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층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들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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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 우주’ 찾는 안과의사 김재찬
눈물샘이란 안구 표면에 수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세척하며 항균작용에 필요한 눈물을 생성하는 외분비샘이다. 눈물샘에서는 안구 표면의 눈물층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눈물이 분비된다. 때문에 눈물층을 이루는 지방층, 점액층, 수분층의 균형이 깨지거나 눈물샘 기능이 저하되면 안구건조증이 발생한다. 이러한 개념도나 안구 구조 사진 정도는 온라인 검색이나 도서를 통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 김재찬(72) 명예교수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나면 눈물층이 하늘을 가르는 은빛 강, 은하수 형상을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당 사진은 김 교수가 ‘눈 안에 소우주’를 주제로 제작한 콜라주 작품이다.
김 교수는 1995년 양막이식 치료법을 세계 최초로 임상에 적용한 논문을 발표한 데 이어 안과적 줄기세포 치료법을 개발한 안과전문의다. 2010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에 ‘세계 100대 의학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더 많은 환자가 고통을 덜 받고 치료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인천 소재 한 병원에서 환자들의 눈건강을 위해 애쓰고 있다.
김 교수는 환자의 눈물층을 촬영한 사진으로 환자의 건강 상태를 진단한다. 눈물층 패턴을 기반으로 환자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잡아내 치료법을 제시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체내 산성화로 염증이 많아진 환자의 경우 눈도 자극을 받아 수면방해에 시달릴 수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은 눈물층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교수는 눈물층 사진으로 깨달은 점이 또 있다고 했다.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눈물주머니가 수많은 이물질을 빨아들이는데 그 힘과 모습이 마치 블랙홀 같았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비춰보니 아름답더라. 멋진 작품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렇게 시작된 작품 활동이 3년째 이어졌고 김 교수는 올 초 그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었다. 안과 진료 현미경인 마이크로스코프로 찍은 눈물층에 LED 조명을 반사시켜 만든 조각 사진들을 동공 사진과 결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눈 안의 미시적 우주를 탐구하며 우리 인간이 거대한 우주의 일부임을 일깨운다. 지구가 우주 속 작은 점일지라도 그 안에 유일한 생명이 깃들어 특별하듯 눈물층 또한 작지만 위대한 우주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3년 전 즈음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대기 시간이 생겼다. 문득 예과 시절 강의실이 생각나 찾아가보니 사진학과로 바뀌어 있었다. 평소에도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사진을 시작해봐라’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곧장 중앙대 평생교육원 사진학과에 등록해 촬영기술을 배웠다.
사진으로 보는 눈은 어떻게 다른가?
눈물층을 촬영해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볼 때마다 의사로서 배우게 되더라. 이 환자는 어떤 체질인가, 식습관이 어땠기에 지방층이 산화됐나, 이런 눈은 얼마나 불편할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등등 끝없이 묻고 들여다봤다. 40년 넘게 의사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가진 의학 지식이 100%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좀 더 나은 치료법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습관화됐다. 그렇게 깊숙이 보다보니 어느 순간부턴 눈물층이 예술작품 같았다.
왜 눈물층이었나?
생명과학을 연구하다보니 항상 새로운 것, 남이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마찬가지로 작품 활동도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여야 했다. 눈물층은 단순히 눈을 보호하고 빛을 통과시키는 생리적 기능 외에 그 안에 수많은 상호작용과 에너지가 닿아 있다. 중력과 접선력, 세포의 전자기력, 눈물구멍의 흡입력 같은 힘들이 눈물층의 생성과 소멸을 주도한다. 별의 탄생과 죽음, 블랙홀이 세상을 정화하는 과정이 연상됐다. 특히 눈물층의 가장 바깥 지방층이 빛의 간섭을 받으면 다채로운 색채로 빛난다. 아름다움을 넘어 눈 속 소우주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다수의 눈물층 사진을 찍은 다음 경우에 따라 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포토샵 작업을 거친다. 이후 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꽃이나 우주와 같은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RGB(빨간색·초록색·파란색) LED를 비춘다. 우리는 느낄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퍼져나가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빨간색 작품은 그런 느낌을 표현했다. 사람은 저마다의 눈물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매력이다.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작품인 셈이다.
아무래도 육하원칙에 근거해 논문을 쓰던 습관 때문에 예술적인 영감이 부족할 순 있다. 영국 시인 존 키츠는 과학자 뉴턴이 프리즘으로 무지개를 여러 색깔로 풀어헤치는 바람에 자신의 ‘시심’을 파괴해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이 싫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인간의 정신을 풍족하게 해주는 예술이 과학과 접목했을 때 내는 시너지는 훨씬 근사하다.
부친도 예술 활동을 하는 의사였다고.
서예가이자 문필가로 시인인 고 서봉 김사달 박사다. 초등학교만 졸업했는데 독학으로 의사까지 됐다. 늘 탐구와 예술 활동을 함께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작품 활동은 계속할 생각인가?
최근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출사를 나갔다가 마주한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환경오염은 눈물층에도 좋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과학지식과 예술감각의 측면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해보고 싶다.
눈 건강을 위해 좋은 생활습관이 있나?
평소 자세가 중요하다. 거북목 자세를 하면 안압이 높아지기 때문에 녹내장 발병 위험성이 커진다. 요즘은 미세먼지로 인해 ‘건성안’ 증상이 심해질 수 있어 귀가 시에는 바로 눈 주위를 씻어주면 좋다. 수면 중간중간 깨는 불면증도 눈 건강에 해롭다. 건성안 환자의 70% 이상이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 폐경기 여성은 생리적인 변화 때문에 눈물의 분비량이 감소해 눈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다. 눈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것을 하기보다 취침 전 휴대전화 보는 습관 등 나쁜 것을 안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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