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의 전설과 ‘절대강자’ 여제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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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다시 최강의 자리를 노린다. 지난 4월 대한민국 배드민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주봉 감독은 선수 시절인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과 1996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은메달을 비롯해 숱한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며 한국 배드민턴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지도자의 길에 나선 뒤에도 배드민턴의 변방 일본을 세계 정상급으로 이끌며 실력을 입증했다. 환갑이 넘은 61세의 사령탑은 이제 여자단식 세계 최강 안세영의 조련사로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있다.
‘지옥훈련’에 선수촌 분위기 싹 달라져
박 감독이 부임한 이후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선수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변화는 엄청난 훈련량이다. 배드민턴 남자복식 국가대표 서승재는 “하루가 너무 길다”며 혀를 내둘렀다. 여자복식 김혜정은 “너무 힘들지만 버티고 있다”며 굵은 땀방울을 떨궜다. 박 감독은 코트를 돌며 선수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일일이 확인하고 직접 라켓을 휘두르며 훈련 파트너를 자처했다. 60대 지도자가 먼저 열정을 불태우자 선수들도 쉴 새 없이 몸을 날리며 셔틀콕을 받아냈다. 박 감독은 “좀 소리를 질러가면서 훈련을 해야지 선수도 따라오고 분위기도 살아난다. 그동안 해온 틀에서 벗어나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부임하자 배드민턴 여자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에게도 더 큰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완료형 전설’ 박 감독과 ‘진행형 전설’ 안세영의 만남이 빚어낼 시너지에 대한 관심이다. 자타공인 ‘체력왕’ 안세영도 박 감독의 지옥훈련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매번 이번 주를 넘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털어놨다.
안세영은 6월 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끝난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인도네시아오픈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중국 왕즈이를 2대 1로 꺾고 대회 정상에 오르며 세계 1위 자리를 지켜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의 기량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게 박 감독의 생각이다. 지난 5월 개최된 BWF 월드투어 슈퍼 750 싱가포르오픈 8강에서 중국의 숙적 천위페이에게 0대 2로 완패한 것이 한 예다. 박 감독은 “안세영은 대회 때마다 막강한 중국·일본 선수들 사이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들 모두 세계 1위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만큼 우리도 상대를 더 세밀히 파악하고 훈련 방식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세영을 만나는 상대들은 어차피 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덤비는 덕에 경기가 타이트해지는 반면 세영이는 언제나 부담을 갖고 임한다. 어차피 힘으로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악력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탁 끊어 때리는 짧고 빠른 공격을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감독의 주문에 따라 안세영도 변신을 다짐하고 있다. 상대를 질리게 할 정도의 악착같은 수비력은 그를 정상으로 끌어올린 비결이지만 수비만으로 계속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안세영 스스로도 “공격과 수비 모두 세계 최고여야 계속 1위를 유지할 수 있다. 앞으로도 다른 선수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정상의 심정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
변화를 위해 우선 영상 분석 빈도를 늘렸다. 앞서 천위페이와의 승부에서 무릎을 꿇은 뒤 생각이 많아졌다. 패배는 외려 약이 됐다. 안세영은 “그간 영상 분석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상대가 나의 약점을 찾아 철저히 분석하는 만큼 나부터 나를 잘 알고 약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의 조언에 따라 악력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팔꿈치까지 쓰는 순간적인 스윙으로 빠른 공격을 하려면 악력을 좀 더 키워야 한다. 악력기를 옆에 두고 수시로 운동을 하라”는 스승의 명을 제자는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2024 파리올림픽 우승 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와의 갈등으로 한동안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 발을 들이지 않던 안세영이 다시 대표팀에 합류한 것은 박 감독이 부임한 4월 강화훈련부터다. 안세영은 “마음의 짐은 지난해 다 털어버렸다. 지난 일을 터닝포인트 삼아 올해부터는 새로운 다짐, 새로운 목표로 임하겠다”며 포부를 다졌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것은 그가 신임 박 감독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세영은 “감독님은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먼저 다가와 소통하려 노력해주시니 감사하고 편하다”며 믿음을 드러냈다.
61세 전설의 감독과 23세 배드민턴 여제의 만남. 새로운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안세영은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을 ‘절대강자’를 꿈꾸고 있다.
권종오 SBS 기자
1991년 SBS에 입사해 30년 넘게 축구, 야구, 농구, 골프 등 모든 종목의 스포츠 경기 현장을 누볐다. SBS 유튜브 채널인 ‘스포츠머그’에서 ‘별별스포츠’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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