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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작품? 성덕대왕신종 울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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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여름이었다. 고향이라고 찾아갔으나 완전히 변해버린 낯선 장소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남도의 8월은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벌겋게 달아오르게 만들었고 한낮의 열기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까지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인생이 고(苦)”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범종소리가 “쿠웅~” 하고 울렸다. 그 순간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잡념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헐떡거리던 내면이 고요한 바다처럼 잠잠해졌다. 도심에서 범종소리를 듣는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그 소리가 허공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맥놀이 현상도 신기했다. 그날 위로처럼 들렸던 해 질 녁의 범종소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칠 때에도 안식을 줬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은 범종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작품이다. 속칭 에밀레종 혹은 봉덕사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성덕대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대형국가프로젝트였다. 경덕왕은 성덕대왕이 승하한 후 부왕의 덕을 기리고자 구리 12만 근으로 대종을 주조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은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신종 제작을 계속했다.
결국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771년 12월 14일에 신종을 완성했다. 34년 만의 성공이었다. 신종은 높이가 3.67m, 지름이 2.23m이며 무게는 18.9톤에 이르는 대작이다. 신종은 그냥 종이라고 하지 않고 ‘신종(神鐘)’이라고 부른 데서 알 수 있듯 신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비스러운 종이다. 언젠가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한 독일학자 퀸멜 박사는 ‘조선 제일’이라고 적힌 신종의 해설문을 보고 ‘세계 제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도대체 신종의 어떤 부분이 그런 찬사를 받게 하는 걸까?





1037자에 밝힌 신종 제작의 이유
신종은 상부의 종고리와 하부의 종신(鐘身)으로 구성돼 있다. 종고리는 한 마리 용과 대나무 모양의 음통이 결합됐는데 쌍룡으로 구성된 중국·일본의 종과 차이가 나는 한국 종의 특징이다. 용과 결합된 대나무 모양의 음통을 보고 1980년 황수영 박사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만파식적을 재현한 것이라는 학설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용과 음통 아래로는 천판부터 띠 모양의 상대, 네 군데 연꽃이 장식된 연곽이 아래로 이어진다. 그리고 종의 중심에 해당하는 종신에는 종을 타격하는 당좌와 네 구의 비천상이 장식돼 있다. 네 구의 비천은 연꽃방석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손으로 향로를 바치고 있는 공양비천이다. 신종의 비천상은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유려하다. 비천상 옆에는 제작과정을 밝힌 1037자의 명문이 양각돼 있다. 마지막으로 종신의 하단인 종구 부분에는 극락에서 핀다는 보상화문이 장식돼 있는데 테두리의 여덟 군데가 아래로 살짝 돌출돼 있다.
신종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비법은 심금을 울리는 장중한 종소리일 것이다. 종소리는 타종하는 순간 천지가 진동하듯 5~10초 정도 웅장하게 울리다 끊어지는가 싶으면 다시 2분가량 청아한 울림이 지속되다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한국 종 고유의 소리인데 종 전문가인 곽동해 교수(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는 이런 맥놀이 현상을 두고 한국 종의 몸체 두께가 비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느 해 여름, 무더위에 지친 현실을 잊게 할 정도로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소리의 정체였다.
위대한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성덕대왕신종에 어린아이를 넣어 주조했다는 에밀레종의 전설이 첨부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스러운 종소리를 강조하다보니 인신공양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전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에밀레종의 전설은 종의 제작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우매함에서 탄생한 헛소문일 뿐이다. 성덕대왕신종은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과 지옥의 중생들까지도 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에밀레종의 신비로움을 뒷받침할 더 멋진 스토리가 탄생돼야 할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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