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보호공원 자작나무 숲에 별이 쏟아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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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품은 청정자연, 경북 영양군
경북 봉화군과 영양군, 그리고 청송군을 흔히들 ‘경북의 BYC’라고 부른다. 전북의 무진장(무주·진안·장수)처럼 오지 중에 오지를 부르는 두문자인데, 그중에서도 인구 1만 8000명의 영양군은 육지 속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 동해안의 양양과 혼동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고장이지만 사람들의 손이 덜탄 만큼 자연도 잘 보존돼 있어 2017년 국제 슬로시티로 인증을 받았다.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서 바라보는 별들
영양군청에서 북쪽으로 30㎞를 더 올라가면 수비면의 수하계곡을 만날 수 있다. 영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해 울진과 가까운 이 계곡은 청정지역에서만 살 수 있다는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수하계곡 일대는 2015년 10월 31일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이후 일본 고즈시마, 비세초, 오키나와와 대만의 허환산 등도 이름을 올렸다.
요즘처럼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에 시달리다 보니 맨눈으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찾아보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일로 여겨진다. 국제밤하늘협회(darksky.org)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30%는 은하수를 볼 수 없고 유럽과 북미 인구의 99%는 심각한 빛 공해에 노출돼 있다. 빛 공해가 심각해지면 야생동물의 생태환경이 파괴되고 곤충의 생태계가 무너져 먹이사슬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사람은 불면증, 우울증 등의 발병이 늘어난다. 또 인공조명의 35%는 과도한 밝기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높인다.
결국 밤하늘을 지키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방법이다. 밤하늘 보호구역은 깊은 어둠과 밤하늘을 경험하면서 환경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다.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는 달팽이, 우렁이, 다슬기와 더불어 희귀 곤충들이 서식하는 반딧불이생태공원과 은하수와 유성을 관측할 수 있는 영양반딧불이천문대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밤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밤 10시, 천문대 개방시간이 지나면 이곳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나무의 귀족들이 사는 곳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마을에는 자작나무 군락이 있다. 자작나무 하면 강원 인제군을 떠올리지만 30년 전 영양 검마산 기슭에 심은 5만여 그루의 자작나무 묘목이 자라 명품 숲을 이루고 있다. 자작나무 숲은 낙엽이 떨어질 때쯤 진가를 발휘한다. 해발 8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특성 때문에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경우가 매우 드문 자작나무는 초록의 잎들로 옷을 입었을 땐 다른 나무들 틈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낙엽이 지고나면 새하얀 수피가 특별한 풍경을 선사한다. 겨울나무의 황태자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죽파리마을에 도착하면 자작나무 숲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를 하고 마을을 지나 1㎞쯤 걸어가면 본격적인 산림도로가 시작된다. 숲까지는 3.5㎞지만 맑고 시원한 계곡과 개성 넘치는 포토 포인트들이 이어져 있어 지루하지 않다. 계곡은 폭이 상당히 넓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벗어던진 낙엽들이 계곡 물위를 뒤덮어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40분쯤 걸으면 환상적인 자태의 자작나무 숲과 마주하게 된다. 두 개의 코스가 있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자작나무를 실컷 볼 수 있다. 정상 쪽에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데 경사가 있어서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경치는 수고를 보상한다. 제대로 된 단풍을 보려면 11월 첫째 주가 최적기다.
주실마을이 배출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도 꼭 들러야 한다. 1630년경 터를 잡은 한양조씨의 집성촌이자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고향이다. 마을 한가운데에 그의 생가였던 호은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조지훈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직접 현판을 쓴 문학관은 단층으로 지어진 ‘ㅁ’ 자 모양의 기와집으로, 조지훈의 삶과 그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자료와 광복 및 청록집 관련 자료들엔 암울했던 현대사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실 조지훈은 그의 형 조세훈에게 시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세훈은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시집을 펴낼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풍부했다. 하지만 천재는 단명한다고 했던가. 21세에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마는데 그 이유가 허망하다. 이를 뽑은 날 친구가 찾아와 술 한잔을 마시는 바람에 파상풍에 걸린 것이다. 애절하게 끝난 형의 못다한 시 인생을 조지훈이 아낌없이 불태웠다.
