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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고리 끊기 위해 자살유족이 나섰다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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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살유족협회 강명수 회장
2024년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4년 자살자 수는 1만 4439명(잠정 집계), 2011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2003년 이후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자살이 비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변인을 자살로 잃은 자살유족은 오랜 시간 고통을 떠안은 채 살아간다. 자살은 원인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기에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죽음은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조사에 따르면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낸 이들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586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10만 명당 자살률의 25배에 달하는 숫자다. 자살 사망자 한 명에게 가족·친구·이웃·동료가 10명씩만 있다고 가정해도 지난 한 해에만 14만 명의 자살유족이 발생했다. 당장 내 주변 누군가의, 혹은 나의 얘기일 수 있다.
지난 1월 18일 국내 최초의 자살유족 모임인 한국자살유족협회가 발족했다. 자살유족 당사자들이 먼저 책임을 갖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협회는 자살예방법 법률 개정, 자살유족 지원센터 설립 등을 목표로 자살유족 돌봄 전국 순회 포럼인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을 진행해오고 있다. 앞서 자살유족 자조모임인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미고사)’와 ‘자작나무’, 자살유족 심리지원 단체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가 모여 지난해 설립한 ‘자살유족지원운동본부’가 주축이 됐다.
한국자살유족협회 강명수 회장은 “전 국민이 자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죽음을 막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살유족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60대인 강 회장 역시 43년 전 어머니를 자살로 여읜 자살유족이다. 그는 오랜 시간 자살유족으로 살며 쉽게 떨칠 수 없는 아픔과 사회적 편견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아픔을 직면하고 있는 당사자 스스로 유족지원과 자살예방에 나서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얘기다. “자살유족이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온 사회가 자살을 나와 이웃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라야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게 강 회장의 설명이다. 한 지역 상담센터에서 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 회장을 만나 협회의 설립 배경과 향후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의 죽음이 상담사가 된 계기가 됐다고.
어머니는 내가 어린 시절 내내 우울증을 앓다 내가 성인이 된 해 자살했다. 죽음에 대한 상처는 당시보다 40대가 된 이후 더 크게 다가왔다. 만성 우울증을 앓았고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20년 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탓이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럴까 오랫동안 ‘왜’라는 물음표를 달고 살았다. 심리학을 공부해 전문 상담사가 됐다. 그런데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꾸만 내 상처가 건드려져 상담이 잘 되지 않았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온전히 마음이 아물지 않았던 거다. 그때부터 거꾸로 내가 상담을 받으면서 회피했던 깊숙한 곳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60회가 넘는 상담을 통해 마음을 치유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있다.

죽음을 애도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20년이 넘도록 누구에게도 제대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그때그때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많은 자살유족이 비슷한 처지다. 문제는 가족 간에 오히려 더 크게 나타난다. 말 한마디가 무척 조심스럽기 때문에 대화 자체를 피하게 된다.

하지만 유족에겐 주변 사람들의 침묵도 상처가 된다고.
유족도 고인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참 힘들겠다, 지금 마음은 어떠냐” 하고 물어봐주는 게 좋다. 말하기 힘들어 하면 말하고 싶을 때 해달라고 하면 된다. 자살은 충격적인 죽음이긴 하지만 다른 죽음과 다르게 대할 필요는 없다. 유족에겐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살유족에 대한 낙인효과를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살유족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큰 문제다.
연구에 따르면 자살유족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에 비해 20배 이상 높다. 자살을 시도하는 기간도 가족을 떠나보낸 이후 평균 3년이 채 안 걸린다. 자살유족에 대한 심리적·경제적·사회적 개입이 초기에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자살유족협회는 몇몇 자살유족 자조모임을 주축으로 결성됐다. 이 같은 모임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미고사’는 유족들이 글로라도 자신의 마음을 얘기해보자는 취지에서 온라인 모임으로 시작했다. 해외 연구 사례를 보면 유족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자조모임이다. 어디서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유족들끼리 만나 꺼내놓으면서 위로받고 애도를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회복하면 다른 유족을 돕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국내에서도 자살유족 자조모임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조모임에서 나아가 협회를 설립한 목적은?
흔히 자살예방 대책이라고 하면 교육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교육에 더해 자살위기상황에 대한 개입, 자살사고 이후의 개입까지 세 가지가 함께 이뤄져야 대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자살유족이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데다 누구보다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오래전부터 유족이 직접 나서 ‘당사자 활동’으로서 구심점을 갖고 자살예방 활동을 해왔다. 국내 자살유족 자조모임은 이런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이런 논의들이 오가면서 자조모임이 협회로 발전했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순회 포럼을 다닌다. 앞서 말했듯 자살유족이 아픔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자기개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활동이다. 이를 통해 자조모임이나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되고 자살유족에 대한 낙인효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향후 자살관련 법 개정을 목표로 해외 사례 연구도 진행한다. 올해 초엔 일본 전국자살유족종합지원센터 등을 찾아 일본이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배경에 대해 들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앞서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보였는데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 제정 이후 3년 만에 자살률이 30% 이상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중요한 것은 자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다양한 사회적 요인의 결합으로 본 것이다.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업주, 국민 개개인의 책무까지 법으로 명시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자살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인가? 예방이나 사후관리가 아닌 자살 발생 자체도 사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나?
자살자 대부분이 죽기 전 우울증을 겪는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10대 자살률이 늘고 있는데 한 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했다고 해보자. 공부를 잘해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어디서 올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론의 자살보도가 미치는 영향도 크다. 몇 년 전 한 남성 연예인이 자살한 뒤 또래의 중년 남성 자살률이 크게 올랐다. 한 개인의 죽음이 언론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면서 그와 자신을 동일시한 이들이 죽음을 선택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언급하는 것조차 꺼린다.

당장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은 뭔가?
정부는 5년 단위로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 지원사업이 추진돼 2019년 전국 세 개 지역에서 시범실시됐고 실제로 큰 성과를 거뒀다.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아직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예산 문제다. 자살 관련 대책을 수립한 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예산이 적극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더불어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자살유족의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 지인의 자살로 영향을 받는 사람을 가족에서 주변인, 즉 자살사별자로 확장해 제도권 안에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살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자살유족을 대하는 태도는 어때야 하나?
자살유족에게 죽음의 책임을 따져묻는 경우가 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큰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죽음이 왜 자살유족의 책임인가. 사회적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자살유족은 누구보다 가족의 죽음으로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 사회적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말 못할 죽음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은 커다란 바위가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물론 슬픔 자체는 평생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담는 내 마음이 커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이 회복이고 성장이다.

조윤 기자

청년층 자살시도자 지원 확대
전국 응급실 어디서나
치료비 연 100만 원 내 지원
보건복지부가 5월부터 15~34세 청년층 자살시도자에 대한 치료비 지원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청년층은 자살시도율이 높은 만큼 자살시도자에 대한 초기 개입과 사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앞으로 청년층이 자해나 자살시도로 내원하면 전국 어느 응급실에서나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치료비 한도는 연간 100만 원이다.
앞서 정부는 자살 고위험군 치료비 지원 사업을 통해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인 자살시도자와 자살유족에게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로 지정된 응급실에서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왔다. 특히 청년층 자살시도자에 대한 치료비 지원 요건을 대폭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소득 요건을 없앴고 올해 5월부터는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내원 요건도 폐지했다.
치료비 신청을 위해서는 본인 거주지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청년은 자살시도에 따른 응급실 내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진단서와 진료비 영수증 등을 구비해 제출하면 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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