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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규모 산불 잡는 실험 계곡에 불붙이자 화염 회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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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산불실험센터를 가다
6월 초 경기 포천시의 국립산림과학원 국가산불실험센터(이하 산불실험센터)를 찾아가기로 한 날, 취재를 도와주기로 한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권춘근 연구사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산불실험센터를 목적지로 입력하면 엉뚱한 곳을 안내하니 다른 곳을 입력하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내비게이션조차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 산불실험센터는 다목적스포츠차량(SUV)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의 길을 뚫고 올라가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문을 연 산불실험센터는 건축면적 745㎡(230평), 지상 4층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대형산불 실증을 할 수 있도록 실험실, 연구실, 강의실, 연료보관실 등 다양한 연구시설이 있다. 산지 지형을 구현해 모의실험을 할 수 있는 장치부터 산불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비화(불똥이 날아감) 생성, 바람과 경사를 조절할 수 있는 장비 등도 갖췄다. 실제 규모의 연소 실험을 통해 대형산불의 행동 원리를 밝혀내고 산불위험 예보 및 확산 예측 기술 진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영남권을 휩쓴 사상 최악의 산불처럼 우리나라 산불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6월 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최근 발생한 대형산불 관련 산불대응체계 강화를 지시했다. 산불 예방과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가 짚어야 할 점은 무엇인지 권 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권 연구사는 20년 동안 산불을 연구했고 국가 재난급 대형산불 현장마다 출동해 산불 진화 전략 수립에 필요한 자문을 제공해왔다. 이번 경북 산불 당시에도 10일 이상 현장을 지켰다고 한다.



마른 낙엽, 더 잘 타고 화염 높이도 두 배 이상
의성군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덕 등 경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은 3월 22일 첫 불씨를 틔웠다. 건조한 날씨로 산불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 기간이었다. 산림청의 2015~2024년 산불 통계를 보면 봄철(3~5월)에 전체 산불 발생 건수의 56%가 집중됐다. 봄철은 다른 계절에 비해 산불에 얼마나 취약할까?
권 연구사는 낙엽이 가진 수분 함량이 불이 붙고 번지는 양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줬다. 봄과 여름철 낙엽과 비슷하게 각각 10%, 30% 정도의 수분을 품은 낙엽을 나란히 깔고 하단부에 불을 붙였다. 봄철 낙엽은 불을 붙이기 무섭게 타들어갔다. 화염이 치솟는 높이도 두 배가량 높았다. 권 연구사는 “불씨가 100개 정도 튄다면 10%대 낙엽에는 25군데, 30%대에는 1군데 정도 불이 붙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분 함량이 더 높은 낙엽은 2~3분가량 더 타고서야 화염이 잦아들었다. 다만 양쪽 모두 붉은 불씨가 재 속에 살아 있었다. 불씨들은 긴 막대기로 몇 번 뒤적이자 금세 다시 불꽃을 피웠다. 불이 꺼졌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권 연구사는 “다 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고스란히 불씨가 남아 있다”며 “이때 바람이 불면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낙엽이 쌓인 두께가 두꺼울수록 잔불에서 다시 불이 피어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과거보다 산불의 강도가 강해지고 지속적인 재발화가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세월이 갈수록 나무들이 성장하고 그 아래 더 많은 낙엽이 쌓이면서 산불 에너지를 더 크게 만드는 연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수분 함량이 더 높은 낙엽은 타는 과정에서 엄청난 연기를 뿜어냈다. 실험에 쓰인 낙엽의 양이 낙엽 수거용 마대자루 한 포대 정도에 불과했음에도 뿌옇고 매캐한 연기에 기침이 나올 정도였다. 권 연구사는 “전형적인 흡열(열을 빨아들임) 과정”이라며 “불이 낙엽 속 수분을 빼앗는 과정에서 연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사면 따라 번지는 불길에 바람이 더해지면
산지 지형 모의실험 장비를 이용해 산불 발생 시 불이 번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도 진행했다. 이 장비는 연소대를 ‘V’자로 변형할 수 있어 경사 각도에 따라 산불의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로 3m, 세로 5m 연소대를 계곡 모양처럼 가운데가 움푹 패도록 조정한 뒤 그 사이에 낙엽을 깔고 불을 붙였다.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실험이라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표로 가정한 하단부에 불을 붙였다. 불은 곧바로 V자 계곡면을 따라 정상부로 올라갔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화염이 천장 쪽으로 높아졌다. 속도도 평지에서 불이 붙었을 때보다 더 빨랐다. 바람을 불어넣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은 거침 없었다. 화염 주변으로 일어난 작은 회오리바람 탓에 재가 원을 그리며 위로 치솟았다.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 생긴 현상이다.
가로 1m, 세로 4m로 깔아놓은 낙엽은 3분도 안돼 모두 탔다. 넓은 공간에서 실험했을 때는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지만 계곡을 가정한 이번 실험에선 연기가 계곡 안쪽에 모이다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산에서 불이 났을 경우 계곡이 위험한 이유다. 연기는 실제 화재 현장에서 질식을 유발, 인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이동속도도 화염보다 빠르다.
다음은 바람이 산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가로 1.5m, 세로 6m 규모의 연소대에 마른 낙엽을 깔고 불을 붙였다. 바람의 세기를 초속 0m에서 초속 1.8m로 조정하자 불의 이동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초속 1.8m는 나뭇잎이나 깃발을 흔드는 정도의 바람 세기다. 풍속을 초속 4m로 조정했을 때는 깔아놓은 낙엽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권 연구사는 “바람이 불면 에너지를 전달하는 열의 길이가 길어지고 앞쪽으로 이 열기를 전달해 작은 불에도 쉽게 불이 붙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며 “여기에 경사가 추가되면 불의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그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실험 결과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경사도·바람이 0일 때와 경사도가 30도, 바람이 초속 6~8m 수준으로 불었을 때를 비교하면 불의 확산 속도는 약 79배 정도 더 빨라진다”고 했다. 실제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한 경북 산불은 순간 초속 27m에 이르는 태풍급 바람이 불며 시간당 8㎞ 이상 이동했다. 이는 자동차가 시속 60㎞로 달릴 때와 비슷한 속도다.





