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이 아빠 열다섯 명 5년째 공동육아 “우리 아이는 삼촌이 열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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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공동육아모임 ‘위꿀아’
“삼촌, 저도 목말 태워주세요!” “저도요 저도요!” “삼촌, 저는 그림책 읽어주세요~”
3월의 첫 주말,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위스테이별내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엔 아빠 손을 잡고 놀러 온 아이들로 북적였다. 눈에 띄는 것은 아이들이 아빠보다 친구의 아빠인 ‘삼촌’을 더 많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워낙 자주 모여 놀다보니 우리 아빠, 친구 아빠 구분 없이 아이들이 무척 잘 따라요. 아빠가 바빠서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날엔 삼촌들 손 잡고 소풍도 가고요. 정신없지 않냐고요? 모여서 놀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힘들 땐 다른 아빠가 아이를 봐주기도 하니 훨씬 편하죠.”
박태관 ‘위꿀아’ 대표는 공동육아의 장점을 이같이 설명했다. ‘위꿀아’는 15명의 아빠와 2019년생 돼지띠 자녀 15명으로 구성된 공동육아모임이다. ‘위꿀아’라는 이름은 ‘위스테이별내 꿀꿀이 아빠모임’이라는 뜻이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을 ‘아빠육아의 날’로 정하고 그날 하루만큼은 엄마 없이 아빠와 아이가 노는 것을 목표로 만들었다. 매달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수목원, 계곡, 농장 등 교외로 나가 하루 종일 뛰놀고 계절마다 야외캠핑이나 스키캠프 같은 대형 행사도 기획해 치른다. 아이들이 갓 돌이 지났을 무렵 결성된 모임은 어느덧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육아에 있어선 ‘2선’에 머물던 아빠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데에는 아파트 내 커뮤니티시설도 큰 역할을 했다. 위스테이별내는 국토교통부가 시범사업으로 추진한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유럽의 마을공동체를 모티프로 한 이 아파트는 모든 입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커뮤니티시설을 직접 설계했다. 덕분에 아파트 안에는 키움방, 어린이도서관, 체육관, 공유주방 등 육아를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고 이는 ‘독박육아’를 ‘함께하는 육아’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재원이 아빠 심상모 씨는 “위꿀아는 매달 한 번 모이는 게 목표지만 매주 주말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커뮤니티센터로 모여든다. 어제도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고 공유주방에서 밥도 해먹었다”고 말했다.
위꿀아는 긍정적인 육아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2023년부터 2년 연속 남양주시 마을공동체사업에 선정됐다. 그 뒤론 아파트 밖 다른 가족들을 초청해 아빠육아모임의 재미를 알리고 또 다른 모임이 결성되는 것도 돕고 있다. 몇몇 아빠의 의지로 만들어진 소모임이 공동육아를 지역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물론 아빠, 엄마들도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준서 아빠 장태원 씨는 “모임에 끼워달라는 엄마들의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저출생 시대, 공동육아를 통해 긍정육아의 에너지를 전파하고 있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박 대표에게 들어봤다.
공동육아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아파트 내 엄마공동육아모임이 만들어졌다. 2019년생 부모 중 육아휴직을 한 엄마가 많았던 덕이다. 그때 10명의 멤버 중 유일한 남성이었던 제나 아빠가 아빠들도 좀 모여보자고 제안했다. 엄마들은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는데 아빠들은 서로 얼굴 보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서 아빠인 나와 온이 아빠, 시은이 아빠가 아내 소개로 모임에 들어오면서 ‘위꿀아’가 탄생했다.
아빠만의 모임을 따로 만든 이유가 있나?
아빠가 애쓴다고 해도 엄마의 육아시간이 더 많은 건 어쩔 수 없더라. 더욱이 아빠가 아무리 잘해줘도 아이는 결국 엄마한테 간다. 서운했다(웃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이와 엄마가 정기적으로 완전히 분리돼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임의 목표를 ‘엄마에게 휴식 주기’, ‘아빠와 아이만의 추억 만들기’로 삼은 이유다.
요리대회, 농장체험, 체육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아이들은 모여 있기만 해도 잘 놀지만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매년 1월엔 1박 2일로 눈썰매장에 가고 5월엔 캠핑을 떠난다. 봄마다 딸기수확체험을 하는 것도 정례행사다. 매번 새로운 활동을 하다 보면 더 이상 할 게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진다. 다음에 뭘 할지는 모임 후 아빠들끼리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뭔가?
지난해 8월 마련한 ‘위꿀아 워터밤’ 행사다. 아파트 배드민턴장에 워터슬라이드를 설치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게 준비했다. 0~7세 미취학 아동과 부모를 대상으로 행사를 기획했는데 무려 150명이 몰렸다. 행사 규모가 크다 보니 아빠들이 놀이시설 설치, 물 뿌리기, 참가 접수, 안전관리 등 많은 역할을 맡아야 했는데 다들 그간 진행 박사가 된 덕에 아주 즐겁게 행사를 치렀다.
