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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승강장 밑 미술관 비밀의 문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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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지하 7 SeMA 벙커(이하 벙커)의 주소를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앱)에 입력하니 여의도환승센터와 신한투자증권타워 사이 인도에 도착지가 찍혔다. 한때 출퇴근을 한 동네라 아주 익숙한 곳이었다. 순간 그곳에 미술관이 있었나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보면 알겠거니 싶었지만 미술관이 가까워질수록 의문은 커졌다. ‘여기 무슨 미술관이 있다는 거지?’ 두리번거리던 와중에 벙커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저게 미술관이었다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수없이 지나쳤던 곳이다. 미술관이라고 글씨가 떡하니 붙어 있어도 그냥 지하철이나 지하상가 입구쯤으로 인식하고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게다가 벙커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하나는 엘리베이터라 지하철 노약자 전용 출입구로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지하로 좁고 길게 난 계단이라 쉽게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바쁘게 벙커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도 벙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경우는 없어 보였다.



여의도에 영화 ‘해리포터’의 마법의 승강장이?
영화 ‘해리포터’에 9와 4분의 3 승강장이 있다면 한국에는 여의도환승센터 2번 버스 승강장이 있다. 9와 4분의 3 승강장은 주인공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행 기차를 타는 가상의 승강장으로 벽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해리도 처음엔 이 승강장을 찾지 못해 무척 헤맨다. 비록 마법학교는 아니지만 그와 견줄 만한 미스터리함을 가진 곳이 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벙커다. 위치부터가 여의도환승센터 2번 버스 승강장 아래다. 입구도 느닷없다.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 있다.
벙커의 정식 명칭은 ‘SeMA(Seoul Museum of Art·서울시립미술관) 벙커’다.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여의도에 특화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벙커는 그동안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가 2005년 여의도환승센터 건립을 위한 현지조사 도중 발견됐다. 서울시는 발견 이듬해인 2006년 하반기에 이를 간이화장실, 매점, 휴게실 등을 갖춘 시민 편의시설로 바꿔 개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동시에 인근에 들어설 서울국제금융센터와 벙커를 지하로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벙커가 지하인 데다 유동인구가 적어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내려지면서 폐쇄 조치됐고 다시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러다 2013년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2015년 벙커를 발견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일반에 공개하는 시민 체험 행사를 개최했다. 이때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후 설계 및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현재 약 495㎡의 전시실과 65㎡의 역사갤러리로 탈바꿈했다. 2017년 10월 19일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 및 관리를 맡아 정식 개관에 이르렀다.
새롭게 단장을 했다지만 벙커에선 지하실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느껴졌다. 지하로 난 좁고 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이내 낡고 닳고 실금이 간 당시의 바닥 타일과 하얗게 칠해진 벽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한때 지하 벙커였다는 게 실감났다. 전시실에는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11월 19일까지)’의 일환으로 비디오 설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빛을 이용한 작품들이 자아내는 빛과 그림자가 벙커의 비밀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누가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벙커 안을 돌아볼수록 궁금증은 커졌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공간
2005년 4월 서울 여의도환승센터를 지으려던 서울시 건설안전본부 직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투자증권타워) 본점 앞에서 찻길을 건너 마주한 화단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 철제문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철거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현장 사람들은 궁리 끝에 철제문 안으로 ‘내시경’을 넣어보기로 했다. 벙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발견된 지하 공간은 소파, 화장실을 갖춘 VIP실, 지휘대, 기계실이 있는 수행원 대기실, 그리고 3개 출구로 구성돼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595㎡나 되는 지하 시설이 어떻게 비밀리에 존재해왔을까? 자물쇠가 굳게 잠긴 철문, 최고급 소파, 화장실, 전화 200여 대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단자함까지 온갖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차고 넘쳤다. 벙커는 국토교통부의 지하시설물 도면에도 기록돼 있지 않았다. 수도방위사령부에도 해당 기록이 없었다. 관련 자료도 없고 소관 부처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당시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공사를 진행한 서울시는 물론 국방부도 ‘기록이 없다’, ‘존재 자체를 모른다’, ‘군사 시설이 아니다’라는 반응이었다. 대통령경호실이나 국가정보원 등에서는 아예 언급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입장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1970년대 여의도 5·16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국군의 날 행사가 개최됐을 당시 사열대와 벙커의 위치가 일치한다는 점, 관련 자료가 전무하다는 사실 등을 볼 때 ‘박정희정부 때 유사시 요인 대피용 방공호가 아니었을까?’ 추정할 뿐이다. 서울시가 보유하고 있는 항공사진 확인 결과 벙커의 출입구는 1977년 이후 자료부터 표시돼 있다. 때문에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벙커는 의문투성이다.





시민 위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전시실 한쪽에 난 작은 통로를 따라가면 역사갤러리가 있다. 벙커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재해석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벙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비디오 설치 작품의 조명 때문에 몽환적인 분위기의 전시실과 달리 역사갤러리는 환하게 형광등이 켜져 있다. 바닥이며 벽까지 온통 타일로 이뤄진 역사갤러리 한가운데에는 당시 VIP실에서 발견된 최고급 소파가 놓여 있다. 안쪽에는 세면대와 좌변기도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전시품이 있었다. 바로 벙커의 콘크리트 두께를 확인해볼 수 있는 코어 조각이다. 지표면에서 2.2m 아래 위치한 벙커는 천장과 바닥, 벽 모두 50㎝ 두께의 콘크리트로 이뤄져 있다. 콘크리트 단면을 잘라보면 얼마나 강도 높은 재료를 사용했는지 공극(작은 구멍이나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외부의 폭격을 피하기 위한 용도로 설계됐을 것이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여의도 비행장이 5·16광장으로 조성된 것은 1970년 10월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불러 광장 조성을 지시했고 1971년 국군의 날 열병식이 이곳에서 열리면서 광장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국군의 날 행사는 야외광장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뻥 뚫린 야외 행사에서 대통령 경호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벙커가 발견됐을 당시 화장실 변기에 붙어 있는 점검표에는 연도 없이 ‘9월 30일’이라는 점검 날짜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역사갤리리에도 자료로 전시돼 있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 여의도에서 충남 계룡대로 국군의 날 행사 장소가 바뀐 것이 1993년부터이니 점검표의 9월 30일은 1992년이 아닐까?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벙커는 이제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벙커는 질곡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감춰진 시간에 ‘문화’의 향기를 덧입히고 또 다른 역사가 쌓여가는 벙커는 살아 있는 교과서인 셈이다.

강은진


관람안내
평일(화~금) 오전 11시~오후 7시
토·일·공휴일 오전 11시~오후 7시
휴관 1월 1일 ,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입장시간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관람료무료
주소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지하 76(여의도동)
문의02-2124-8946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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