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한국 양궁 11점제 도입 호재일까, 악재일까?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농구에서 ‘3점슛’ 도입은 1979년 미국 프로농구(NBA)가 시초다. 이전에는 공을 림 바로 아래에서 넣든 20m가 넘는 장거리 슛을 집어넣든 필드골은 모두 2점으로 처리했다. 3점슛 규정이 생기면서 플레이의 양상은 달라졌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양궁에도 변화의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른바 ‘양궁 11점제’가 도입된 것이다. 현재는 시험 단계지만 2028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부터 공식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
‘X10’ 맞히면 1점 더해 11점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우리나라 김경욱 선수는 여자양궁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이때 그는 10점 과녁 정중앙에 설치된 지름 1㎝ 카메라 렌즈를 두 번이나 깨트리면서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관중들 사이에선 “11점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로부터 29년이 흐른 올해 5월 세계양궁연맹은 마침내 11점제를 시험 운영했다. 그 첫 무대는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린 2025 현대 양궁 월드컵 3차 대회였다. 10점 과녁 안쪽에 있는 더 작은 원, 이른바 ‘엑스텐(X10)’이라 불리는 위치에 화살을 맞히면 1점을 더해 11점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즉 70m 떨어진 거리에서 500원짜리 동전 두 개 정도 크기의 원을 명중시키면 11점이다. 엑스텐은 지름이 6.1㎝에 불과하다.
11점제에선 세트당 기존보다 3~6점까지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체 승패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변은 실제로 발생했다. 이 대회 남자 개인 32강전에서 김우진이 패배한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 3관왕에 올랐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 김우진은 남자 단체전, 혼성 단체전에선 우승을 차지했지만 남자 개인 32강에서 세계 랭킹 10위의 스페인의 안드레스 테미노와 맞붙어 패배했다. 만약 11점제가 없었다면 김우진이 승리하는 경기였다. 승부처인 3세트에서 김우진은 10-10-9를 쐈는데 상대가 11-11-8로 엑스텐을 두 발 쏘면서 1점 뒤진 것이다. 종전처럼 10점 만점제였다면 김우진이 29점, 상대가 28점으로 승부가 달라졌다.
반면 여자부 세계 최강 임시현은 11점제의 이득을 보기도 했다. 16강전에서 우크라이나의 아나스타샤 파블로바에게 6대 2로 승리했는데 이때 4세트까지 전체 열두 발의 화살 중 다섯 발을 엑스텐에 명중시키며 3세트를 먼저 따냈다. 만약 10점제 방식이었다면 이 경기는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졌을 것이고 승패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11점제, 한국 견제 위한 선택?
이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며 세계 정상을 재확인했다. 대한양궁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11점제는 우리 양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11점제가 한국 양궁에는 다소 유리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5월 중국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단체전 기록을 분석해보면 리커브 남자 대표팀은 전체 화살의 59%를 10점에 꽂아 넣었고 그중 47%가 엑스텐이었다. 반면 외국 선수들의 10점 화살 비율은 40%로 한국보다 낮은 데다 그중에서도 31%만이 엑스텐에 들어갔다.
여자 대표팀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결국 10점을 많이 쏴야 엑스텐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는데 한국 양궁은 현재 10점 비율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서 매우 높다. 지난해 파리올림픽 결과를 놓고 분석해도 마찬가지다. 임시현은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10점은 실력이지만 엑스텐은 운이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제는 운이면 안되는구나,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7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월드컵 4차 대회에서는 11점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9월 5일 우리나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도 종전대로 10점제로 치러졌다. 하지만 세계양궁연맹은 11점제 도입을 계속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1점제가 처음 도입된 월드컵 3차 대회에서 세계 최강 김우진이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한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11점제가 양궁의 의외성을 높일 수 있고 시청자의 흥미를 더 자극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양궁이 절대 강자로 군림하자 연맹은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경기 방식을 숱하게 변경해왔지만 우리 대표팀은 40년 넘게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대한양궁협회는 만약 내년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1점제가 도입된다면 2028 LA올림픽에서도 11점제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호진수 양궁 국가대표팀 감독은 “주요 대회 데이터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최종 순위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우리 선수들의 엑스텐 명중 수가 월등히 많은 만큼 더욱 자신감 있게 경기에 임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권종오 SBS 기자
1991년 SBS에 입사해 30년 넘게 축구, 야구, 농구, 골프 등 모든 종목의 스포츠 경기 현장을 누볐다. SBS 유튜브 채널인 ‘스포츠머그’에서 ‘별별스포츠’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자료제공 :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