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 잠자는 옷 교환하세요! 21% 파티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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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옷장 속 옷이 주인공이 되는 ‘21% 파티’가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이 파티는 참가자들이 서로 입지 않는 옷이나 신발, 모자, 가방 등을 가져와 교환하는 행사다. 모든 상품에는 가격표 대신 특별한 종이표가 달려 있다. 이 옷을 언제 어디서 샀고 어떤 이유로 이 파티에 내놓은 것인지 등을 쓴 주인의 마지막 편지다. 파티 참가자들은 한 사람당 다섯 개까지 의류를 가지고 와 다른 옷으로 교환할 수 있다. 참가비는 7000원, 의류 교환비인 셈이다.
‘21% 파티’는 비영리 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가 2021년 시작했다. 다시입다연구소는 버리는 옷의 수를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21%’라는 파티 명은 자체 조사 결과 옷장 속 입지 않는 옷의 비율이 21%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1년에 한 번 10여 일의 기간을 정해 전국 곳곳에서 ‘21% 파티’를 여는 파티위크를 진행한다. 올해는 4월 19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
유행이 지나서, 싫증이 나서 의류 수거함 또는 쓰레기통으로 보낸 멀쩡한 옷이 얼마나 많았나. 그때마다 아깝기도 하고 환경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었다. 마침 옷장 속 잠들어 있는 옷들이 떠올랐다. 4월 26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앞 복합문화공간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린 ‘21% 파티’에 참가했다.
확인 작업 거쳐 깨끗한 옷만 입장 가능
파티장 입구는 행사 시작 전부터 참가자들로 붐볐다. 다들 크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온 사람도 눈에 띄었다. 오후 1시 파티장의 문이 열렸다. 가져온 의류를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입구에 놓인 테이블에 스웨터와 셔츠를 꺼내놓자 스태프가 이리저리 상태를 확인했다. 지저분하진 않은지, 구멍이 난 곳은 없는지, 보풀이 일어난 정도는 어떤지 등을 살피는 과정이었다.
옆에는 옷 손질에 필요한 보풀 제거기, 먼지 제거용 테이프 등이 있었다. 세탁 안된 옷, 단추가 떨어진 옷, 얼룩이나 손상이 심한 옷 등은 참여가 불가하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검사를 통과하자 옷을 교환할 수 있는 티켓과 사연을 쓸 수 있는 종이표를 줬다. 티켓에는 ‘패션 산업은 전 세계 가장 심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 2위입니다’, ‘지난 15년간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대략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옷에 얽힌 사연 적고 읽는 재미 ‘쏠쏠’
326.55㎡(약 98.78평) 규모의 행사장에는 벌써부터 많은 옷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이전 행사에서 남은 상품들이었다. 행사에서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한 상품은 이렇게 다음번 파티에 다시 나오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된다. 수선 워크숍이나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활용된다. 버려지는 건 없다. 간이 테이블에 앉아 옷에 붙일 사연을 적었다. 사연 작성에 도움을 주는 예시가 테이블에 붙어 있었다.
‘잘 가! 반짝 꽃무늬야. 우리는 2년 전 코엑스 자라(ZARA) 매장에서 처음 만났지. 봄옷으로 널 구입했지만 0회 입고 너무 화려한 너를 수용할 수 없어서 보낸다. 부디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바라!’
사연을 적다보니 여러 감정이 들었다. 옷을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살 때의 마음과는 달리 제대로 대접을 못해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옷걸이에 옷과 함께 다 쓴 종이표를 달아 스태프에게 건넸다. 옷은 곧 행사장 옷걸이에 걸렸다.
떠나보냈으니 이제 새로운 인연을 만날 차례. 옷을 교환할 수 있는 티켓 두 장을 주머니에 넣고 물건을 살폈다. 사연들을 읽는 재미가 쇼핑에 즐거움을 더했다. 하얀색 털모자에는 ‘추워서 샀는데 머리가 너무 커서 한 번밖에 쓰지 못했다. 왕 머리가 아닌 주인을 만나렴’이라는 재치 있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가 많아졌다. 옷걸이에 걸리는 옷도 그만큼 늘었다. 선택지가 넓어지니 눈도 바빠졌다. 현장에 설치된 네 개의 탈의실 앞에는 옷을 입어보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옷걸이 사이를 누비다 귀여운 무늬가 있는 빨간색 조끼를 발견했다. 고민하던 찰나 누군가 조끼를 집어갔다. 이곳은 재고가 한 벌뿐이라는 걸 간과한 탓에 물건을 놓쳤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카디건 하나와 여름에 입을 만한 티셔츠 한 장을 골랐다. 안 입는 옷들을 가져와 자주 손이 갈 만한 것들과 바꾸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교환 티켓을 건네자 스태프는 “두 벌을 교환했으니 이만큼 환경을 지킨 것”이라며 종이 한 장을 줬다. 중고 옷 두 벌을 선택함으로써 절약한 물, 에너지 등의 양이 적힌 환경영수증이었다. 스태프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줬다. 얼결에 ‘환경지킴이’ 감투를 쓰자 지구를 위해 뭔가를 한 것 같아 뿌듯했다.
