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공장에서 1년 만에 재기 성공 “중장년 직원들과 신뢰의 일터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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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라이드 김도영 대표·김현준 본부장
2023년 2월 18일, 강원 횡성에 위치한 육가공업체 케이프라이드의 김도영 대표와 김현준 본부장은 막 증축을 마친 케이프라이드 본사 건물이 불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회사 건물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인 뒤였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몇 시간 뒤 전소된 건물 앞에서 망연자실 서 있던 김 대표는 반드시 재건을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5년 2월 19일, 새롭게 지어진 케이프라이드에는 활기가 넘쳤다. 불이 났던 생산동 건물에서는 한창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생산라인 앞에 서 있는 상당수의 직원이 나이 지긋한 중장년이라는 점이다. 현재 330명 정도 되는 케이프라이드 직원 중 중장년 직원은 절반이 넘는다. 김 대표는 “재건 이후 생산라인에 들어온 상당수 직원은 강원중장년내일센터의 도움을 받아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중장년내일센터는 40세 이상 중장년이 새로운 노동시장과 고용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퇴직 이전 단계부터 구직활동에 이르기까지 맞춤형 고용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케이프라이드는 이곳에서 재취업 준비를 마친 중장년층 직원을 상당수 고용했다. 중장년 직원들과 함께 재기에 성공한 케이프라이드의 사례는 2024년 노사발전재단이 공모한 ‘다시 시작하는 중장년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이프라이드의 재건 과정 곳곳에는 중장년내일센터 외에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강원지사, 강원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같은 공공기관의 도움이 있었다. 김 대표가 화재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갑작스럽게 화재로 할 일을 잃게 된 직원들의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재건 과정에서 우리 ‘식구’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고 말했다. 영업망, 새로운 생산설비 확보보다 ‘식구’들의 일자리가 더 걱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재건이 끝나고 돌아온 직원들도 상당수다. 김 본부장은 “케이프라이드에서 병역특례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던 품질관리팀의 한 직원은 우리가 알선해준 다른 업체에서 병역의무를 마치고 기다렸다가 재입사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린 화재는 오히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를 키운 계기가 됐다.
재건 이후 중장년 직원을 대거 고용한 것도 ‘신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일이다. 위기를 어떻게 신뢰를 쌓아올릴 기회로 만들었는지 케이프라이드를 찾아 김 대표와 김 본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롭게 생산공장을 세우면서 중장년 직원들을 대거 뽑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도영 대표(이하 ‘대표’) | 케이프라이드가 있는 강원 횡성은 인구소멸지역이다. 강원도 어느 지역보다 고령인구가 많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인재를 뽑을 때 중장년 인력을 고려하게 됐다. 케이프라이드의 업종별 특성도 중장년 인력을 뽑는 이유가 됐다. 육가공업에는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공정이 많다. 잘 훈련된 중장년 인력은 신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 생산라인의 상당수는 ‘어머니’들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고기반찬을 해준다는 느낌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중장년내일센터를 어떻게 활용했나?
김현준 본부장(이하 ‘본부장’) | 그동안 케이프라이드는 중장년내일센터, 장애인고용공단 같은 인력 문제를 다루는 공공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가 위기에 닥쳤을 때 지역 내 많은 공공기관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줬다. 공장 재건을 앞두고는 여러 공공기관을 만나 인력 충원 계획과 회사 운영 계획 등을 논의했다. 중장년내일센터에서는 ‘사업주지원패키지’를 안내해줬다. 센터의 커리어 컨설턴트가 근로 환경과 채용 여건 등을 진단해 일자리 컨설팅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센터에서는 우리 채용 연령 기준을 63세로 늘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진단해줬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서 원주고용복지플러스센터, 강원광역새일센터, 원주시청과 협업해서 기업설명회 겸 현장 면접 행사를 개최했는데 현장에 80여 명이 참석했다. 그중 40대 3명, 50대 25명, 60대 이상 15명 등 46명이 채용됐다.
중장년 직원과 청년 직원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나?
본부장 | 기존에도 직원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돼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던 동아리들인데 지금도 사내에 여러 동아리가 조직돼 있다. 풋살, 테니스, 자전거, 트레킹, 필라테스 등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직원들은 친목을 다지고 회사생활의 노하우를 나눈다.
중장년 직원들이 회사의 재건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나?
대표 |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회사의 중장년 직원들은 ‘신뢰’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직원의 이직률이 낮은 편이다. 직원들이 자리 잡고 회사의 중추 인력이 될 때까지 선배들의 도움이 무척 크다. 재건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위기 상황에서 회사를 다잡은 것은 중장년 직원들이다. 새로 들어온 중장년 직원들은 마치 오래 있었던 직원들처럼 자연스럽게 회사에 녹아들었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게 중장년 직원들이 이끌어줬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일을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대표 | 우리는 직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한다. 직원들의 역량이 곧 회사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동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직원들이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이다. 식육처리기능사, 식육가공기사 자격증이 많은데 사실 케이프라이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두 가지 자격증을 모두 교육받고 시험 칠 수 있는 국가기술인증 시험장이기도 하다. 우리 직원 중에는 사무직인데도 식육처리기능사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 많다. 회사의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런 직원에게는 인센티브도 충분히 주어진다.
본부장 | 선취업 후진학 제도도 있어 고교 졸업 이후 곧바로 취업한 직원에게는 대학에 진학할 기회도 준다. 그 직원이 졸업하는 날에는 직원들이 총출동해 축하해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케이프라이드에 다닌다’고 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과 함께 직원들이 회사에 자부심을 느끼고 회사를 믿게 하기 위해서다.
오피스동 로비에 ‘신뢰와 자부심으로 가득한 조직’이라는 회사의 비전이 적혀 있던데.
본부장 | 회사의 미션은 ‘지구와 인간의 건강한 가치 실현’이고 비전은 ‘신뢰와 자부심으로 가득한 조직’이다. 모든 회사가 미션과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핏 지나치기 쉽지만 우리 직원들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의견을 모은 끝에 끌어낸 결과다.
대표 | 케이프라이드의 모체가 된 육류업체 ‘보담’이 있는데 ‘보담’이라는 말은 ‘보듬다’를 명사형으로 만든 단어다. 육류를 다루는 우리 회사는 단지 먹을거리를 파는 곳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창출해내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업하고 남은 부산물을 친환경적으로 다루는 데 신경을 쓴다. 오폐수를 처리하면서도 친환경 에너지로 회수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이런 고민은 안팎으로 회사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신뢰’라는 단어가 여기에서도 나오는데 회사가 직원의 신뢰를 얻으려면 일단 회사가 잘나가야 한다. 잘나가는 회사는 하루이틀 반짝 이익을 얻는 회사가 아니다.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회사다. 직원의 역량을 키우는 고민을 하는 이유도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서로 자부심을 느끼고 믿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범적인 일자리를 조성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인가?
대표 | 여러 공공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것도 우리의 노력이 회사는 물론 지역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공공기관을 통해 직원들의 재교육을 의뢰하기도 하고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려고 노력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지역 내 문화재단 같은 조직을 이끌기도 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대표 | 화재가 난 것이 2023년 2월, 재건 후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것이 2024년 2월이다. 이제 꼭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은 무너졌던 회사를 다시 일으키는 시간이었고 이제는 도약할 일만 남았다. 회사가 직원, 지역, 나아가 국가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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