아빠마다 장기를 살린 ‘부캐’가 있다던데?
15명의 아빠가 있다는 건 15가지의 재주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모임에서 매번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요리를 잘하는 새린이 아빠는 우리 모임에선 셰프로 통한다. 미술을 전공한 재원이 아빠는 미술 선생님, 보드게임 설계가 직업인 연우 아빠는 놀이 선생님이다.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아빠들도 함께 육아를 하며 어울리다 보니 지금은 허물없이 모두 잘 지낸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아빠들은 공동육아를 하면서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한다. 라이프 쪽으로, 하하. 지난 설 연휴엔 다같이 1박 2일로 눈썰매장에 갔는데 몇몇 아빠는 금요일부터 회사에 휴가를 내 장을 보고 퀴즈대회를 준비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아이들이 즐거워하기 전에 아빠들이 먼저 이 모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감도 따른다.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양육 방식, 프로그램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하지만 다들 의욕이 넘치는 데다 아파트 주민들도 커뮤니티시설을 우리가 먼저 쓸 수 있도록 공동육아를 힘껏 지지해준다.
육아는 엄마가 더 잘할 것이란 편견을 깬 것 같다.
엄마육아모임이 먼저 생겼지만 지금은 아빠육아모임의 규모가 훨씬 더 커졌다. 육아에서 누가 더 잘하고는 없다. 축구에서 양쪽에서 크로스가 올라와야 득점 확률이 올라가듯 엄마, 아빠의 육아가 균형을 이뤄야 아이도 더 잘 자란다.
이제는 지역 내 다른 아빠육아모임까지 지원한다고.
2023년, 2024년 연속 남양주시 마을공동체사업에 선정된 뒤부터다. 덕분에 보조금을 받게 됐는데 이걸 어떻게 활용할까 하다 모임 밖 아빠들도 행사에 초청하기 시작했다. 많은 가족이 공동육아의 재미를 느끼고 다른 나이대 아이들의 육아모임도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마을 전체가 함께하는 ‘아빠육아의 날’은 두세 달에 한 번 모임을 갖는다. 지난해 11월엔 서른 가족이 실내체육관을 빌려 미술팀, 놀이팀, 요리팀으로 나눠 하루 종일 놀았다. 이날 참여한 인원만 모두 60명이었는데 아빠들이 직접 공유주방에서 요리해 식사도 함께했다. 덕분에 2022년생 호랑이띠 자녀의 육아모임 ‘블랙타이거’ 등 새로운 모임이 세 개나 생겼다.
공동육아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자.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 집에 가서 밥도 먹고 갑자기 부모님이 바쁜 일이 생기면 옆집에 ‘우리 애 좀 봐달라’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런 게 다 공동육아다. 다만 지금은 이웃과 수시로 접촉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부모가 먼저 이웃들과 친해지는 게 중요하다. 특히 아빠들은 더욱 노력해야 한다. 내 아이가 어떤 성향인지, 뭘 좋아하고 뭘 했을 때 즐거워하는지 고민하고 관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와 함께하면 된다.
공동육아의 어려움은 없나?
육아는 같이하는 게 훨씬 쉽다. 시간도 잘 가고 내가 좀 힘들 땐 다른 아빠들이 봐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부모하고만 노는 것보다 여럿이 있을 때 훨씬 에너지가 넘친다. 덕분에 주말이면 온라인 채팅방에 ‘오늘 키움방 갈 사람 있나요?’ 하는 메시지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를 함께 키우며 아빠들도 달라졌을 것 같다.
주말부부였던 시현이 아빠는 위꿀아에 참여하면서 육아 달인이 됐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데다 놀아주는 방법도 잘 몰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아이와 단둘이서도 잘 지낸다. 가족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빠들이 자녀를 함께 돌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사회적 울타리가 커졌다는 믿음이다. 요즘엔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울타리에만 머무르기 쉬운데 우리 모임에선 삼촌만 열네 명이다. 삼촌과 손잡고 화장실도 가고 아빠가 바쁜 날엔 다른 삼촌들과 놀러간다. 사회적 울타리가 내 가족에서 이웃으로 확장된 거다. 아빠들도 이런 모임이 없었다면 다른 아이가 예쁜 줄 몰랐을 거다. 내 자식만 소중한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는 내가 돌봐야 하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
남성의 육아 참여도를 높이려면 제도·정책도 중요하다.
여자 아이들은 네다섯 살만 돼도 아빠와 수영장에 가기 어렵다. 욕실과 탈의실에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인데 가족 화장실을 확충하는 것과 같은 작은 부분부터 사회변화가 필요하다. 당장 주변을 보면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들이 크게 늘어났다. 올해부터 육아휴직 급여가 크게 오른 덕에 계획에 없던 이들까지 신청하는 상황이다. 시차출퇴근 제도 등이 더 활성화돼 아빠들도 눈치 보지 않고 즐겁게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사회가 마련해주면 좋겠다. 아빠육아는 어렵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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