일부러 불 붙여도 끄떡없는 산불지연제
마지막은 국립산림과학원이 개발에 성공해 민간에 기술을 이전한 산불지연제의 효과를 살펴보는 실험이었다. 앞서 진행한 봄철·여름철 낙엽 연소 실험과 마찬가지로 양쪽에 낙엽을 깔아놓은 후 한쪽 면 일부에만 산불지연제를 살포했다. 산불지연제는 불이 붙을 수 있는 물체를 코팅해 공기를 통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산불 확산을 지연시키는 원리다.
실험 결과 놀랍게도 다른 곳이 전소되는 동안 산불지연제를 뿌린 곳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가스 토치로 불을 지속해 쏴도 그을음만 생길 뿐 변화가 없었다. 이 산불지연제는 경북 산불 당시에도 국가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봉정사를 지키는 데 쓰였다.
산불지연제는 살포 후 시간당 5㎜씩 비가 내리는 환경에서도 3개월간 발화억제 효과를 갖는다. 강한 비가 연이어 내리지 않는 환경에서라면 효과를 톡톡히 거둘 수 있는 셈이다. 해외의 산불지연제가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수자원을 공급하는 지역과 떨어진 곳에서만 사용하도록 정해진 반면 국립산림과학원의 산불지연제는 친환경적인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액상 형태로 별도의 장비 없이 원액을 물에 타 바로 쓸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이다. 6월 현재 조달청 수출선도형 혁신제품 시범구매 제품으로 선정돼 캄보디아, 파라과이에서 실증을 앞두고 있다.



AI 활용한 의사결정 지원시스템 개발도
국립산림과학원의 다음 목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의사결정 지원시스템 개발이다. 산불 발생 시 진화 자원을 어디에 얼마큼 투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다. 현실화된다면 기존의 여러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확인하고 전문가들의 의견 취합 등을 거쳐 이뤄진 자원 배분 계획이 보다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모든 실험을 마치자 온몸에서 탄내가 진동했다. 실험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마신 연기로 목도 따끔했다. 이런 실험을 산불실험센터에선 매주 진행한다. 목표는 단 하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힘들진 않을까. 권 연구사는 간절한 바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산불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부분이 실화인데 거꾸로 뒤집으면 우리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90% 이상의 산불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불을 낸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는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홍보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

고유선 기자

산불 발생 때 어디로 피해야 하나?
계곡 대피는 위험… 연기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야
산불 발생 시 계곡으로 대피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하다. 계곡은 사방이 트인 곳과 달리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질식의 위험이 높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권춘근 연구사는 “물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인식해 계곡으로 피하는 경우가 있지만 계곡은 연기가 빠져나가기 어려운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사면을 따라 강한 열이 전파되면서 계곡 상부에 위치한 돌 등이 아래쪽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권 연구사의 조언에 따르면 일단 육안으로 산불로 인한 연기의 이동 방향을 살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진행 방향을 확인한 후에는 연기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산불은 하단부에서 상단부로 올라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산 아래로의 대피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에는 헬기장, 암석지대 등으로 이동하는 게 좋다. 이마저도 어려울 경우에는 주변의 나무, 낙엽 등을 최대한 치우고 낮은 자세로 엎드려 머리를 숙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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