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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사고 원인? 이제 VR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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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선재 공업연구관
2024년 1월 22일 밤 11시 8분께 충남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이하 서천특화시장)에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292개 점포 가운데 수산물동과 식당동, 일반동 내 점포 227개가 전소되는 등 소방 추산 65억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감정에 나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서천특화시장의 화재 원인을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했다. 시장 안에 있던 전기 히터 코일과 배전반 주변, 멀티탭 주변 전선 등 모두 3곳에서 전선이 합선된 흔적인 ‘단락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을 통한 최첨단 재난 조사 기법을 활용했다. VR 기술로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실제와 동일하게 재구성해 화재 원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규명한 것이다. 현장 촬영 사진을 기반으로 했던 기존의 조사 기법과 달리 VR을 활용하면 실제 현장을 살펴보는 것처럼 볼 수 있다. 필요한 부분을 확대해 자세히 볼 수 있고 공간 이동도 자유롭다.
세계 최초로 이 기법을 개발한 김선재 공업연구관은 “2차 붕괴 위협과 현장에서 발생되는 유해물질 등으로 현장 조사에 어려움이 있는 화재 현장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최첨단 기법으로 세계 과학수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 1월 ‘제10회 대한민국 공무원상(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VR을 통한 재난 조사 기법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3월 7일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공업연구동을 찾았다. VR을 구현하는 핵심 장비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장치)’와 방향·동작을 제어하는 컨트롤러를 앞에 두고 김 연구관과 마주 앉았다.



VR을 통해 재난 조사를 한다고?
VR은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 실제와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화재 현장이나 각종 재난 사고 현장을 VR, 즉 가상공간으로 재구성하고 그 공간에서 다시 조사를 하는 것이다. 현장에 가지 않고도 실제 현장에 있는 것처럼 현장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어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컴퓨터 본체(소프트웨어)와 HMD, 컨트롤러가 필요하다. HMD를 착용하면 VR로 구현한 화재 현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상하좌우로 고개를 움직이거나 몸을 360도 회전하며 현장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컨트롤러로 현장을 확대할 수도, 공간을 이동할 수도 있다. 실제 현장을 살펴보듯 화면을 보면서 불이 난 길을 살피고 화재 원인을 조사할 수 있다.

재난 조사에 VR을 도입하게 된 이유는?
화재 현장에는 늘 붕괴 위험이 도사린다. 화재 원인 조사를 위해 추가로 현장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2021년 6월 17일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일어난 화재는 완전 진화되기까지 엿새가 걸렸다. 현장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다. 현장에 들어가더라도 유해물질은 보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해도 피하기 어렵다. 한여름에 보호복을 입고 현장에 들어가면 초주검이 되기 십상이다. 부상의 위험도 크다. 한정된 조건에서 조사관들은 현장 사진을 바탕으로 화재 원인을 분석한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실제 현장의 상황이나 조건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사진보다 더 실감나게 현장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게임이나 영화에서 봤던 VR 같은 첨단기술을 떠올렸다. VR 게임의 생동감과 몰입감을 생각하면 화재 현장도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재 현장을 VR로 구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3D 스캐너를 활용했다. 3D 스캐너는 실제 물체나 환경의 형상, 색상 정보를 디지털로 캡처해 3차원 데이터로 변환한다. 이 기술은 물체의 표면을 수많은 점(포인트 클라우드)으로 측정해 디지털로 구현해낸다. 단점은 전문기술이 필요하고 촬영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데다 화면이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이 조사 기법을 개발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 실제 현장과의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360도 카메라를 활용한다. 360도로 현장을 다양하게 촬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해상(4K·8K 수준) 촬영이 가능해 가상현실을 더 실감나고 세밀하게 구현할 수 있다. 같은 공간을 3D 스캐너를 사용했을 때 두 시간 걸렸던 촬영 시간도 360도 카메라를 사용한 뒤 20분으로 줄었다. 360도 카메라는 전문기술 없이도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
이 기법이 현장에 활용된 건 언제부터인가?
2020년 개발을 시작했다. 인력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화재 현장 조사를 하면서 연구를 병행했다. 2020년 12월에 발생한 경기 군포시 아파트 화재 사고가 첫 적용 사례다. 이후 3D 스캐너를 활용한 1차 버전의 한계를 느끼고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며 360도 카메라를 활용한 조사 기법을 도입했다. 이때부턴 연구 인력이 한 명 더 늘었고 협력 업체도 생겼다.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공장, 서천특화시장,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등의 화재 원인 조사에 활용됐다.

업무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개발에 매달린 이유가 있나?
재난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다. 원인을 알아야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화재 현장을 조사하는 담당자로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예방법을 도출하고 싶었다. 피해자 입장에서도 사고 원인이 빠르고 명확하게 밝혀져야 피해복구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원인을 좀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밝힐 수 있는 최첨단 조사 기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수십 년이 지나서 사고 기록을 살펴볼 때도 문서나 사진으로만 남아 있으면 문서 조각에 불과하지 않겠나. 자료로서도 VR로 기록한 현장이 더욱 가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첨단 기법으로 세계 과학수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제10회 대한민국 공무원상(국무총리 표창)’까지 수상했다.
국내외 경찰, 소방 등 유관기관에 VR을 활용한 최첨단 재난 조사 기법을 교육하러 갈 때마다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덕분에 안전하게 현장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꼈는데 큰 상까지 받았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느낌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원동력이 될 것 같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또 있나?
모든 재난 사고와 현장을 가상공간으로 옮기기 위해서 기술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현재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화면의 경우 모서리에 왜곡이 발생한다. 소프트웨어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고화질의 VR을 HMD로 그대로 전달하는 기술도 개발해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보급이 관건이다. 현재 VR을 활용한 최첨단 재난 조사 기법은 국과수 원주 본원과 대구과학수사연구소에서 단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국과수 전체에서 100%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이 조사 기법이 어떻게 활용되길 바라나?
궁극적인 바람은 법정에서 활용되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VR 자료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고 있다. 기존의 감정서는 사진을 기반으로 작성된다. 현장에 가본 적 없는 판사, 상대편 변호사가 이 감정서만으로 현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VR로 생생하게 현장을 확인하면 이해는 물론 사실 확인도 빨라진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는 데 중요한 기술이다. 기술을 잘 보완해 이 조사 기법이 상용화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강정미 기자

*4K·8K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HD TV를 1K(1280x720)라고 부르는데 4K(3840x2160)는 이보다도 네 배 이상 선명한 영상 기술, 8K는 4K 해상도의 네 배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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