종을 심는 정식 작업 때는 더 도움이 된다. 일반 트랙터의 경우 운전을 하면서 기계가 지나간 자리에 제대로 작업이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거나 직접 걸으며 다시 둘러봐야 했다. 이제 운전은 AI에 맡기고 농부는 가만히 앉아서 확인만 하면 된다.
수확 현장에 함께한 농진청 농업로봇과 김국환 연구관은 “마늘 농가에서 현장 실증 사업을 수행했는데 ‘운전과 결주(마늘 모종이 제대로 심어지지 않는 일) 확인을 동시에 하지 않아도 돼 작업 피로도가 상당히 줄었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전했다. 김 연구관은 자율주행 트랙터, 자동조향장치 등의 개발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방제 로봇·운반 로봇·모니터링 로봇…
노지뿐만 아니라 온실 등 시설 농업 부문에도 AI 기술은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 적용 사례가 농진청이 개발한 방제·운반·모니터링 로봇이다. 이 로봇들은 농촌의 생산인력 감소에 대응하는 한편 스마트팜 규모가 급속하게 대형화되는 추세를 반영해 농진청이 방제 로봇을 시작으로 2022년부터 매년 하나씩 순차적으로 개발해왔다.
방제 로봇은 과수에만 농약을 살포하도록 설계, 방제 시 적정량의 농약을 사용해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작업자의 건강을 보호한다. 사람이 할 때보다 작업 시간도 40% 줄었다. 완전 무인화 시스템으로 작업자가 없는 조건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특수 방제까지 실시할 수 있어 방제 효과도 15% 더 높다.
AI·거리 측정 기술을 적용한 운반 로봇은 작업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다니면서 수확한 작물을 싣고 집하장까지 운반한 다음 작업자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작업자가 수레 등에 수확물을 담아 옮겨야 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획기적으로 작업량·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실시간으로 수확물의 무게를 측정해 일일이 무게를 다는 과정 또한 필요 없어 생산량 관리 역시 쉬워졌다. 이 로봇은 10시간 이상 연속 작동하며 1회 최대 300㎏까지 운반할 수 있다.
현장 실증 연구에 참여한 한 토마토 농장의 대표는 “온실 작업 가운데 가장 힘든 부분이 수확 및 운반인데 로봇을 활용하면 농가의 일손 부족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니터링 로봇은 작업자의 확인 없이도 카메라 영상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작물의 익은 정도를 파악해 수확 적기를 알려준다. 이 로봇의 열매 인식 정확도는 93.8%, 수확 시기 예측 정확도는 97.7%다. 수집한 정보는 농업인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농업인은 생육 정보와 시장 가격 등을 바탕으로 온실 환경(온도, 영양액 등)을 조절해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 생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수확 시기를 결정한다.
농진청은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 사업을 펼치는 것을 넘어 자율주행 트랙터, 자동조향장치, 방제 로봇 등의 실개발에 필요한 기술 17건을 민간에 이전하는 등 산업화에도 성공했다.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자율주행 트랙터나 자동조향장치 외 농업 로봇의 사용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2024년 운반 로봇 10대를 전국 농가에 보급한 데 이어 올해도 운반 로봇 13대, 방제 로봇 10대 보급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농업기술은 현재도 진화중이다. 토양 내 수분 함량을 나타내는 지표인 ‘토양 수분 장력’ 데이터를 활용해 적기에 물을 공급, 생산성을 20% 높이는 ‘스마트 관수 기술’과 벌집판을 촬영하면 30초 안에 해충인 꿀벌응애 감염 여부를 알려주는 꿀벌응애 검출장치 등도 개발을 마친 상태다. 내일은 또 어떤 기술이 우리 농촌의 미래를 바꿀지 기대된다.

고유선 기자

(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