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살려낸 ‘백범일지’ 책장 넘기며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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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기념관
주소 서울 용산구 임정로 26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기타 관장이 정하는 날
관람료 무료
문의 (02)799-3400
디지털로 재단장한 백범김구기념관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고 물으시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白凡逸志)’ 중 ‘나의 소원’에 나오는 구절이다. 김구 선생은 1928~1929년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살아서 환국할 수 없다고 여겨 두 아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알리려고 백범일지 상권을 집필했다.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나 중국 각지를 떠돌다 충칭에 정착하게 되자 1941년부터 하권을 썼다. 김구 선생의 유서이자 자서전인 이 책은 일제강점기하에서 독립운동가, 나아가 우리 민족이 헤쳐나간 가시밭길이 어떠했는지 말해준다.
4월 7일 재개관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더욱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국가보훈부는 2024년부터 개관한 지 10년 이상 된 국가관리기념관 4곳을 대상으로 디지털 전시물 제작·설치 사업을 추진해왔다. 지난 2월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3월에는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이 최신 디지털 전시 콘텐츠 설치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2002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개관한 백범김구기념관도 디지털 전시물 제작·설치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2층 상설전시실에 새로 설치된 ‘인공지능(AI)으로 만나는 백범일지 아카이브’와 ‘마음으로 읽는 백범일지 디지털북’, ‘대한민국 임시정부 충칭청사 증강현실(AR) 체험’, ‘김구와 임시정부의 대장정 키오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걸어온 길
서울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효창공원이 나온다. 효창공원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김구 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 등 삼의사(三義士)와 임정요인인 이동녕·차리석·조성환 선생 등 애국선열 7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조성돼 있다. 애국지사의 묘역을 지나 오르막길을 조금 더 오르면 왼쪽에 백범김구기념관이 나온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김구 선생의 대형 좌상이 먼저 반겨준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위엄 있게 앉아 있는 김구 선생을 바라보며 잠시 추모의 시간을 보내고 1층 상설전시실부터 둘러봤다. 전시실에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 1876년 그해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헌신한 김구 선생의 생애와 업적이 총망라돼 있다.
그중 ‘김구를 살린 전화’라는 전시물이 인상 깊었다. 명성황후 시해 이듬해인 1897년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김구 선생은 인천 감옥에 투옥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죄목이 ‘국모보수(國母報讐·국모의 원수를 갚았다)’라는 것을 알게 된 고종이 직접 인천 감리서에 전화해 사형을 중지시켰다. 서울~인천 간 전화 개통은 김구 선생의 사형 집행 사흘 전에 이뤄졌다. 고종이 전화를 건 날은 사형 집행일이었다. 전화 개통이 며칠만 늦어졌어도 김구 선생의 목숨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벽에 걸린 전화기를 들면 사형 집행을 중단하라는 고종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AI로 보는 백범일지와 디지털 체험공간
2층 전시실에는 김구 선생이 집필한 백범일지에 대한 상세한 전시가 이어진다. 백범일지 원본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백범김구기념관은 전시실을 새단장하며 관람객이 직접 백범일지 책장을 넘기며 읽을 수 있는 체험공간인 ‘마음으로 읽는 백범일지 디지털북’ 키오스크를 조성했다. 디지털북이지만 아날로그 느낌 그대로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를 집필하고 출간한 뒤 국가유산에 지정되기까지의 여정을 책장을 넘기며 확인할 수 있다. 백범일지의 주요 내용을 터치하면 세부 정보 확인이 가능하고 삽화와 함께 읽기 쉬운 국·영문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대형 터치 모니터를 통해 백범일지에 언급된 250명의 인물과 223건의 사건, 84곳의 장소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백범일지 아카이브월도 새롭게 설치됐다. 시간순이 아니라 인물, 사건, 지역 등 관람객의 관심 주제에 맞춰 AI가 맞춤 정보를 보여준다. 화면을 터치해 원하는 내용을 찾아보며 김구 선생이 걸어온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충칭에 청사를 마련했을 때 주석으로 활동했다. 충칭청사는 1940~1945년까지 사용됐으며 김구 선생은 이곳에서 항일 독립 투쟁을 이끌며 백범일지 하권을 써내려갔다. 충칭청사의 내부 모습과 임시정부의 주요 정보, 인물, 숨겨진 일화 등을 AR로 체험할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충칭청사 AR 체험’도 생겼다. 충칭청사 모형 앞에 설치된 태블릿PC를 들고 원하는 곳을 클릭하면 건물의 사용 용도와 숨겨진 일화를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AR을 활용해 실감나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김구와 임시정부의 대장정 키오스크’에선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와 주요 사건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을 클릭하면 창사, 광저우, 난징 등 각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윤봉길 의사의 시계 등 볼거리 다양
디지털 기술로 새로워진 전시 외에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눈여겨봐야 할 유물이 있다. 김구 선생의 시계 옆에 나란히 놓인 윤봉길 의사의 시계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해 일본 제국의 주요 인사를 제거 및 타격했다. 의거 당일 윤 의사는 김구 선생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이제 저는 한 시간밖에 더는 소용이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6원짜리 시계와 백범 김구 선생의 2원짜리 시계를 바꿨다. 김구 선생은 윤 의사의 시계를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 나란히 놓인 두 독립운동가의 시계는 멈췄지만 그들의 정신은 시간을 초월해 흘러가고 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에서 안두희가 쏜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기념관에선 김구 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 있던 혈의(血衣)도 직접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장으로 엄수된 장례 모습 영상도 있다. 당시에도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통해 추모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전시실을 떠나기 전 마지막 영상이 흘러나왔다. 흰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김구 선생이 걸어가고 있다. 흰눈 위에 발자국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이 문구가 적혀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전시실을 빠져나온 뒤 김구 선생의 묘역을 비롯해 효창공원을 한 바퀴 둘러봤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을 잠시나마 기억하고 추모하며.
글·사진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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