그의 문장을 읽다보면 어떻게 이런 문구를 생각해냈을까 싶은 대목이 많다.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승무’의 시구들은 그의 천재성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지식인과 문인이 일제에 굴해 친일 행위를 했지만 조지훈은 절필을 할망정 결코 친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을 끝자락엔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여 년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가 가득한 시인의 숲이 있다. 그 속을 걷다보면 신령스러운 나무들이 가을의 시를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선 3대 민간정원에서 작은 여유를
주실마을 인근 반변천과 동천을 가르는 선바위를 지나면 곧 연당마을에 닿는다. 마을 입구에 최근 120년 된 고택을 고쳐 만든 카페가 새로 문을 열었다. 덕분에 연당마을을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마을에 들어서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담장에 드리운 한 고택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석문 정영방이 지은 이곳의 연못 서석지는 전남 담양군의 소쇄원, 완도군 보길도의 세연정(부용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민간 정원으로 불린다. 정원 가운데에는 정자인 경정(敬亭)이 있고 경정 바로 앞에 상서로운 돌이 가득한 연못이라는 뜻의 서석지가 있다.
처음에는 풍수적 이유로 앞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판 연못이지만 바닥을 파면서 나온 돌들에 영감을 얻어 다양한 뜻을 담아 이름들을 붙였다고 한다. 가로 13.4m 세로 11.2m의 작은 연못에는 크고 작은 돌이 무려 90여 개나 들어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60여 개, 물에 잠긴 돌이 30여 개다. 이 중 19개의 돌에 이름을 붙였다. 관란석(배우는 자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상경석(선비는 마땅히 내면을 충실히 하고 재화나 명예를 탐내지 말아야 한다), 분수석(물은 여러 갈래로 흐르지만 그 근원은 하나다) 등 제각각의 돌마다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다. 늦가을이면 수령 400년을 넘긴 거대한 은행나무가 쏟아내는 노란 단풍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경정에 걸터앉는다. 화려하지도 거대하지도 않지만 만물의 조화로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서석지를 보며 즐기는 작은 여유다.
340년 전의 요리법에 반하다
다음은 ‘언덕 위의 마을’이라는 뜻의 두들마을로 발길을 옮겨보자. 석계 이시영 선생의 둘째 부인이었던 장계향의 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장계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남겼다. 허균의 ‘도문대작’이나 김유의 ‘수운잡방’ 등의 요리책들이 있었지만 모두 한자로 기록됐다. ‘음식디미방’에는 석계 선생의 종가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예스러운 고택들이 황톳길을 따라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에 석계 고택은 전형적인 경북지방의 ‘ㅁ’자 구조가 아닌 소박하고 단순한 ‘ㅡ’자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붕 용마루 끝에 장식 하나 없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검소했는지 알 수가 있다. 석계 선생은 첫째 부인으로부터 1남 1녀를 뒀고 둘째 부인 장 씨로부터 6남 2녀를 뒀는데 모두 학문에 출중했다. 첫째와 둘째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몰두했고 셋째 아들만 정계에 입문했다. 넷째 아들 이숭일은 고향으로 내려와 마을을 끝까지 지켰다.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소설가 이문열이 이숭일의 후손이다.
이숭일은 흉년으로 민생이 참혹할 때 마을 사람들이 굶지 않도록 집 안팎에 솥을 걸어 죽과 밥을 지어 사람들을 먹였다. 그는 마을 주변의 작은 바위마다 글을 써놓았다. 배고픔마저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낙기대 주변에는 기근에 힘들어 하는 마을 사람들이 도토리라도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었다는 커다란 도토리나무가 있다. 이 밖에도 100여 기의 풍력발전기가 산의 능선을 이국적으로 그려놓은 맹동산,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현리의 댑싸리 군락, 전통이 녹아 있는 100년 전통의 양조장 등 영양의 가을은 청정자연과 함께 깊어가고 있다.
박동철
<여행이 즐거워지는 사진찍기> <대한민국 주말가족여행> <사진의 구도 구성> <슬로시티 걷기여행> <신께서 허락한 나만의 별> <베트남 사진여행> <가볼까 두근두근 문화유산 여행> 등 40년을 넘긴 작품 활동을 통해 많은 책을 집필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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