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팀 코리아 겨울왕국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2025 제9회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이 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2월 14일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종합순위 2위에 오르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태극전사들은 아시아 최대 스포츠 경쟁국인 중국의 안방에서 당초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며 기량을 과시했다. 치열한 메달 경쟁이 예상됐던 일본과도 격차를 벌렸다.
이번 대회는 8년 만에 개최된 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2021년 대회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취소되면서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이후 처음 열렸다. 하얼빈에는 대회 사상 최다 규모인 34개국 1275명의 선수단이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6개 종목에 선수 149명이 참가해 ‘겨울의 꿈, 아시아의 사랑(Dream of Winter, Love among Asia)’이라는 슬로건을 빛냈다.





중국 텃세 속 쇼트트랙 금 ‘싹쓸이’
우리나라 쇼트트랙은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걸린 9개의 금메달 중 6개를 싹쓸이하면서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을 세웠다. 앞서 한국은 1999 강원동계아시안게임과 2003 아오모리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6개의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대표팀은 이 밖에도 은메달 4개와 동메달 3개를 추가하며 쇼트트랙에서만 도합 1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레이스 첫날인 2월 8일부터 대표팀은 금메달 5개 중 4개를 쓸어담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혼성 2000m 계주에서 첫 금메달을 신고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고 기세를 이어받은 박지원(서울시청)과 김길리(성남시청)가 남녀 1500ｍ에서 각각 시상대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같은 날 ‘에이스’ 최민정(성남시청)은 여자 500m에서 우승했다. 우리나라 선수가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대회 역사상 처음이다. 단거리인 500m는 1990 삿포로아시안게임부터 7회 연속 중국이 금메달을 휩쓸었다. 더욱이 쇼트트랙 경기가 모두 오전에 배정된 것과 달리 중국은 우리나라 대표팀의 훈련을 오후에 배정하는 등 견제에 나섰지만 선수들은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여기에 최민정, 김길리, 이소연이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금·은·동메달을 모두 가져오는 ‘올 포디움’의 업적까지 이뤘다.
2월 9일에는 남자 1000m에서 장성우(화성시청), 여자 1000m에서 최민정이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기록을 두 번이나 깨며 우승한 최민정은 대회 3관왕에 오르며 쇼트트랙 여제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녹슬지 않은 실력을 입증했다.
대회 마지막 종목인 남녀 계주에서는 중국의 텃세로 선수들이 충돌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우리나라는 쇼트트랙에서 당초 목표치였던 금메달 6개를 따내며 2026 밀라노·코르티나동계올림픽의 전망을 환하게 밝혔다. 대회가 끝난 뒤 중국 대표팀 장징 총감독조차 “한국을 상대로 금메달을 따기란 호랑이 이빨 뽑기와 같았다”며 한국 쇼트트랙의 실력에 고개를 저었다.





‘고딩 스노보더’ 이채운 등 신예 맹활약
전통적인 효자 종목 밖 신예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 이나현(한국체대)은 생애 첫 출전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메달 4개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처음 딴 여자 100m 금메달은 자신의 첫 국제대회 메달이었다. 이어 팀 스프린트에서 김민선(의정부시청)과 함께 금메달을 합작했고 500m와 1000m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추가했다. 대회 후 이나현은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딸 줄은 몰랐다. 정말 내가 다 딴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지었다. 2005년생인 이나현이 선배 이승훈(알펜시아)의 한국 선수 역대 개인 통산 동계아시안게임 최다 메달 기록(9개)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설상에선 10대 선수 이채운의 활약이 빛났다. 2006년생인 이채운(수리고)은 2월 8일 열린 스노보드 남자 슬로프스타일 결선에서 90.00의 압도적 기록으로 우승했다. 역대 이 종목에서 우리나라가 따낸 첫 금메달이다.
앞서 이채운은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에서 역대 최연소(16세 10월)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이채운은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이어가게 됐다.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에선 2008년생 김건희(시흥매화고)가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13일 열릴 예정이었던 경기가 강풍으로 취소됐고 전날 예선 성적으로 우승자를 가리면서 김건희에게 행운이 돌아갔다.





이승훈, 대한민국에 첫 프리스키 우승 안겨
프리스키에서도 역대 우리나라의 첫 금메달이 나왔다. 이승훈(한국체대)은 2월 8일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정상에 올랐다. 한국 스키 대표팀은 알파인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금메달을 딴 적은 있지만 프리스타일 스키에서 금메달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생인 이승훈은 주니어 시절부터 무서운 신예로 주목받았다. 2021년 국제스키연맹(FIS)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고 2024년 2월 열린 2023-24시즌 FIS 월드컵에선 동메달을 획득했다. 최근 연습 도중 눈 쪽을 다쳐 시야가 가려진 불리한 상황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을 증명해냈다.

조윤 기자



동계스포츠 새 역사 쓴 이승훈
개인 통산 메달 9개… “4년 뒤 대회도 고민해보겠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아 있는 전설 이승훈은 역대 동계아시안게임 최다 메달 신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의 새 역사를 썼다. 2월 11일 남자 팀 추월에 정재원(의정부시청), 박상언(한국체대)과 함께 출전해 은메달을 거머쥔 결과다.
2011 아스타나·알마티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딴 이승훈은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선 4관왕을 달성했다. 이번에 메달 하나를 더 추가한 그는 쇼트트랙 김동성(금 3·은 3·동 2)을 제치고 역대 동계아시안게임 개인 통산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의 기록은 2009년 쇼트트랙에서 종목을 바꾼 이후 이뤄낸 결과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깊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선 그의 주종목인 매스스타트도 중국의 취약종목이라는 이유로 빠졌다. 1988년생으로 36세인 이승훈은 “난 참 운이 좋은 선수다. 2009년 전향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결정이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시작점이 됐다”면서 “4년 뒤 대회도 그때 가서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 귀화선수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
‘금발의 태극전사’ 한국 바이애슬론 역사상 첫 金 안겨
러시아 출신 귀화 선수인 ‘금발의 태극전사’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전남 체육회)가 2월 11일 열린 여자 7.5㎞ 스프린트 경기에서 22분45초4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 바이애슬론 사상 첫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대회를 앞두고 “한국인으로 거듭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던 그의 목표가 이뤄진 순간이다. 압바꾸모바는 13일 열린 여자 4x6㎞ 계주에선 은메달도 추가했다.
러시아 청소년 대표 출신인 압바꾸모바는 2016년 우리나라로 귀화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설상 종목에서 우수한 인재가 필요했던 한국 바이애슬론계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압바꾸모바는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15㎞ 개인전에서 16위에 오르며 역대 한국 여자 선수 최고 기록을 썼다. 하지만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땐 73위에 그치면서 부진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큰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절치부심하면서 예상을 뛰어넘어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대한바이애슬론연맹이 귀화를 추진한 지 9년 만의 쾌거다. 연맹은 “압바꾸모바는 각종 국제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일을 평소 굉장히 좋아했다”며 “이번 메달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아시아권에서 바이애슬론 종목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