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파주 들판에서 ‘독수리식당’ 영업 “멸종위기 동물 구하는 일이 사람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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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생태보존회 윤도영 이사장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임진강 너머 민간인통제구역을 마주하고 있는 빈 들판 한가운데 요즘 성업 중인 식당이 있다. 바로 ‘독수리식당’이다. 이름 그대로 독수리를 위한 식당이다. 해마다 약 2000마리의 독수리가 몽골에서 우리나라로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온다. 이 중 300~400여 마리가 파주 일대에서 겨울을 보낸다. 독수리식당은 몽골에서 수천㎞를 날아오느라 탈진하거나 먹이를 못 구해 배고픈 독수리를 위해 매년 11월부터 3월까지 일주일에 세 번(화·목·토요일) 돼지고기 등을 제공하고 있다.
2월 11일 찾은 독수리식당은 ‘오픈런(개점 전부터 줄지어 대기하는 것)’하는 독수리 손님으로 가득했다.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개체 수는 점점 늘어나 300마리 넘게 모여들었다. 몸길이 1.2m 안팎, 날개를 펼치면 길이 2.5~3m에 달하는 거대한 독수리가 떼로 모여 있는 모습은 난생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독수리식당이 문을 여는 날이면 이 같은 광경을 직접 눈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줄을 잇는다.
오전 10시가 되자 독수리식당을 운영하는 임진강생태보존회 윤도영 이사장이 돼지고기를 실은 1톤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윤 이사장은 트럭을 몰아 빈 들판에 들어선 뒤 돼지고기가 든 포대를 하나씩 내려놨다. 이날 독수리식당이 제공한 돼지고기는 80㎏짜리 포대 5개. 400㎏에 달하는 돼지고기를 들판에 펼쳐놓자 기다리던 독수리들이 날개를 펼친 채 겅중겅중 떼 지어 몰려왔다. 까치와 까마귀는 물론 일대에서 월동 중인 흰꼬리수리와 재두루미도 날아왔다. 이내 치열한 먹이 경쟁이 이어졌다. 고기가 바닥을 드러내기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배를 채운 독수리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일부는 근처에서 휴식을 즐겼다.
윤 이사장이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건 2009년부터다. 7년이 지난 2016년부터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독수리식당을 운영해왔다. 독수리를 위한 먹이는 회원들의 회비와 모금으로 마련한다.
아무리 독수리를 위한 일이라도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들판에 매번 수백㎏의 먹이를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터.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그런데도 윤 이사장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파주에선 겨울 철새인 독수리를 쉽게 볼 수 있다. 파주가 고향이다보니 독수리를 자주 접했고 독수리가 먹이 부족이나 농약 중독으로 폐사한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었다. 매년 파주를 찾는 독수리 수가 줄어든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독수리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이다. 독수리가 사라진다는 건 인간의 생존도 위협받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 싶었다. 마을 주민들이 간간이 독수리의 먹이를 챙겨준다는 얘기를 듣고 겨우내 독수리가 굶지 않도록 먹이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봉사 차원에서 한 일이었다. 7년을 혼자서 하다보니 힘이 들더라.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뜻을 모아 임진강생태보존회를 결성해 체계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회원이 400명까지 늘었고 매일 20명 정도가 나와 독수리식당 일을 함께하고 있다.
독수리는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하나?
독수리는 스스로 사냥이 가능한 이글(Eagle)과 사냥 능력이 부족해 죽은 동물 사체를 먹는 벌처(Vulture)로 나뉜다.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는 벌처다. 더욱이 대부분 세 살 이하의 어린 개체다. 스스로 사냥을 할 수 없고 서식처 파괴와 환경 변화 등으로 죽은 동물 사체 등도 찾기가 어려워 먹이를 주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농약에 중독된 사체를 먹고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독수리에게 제공하는 먹이의 양이 상당하다.
한 번에 돼지고기 400~500㎏ 정도를 제공한다. 고깃값만 40만~50만 원에 달한다. 먹이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양이다. 독수리는 보통 한 번에 400~500g의 먹이를 먹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한 번에 섭취하는 돼지고기는 80g 정도에 불과하다. 독수리는 이 정도 양이면 일주일간 먹이를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독수리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먹이를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최소한의 먹이만 제공하는 이유는?