파티에서 만난 박소연 씨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행사에 참가했는데 좋은 옷들이 많아 고르는 재미가 있다”며 “멀쩡한 옷을 버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가져가서 입으면 좋을 것 같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이 여섯 번째 참가라는 그는 이날 다섯 벌을 가져와 모두 교환했다.
디제잉 파티, 재봉틀·실크 스크린 등 체험도
‘21% 파티’에선 옷 교환과 함께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파티장 한쪽에는 DJ 부스도 설치돼 있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다. 흥겨운 음악 덕분인지 참가자들도 스태프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사전 예약을 받아 선착순으로 재봉틀과 실크 스크린을 체험할 수 있는 부스도 있었다. 망가지거나 얼룩진 옷도 약간의 수선만 거치면 훌륭한 옷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재봉틀 체험은 수선과 라벨 달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달리 수선할 옷이 없어 라벨 달기 체험을 신청했다. 전문가에게 재봉틀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실습을 시작했다. 노란색 자투리 천에 검은색 천 조각을 올려놓고 발판을 밟았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만큼 천이 앞으로 밀려나갔다. 재봉틀은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쉽고 간단했다.
실크 스크린 체험은 티셔츠, 에코백 등 면 소재의 물품이 있어야 참여할 수 있다. 한 참가자는 하얀색 면 앞치마를 가져와 네모와 동그라미 무늬를 겹쳐 찍었다. 평범한 앞치마가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최윤정 다시입다연구소 매니저는 “과일물이나 연필 등이 옷에 묻으면 잘 안 지워지는데 이럴 때 재봉틀로 장식을 달거나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해당 부분을 덮어주면 멋지게 다시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탬프 이벤트도 참가자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였다. 입장할 때 받은 여러 개의 미션이 적힌 종이에 스탬프를 3개 이상 찍으면 선착순 30명에게 선물을 주는 이벤트였다. 미션은 ‘의류 교환 완료’를 비롯해 ‘21% 파티 참여 SNS 인증샷’, ‘재고폐기 금지법 서명’ 등 총 다섯 가지였다. 재고폐기 금지법 서명은 패션 기업의 재고·반품 폐기를 금지하는 법안 발의를 위해 다시입다연구소가 추진하는 서명 운동이다.
대부분 20~30대 여성… 남성복 적어 아쉬움도
파티 참가자는 20~30대 여성이 대부분이었지만 남성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21% 파티’에 여러 번 참가했다는 신종한 씨는 “남자들이 입을 만한 물건들이 많지 않은 건 아쉽다”면서도 “사놓고 입지 않은 옷들은 버리기도 팔기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그럴 때 ‘21% 파티’가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같아 기부하는 느낌으로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운동복을 가지고 왔다.
“이번 파티위크 기간 중 요가복처럼 특정 의류만 교환하는 파티가 열리기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는 최 매니저의 말을 듣고 ‘아이들 옷이나 신발을 교환하는 21% 파티가 열리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금방 크기 때문에 비싸게 사놓고 두세 번밖에 입히지 못하는 옷이 많다.
참가 신청은 이벤트 플랫폼 ‘이벤터스’를 통해 할 수 있다. 현장 참가 신청도 가능하다. 파티는 다시입다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각 단체나 기관, 회사가 직접 개최할 수도 있다. 관련 내용은 다시입다연구소 누리집(wearagain.org)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5월 기준 ‘21% 파티’의 누적 개최 횟수는 51회. 교환 의류 수는 모두 1만 2957벌이다.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는 “나 역시 옷을 소비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결과가 21% 파티”라며 “패션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환경파괴 산업인 만큼 이 파티를 통해 우리 모두 신중한 소비를 한 번쯤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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