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뿌리 찾는 일은 나를 찾는 일, 독립운동가 외조부처럼 한국에 기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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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귀화 신청 재미동포 글렌 윈켈
“태극기는 이렇게 드는 게 맞죠?”
광복 80주년을 앞둔 7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글렌 윈켈(Glen Winkel·신대현, 70)이 손에 쥔 태극기를 바로잡으며 물었다. 한국어로는 간단한 인사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자신이 들고 있는 태극기의 의미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고향을 미국 하와이로 알았던 그는 불과 몇 년 전에야 자신이 한국인 핏줄이라는 것을, 그것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후 그는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왔다. 2023년 난생처음 한국 땅을 밟고 강원 춘천에 자리를 잡은 그는 글렌 윈켈이 아닌 ‘신대현’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특별귀화를 신청하고 현재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미국 뉴욕 태생인 그는 한국계 어머니와 덴마크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독립운동가 고 신을노(1894~1966) 선생의 외손자다. 신을노 선생은 1943년 하와이에서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총지부 집행위원과 정신부장 등으로 활동하며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운동 자금을 댔다.
외조부 신을노의 존재는 그가 한국에서의 삶을 위해 F-4(한때 대한민국 국적이었거나 부모 또는 조부모 중 한 명이 대한민국 국적이었던 외국적 재외동포 대상)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비자 신청 조건에 재미동포를 증명하는 근거 자료가 필요했지만 그의 가족 역사를 확인시켜줄 자료가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미국 이민국, 족보 관련 웹사이트 등을 뒤지고 수많은 자료를 추적해나갔다. 조각조각 흩어진 흔적들을 모으고 분석한 끝에 외조부인 독립운동가 신을노의 존재가 밝혀졌다.
지난 2월 말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 및 제106주년 3·1절을 맞아 신을노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윈켈이 이를 대신 받았다.
그가 처음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날은 2023년 2월 14일로 “사랑을 상징하는 밸런타인데이에 일부러 맞췄다. 한국에 대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아직은 낯선 나라를 배우고 있는 그를 만났다.
어머니가 한국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고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2020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어요. 유산 집행인 역할을 맡아 어머니가 평생 간직해온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어머니의 삶 속에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생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데다 친척들 간에 교류가 많지 않았거든요. 제가 알고 있던 건 조상들이 1903년 12월 5일 도릭호(S.S. Doric)를 타고 부산에서 하와이로 이민을 왔다는 정보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왜 한국계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을까요?
어머니께서는 1946년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하와이를 떠나 뉴욕에 정착하셨어요. 당시 뉴욕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고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하다보니 일부러 하와이 출신이라고만 밝힌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살았던 거죠. 어머니가 한국계라는 것을 알고 우리 가족의 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2023년 무작정 한국을 찾았어요. 외할아버지가 한국인이니 F-4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신청하려고 보니 제출할 근거 자료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담당 변호사도 F-5(영주권) 비자 신청을 권유했어요. 하지만 저는 제 뿌리를 증명할 F-4 비자를 꼭 받고 싶었습니다. 외가 쪽이 부산에서 미국으로 배를 타고 떠났다는 단서만 가지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외할아버지가 한국과 훨씬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1년 가까이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고 자료를 모았어요. 그리고 2024년 2월 14일 F-4 비자가 발급될 예정이라는 편지를 받았어요. 편지에는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단서도 많지 않고 관련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에는 참고할 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한국 이민사를 다룬 서적(The Korean Frontier in America, The Koreans in Hawaii)들과 온라인 자료들을 참고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모두 1903년 초 한국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하와이에 정착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한인 이민자들이 탑승한 배 목록을 정리한 자료를 발견했어요. 족보 관련 웹사이트들과 다양한 자료를 비교하고 미국 이민청(USCIS)으로부터 외할아버지의 관련 문서를 받아낸 끝에 퍼즐을 맞출 수 있었어요. 증조부의 이름도 찾았지만 그분들이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가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것을 알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어요. ‘독립운동가’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고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실감하지 못했어요. 외할아버지가 예전에 해외를 다녔다는 이야기는 어머니로부터 들었지만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한국에 와서 역사 공부를 하면서 점점 깨닫고 있어요. 외할아버지가 하신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 한국 사람들이 독립운동가에 대해 얼마나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지를요.
외조부에 대한 기억은 있나요?
제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또렷한 기억은 없어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할아버지가 영어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늘 말씀이 적고 조용한 분으로 기억돼요.
가족의 뿌리를 되짚는 여정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많은 사람이 과거에 대해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과거는, 그리고 가족의 역사는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뿌리이자 일부예요. 뿌리를 되짚어가면서 나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국에 와야 했던 이유가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은 당신에게 어떤 곳인가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이곳이 단지 ‘어머니의 뿌리’가 있는 나라 정도로만 느껴졌어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한국어도 전혀 못했죠. 그저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던 가족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은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곳이 됐어요. 외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한국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더욱 진중하게 다가옵니다.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 덕분에 더 깊은 애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건강과 영양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주로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맞춤형 식단이나 회복 전략 등을 설계해주는 일을 했어요.
귀화가 승인되면 한국 국적자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둔 글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공개하긴 어렵지만 신 씨 일가를 찾는 것 외에 제가 한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담겨 있어요. 그 사명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지금은 국제학생회(IFS) 활동을 도우며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을 돕고 있어요.
왜 정착지로 춘천을 선택했나요?
처음에는 제 선조들이 춘천에 묻혀 있다고 생각했어요. 평산 신씨가 춘천에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하지만 제 외가는 영산 신씨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어요. 춘천에 벨로드롬(사이클 전용 경기장)이 있다는 이유도 컸어요. 나중에야 그 시설이 서울 강남으로 이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요. 그런데 살아보니 춘천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예요. 수력발전댐이 세 곳이나 있어서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는 철학적으로 잘 맞는 도시였어요. 과학도인 제게 바이오산업진흥원도 인상 깊었고요. 또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를 보고 춘천의 자연 풍경에 반했어요.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 한적한 것도 좋고 생활비도 다른 도시에 비해 저렴한 것 같아요.
한국 문화에서 특히 좋아하는 점이 있나요?
사회 전반에 일관성과 안정감이 느껴져요. 미국은 말 그대로 ‘아무거나 다 되는’ 문화라면 한국은 일정한 규범과 질서가 살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게 변화를 더디게 만든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지켜주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꼭 말하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늘 어딘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한국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서로를 배려하고 섬기는 방식이 정말 닮았다고 느꼈어요. 그때 처음 ‘내가 미국 문화에 잘 맞지 않았던 이유가 내 안의 한국적 가치 때문이었구나’를 깨달았어요. 한국에서 살아보니 예상보다 훨씬 큰 안정감을 느낍니다. 한국은 마치 ‘삶이 원래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 현실인 곳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한국 사회나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모든 한국인이 자주적인 정신과 자유를 지켜온 이들의 후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유를 지키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환경,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 진정한 독립은 태도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주변의 삶에서도 진정한 독립을 실현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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