야생의 독수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매번 배부르게 먹이를 제공한다면 보호가 아니라 독수리를 ‘사육’하는 게 될 수 있다. 그럼 독수리식당이 아니라 독수리농장이 되는 거다. 이곳에서 겨울을 잘 보내고 몽골로 돌아가 야생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야생 상태의 독수리가 위험하진 않나?
벌처 독수리는 살아 있는 동물을 사냥하지 않는다. 예민한 동물이라 먹이를 주더라도 사람 가까이 오지 않는다. 특히 이글과 달리 잘 날지 못하고 주로 걸어다니기 때문에 위협적이지 않다. 그러나 야생의 독수리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멀리서 먹이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독수리식당 운영이 올해로 17년째다.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독수리를 보호하는 게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수리가 멸종한다면 생태계가 파괴됐다는 얘기고 그렇다면 사람도 살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멸종위기종인 독수리를 살리는 건 지역 생태계와 먹이사슬을 살리는 일이다. 결국 모두가 살기 위한 일이다. 사실 내 본업은 따로 있다. 본업과 별개로 이 일을 계속하는 건 그만큼 이 일이 좋고 보람 있기 때문이다. 독수리식당을 운영한 뒤 매년 파주를 찾는 독수리 개체 수가 늘고 있다. 독수리식당을 응원하고 뜻을 함께해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치지 않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지난겨울에 한쪽 발을 잃어 장애를 가진 독수리가 기억에 남는다. 먹이 경쟁에서 밀려 제대로 먹지 못하는 녀석을 열심히 챙겨줬는데 올해 다시 찾아왔더라. 먹이를 주는 나를 마치 알아본 것처럼 머리 위를 맴돌았다. 꿋꿋하게 살아서 수천㎞를 날아 다시 온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독수리가 오지 않을 땐 걱정되기도 하겠다.
독수리도 날씨가 흐리고 궂은 날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먹이를 차려놔도 독수리가 많이 오지 않을 때면 알면서도 걱정이 된다. 찾아와서 열심히 먹고 가는 모습을 봐야 안심이 된다.
독수리 말고 다른 새들도 온다고 들었다.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나 재두루미 같은 새들도 온다. 독수리 말고도 이런 희귀한 새들을 볼 수 있어 독수리식당을 찾는 사람이 많다.
독수리식당은 누구나 찾을 수 있나?
독수리 사진 촬영이나 탐조를 원한다면 전화(임진강생태보존회 031-952-8998)로 미리 예약만 하면 된다. 독수리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독수리의 생태와 습성, 독수리식당 운영 취지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야생의 독수리 수백 마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다보니 매해 겨울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주말에는 특히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 단위 탐조객이 많다.
독수리식당을 찾을 때 유의할 게 있다면?
독수리는 빨간색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컬러풀한 옷보다는 검은색이나 흰색 옷을 입는 게 좋다. 후각도 예민해 향수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청각도 예민하기 때문에 큰 소리나 고음역의 소리는 내지 않는 게 좋다. 무엇보다 독수리식당은 독수리를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는 독수리를 보호하고자 먹이를 주는 곳이라는 취지를 잘 이해하고 운영진의 안내를 잘 따라주길 바란다.
독수리식당 말고도 다른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보존회는 어떤 단체인가?
임진강과 디엠지(DMZ) 권역의 자연과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독수리와 같은 철새 보호뿐 아니라 임진강 수질 및 생태조사, 정화 활동, 문화유적 안내, 생태학교 운영, 생태환경 사진전 등 환경 보전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은 400명에 달한다. 지역 주민부터 환경과 동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모두 봉사 차원에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을 모아 독수리 먹이도 주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수리식당을 위한 후원은 회원이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멸종위기종을 지키는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
앞으로의 바람은?
현재 국내에서 정기적으로 독수리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독수리식당은 파주와 경남 고성, 두 곳에 불과하다. 멸종위기종을 지키는 건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차원의 지원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독수리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조사와 계획이 수립되길 바란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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