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보다 중요한 건 나다운 일! 육체노동 견디며 ‘나’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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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청년 청소부 김예지 씨
오전 6시, 새벽의 어스름 속에 알람이 울린다. 김예지 씨가 기지개를 켠다. 오늘도 주어진 일을 마치려면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함께 일하는 어머니를 차에 태워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계단을 쓸고 변기와 책상을 닦고 쓰레기를 버린다. 그렇게 하루에 서너 곳을 청소하고 나면 오후 2시다. 걸레와 빗자루, 고무장갑 등 청소도구를 정리한 뒤 어머니가 싸온 김밥으로 늦은 식사를 한다. 이후엔 낮잠을 자고 일어나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워라밸’이 완벽한 삶. 김 씨는 “청소라는 내 몸에 맞는 일을 하며 ‘일에 짓눌린 삶’이 아닌 ‘일도 있는 삶’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직업은 ‘청소부’다. 청년 청소부라니?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의문이다. 청소 일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 스물여섯 살 때다. 대학을 졸업한 뒤 상품스타일리스트로 취직했지만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처음 해본 조직생활 역시 녹록지 않았다. 이전부터 앓던 불안장애는 날로 심해졌다. 그때 만난 것이 청소 일이었다.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데다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고 조직생활의 어려움도 없다는 점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김 씨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원피스 대신 작업복을 걸치고 핸드백 대신 마대자루를 쥐기까지 큰 망설임은 없었다.
문제는 일을 하고 난 뒤부터였다. 스스로는 편견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학 나온 사람이 왜 그런 일을?”, “젊은 사람이 회사에 다녀야지”, “부모님이 속상해하시겠네, 쯧쯧”. 곳곳에서 날아드는 비난에 마음에 숭숭 구멍이 났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청소부로 일하며 느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좌절을 만화로 풀어냈다. ‘누가 청소부의 삶을 궁금해 할까?’ 하는 걱정과 달리 반응은 뜨거웠다. “이런 솔직한 이야기가 필요했어요”, “너무 외로웠는데 나만 하는 고민이 아니었네요”…. 현실과 꿈, 자아와 세상 사이에서 힘겨운 외줄타기를 해온 청년들이 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2019년 펴낸 첫 만화 에세이 ‘저 청소 일 하는데요?’는 20쇄를 넘겼다.
청소부 11년 차. 지난해 11월 출간한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을 포함해 그간 책을 세 권이나 더 썼다. 명함은 다섯 개로 늘었다. 청소부라는 타이틀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자, 강사라는 직함이 더해졌다. ‘평균’이 정답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샛길을 쓸고 닦아온 청년의 이야기는 책으로, 방송으로, 강연으로 세상에 퍼져나갔다. 하는 일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삶의 중심축은 청소다. 김 씨는 “청소 일은 내가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해준 일”이라고 했다. 청소라는 버팀목이 있었기에 작가라는 꿈도 이룰 수 있었다는, 드물고 귀한 이야기였다.
청소부의 모습은 사회 뒤편에 숨겨져왔다. 청소부의 하루가 궁금하다.
월·수·금, 일주일에 세 번 일한다. 한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로 건물이나 사무실별로 각각 계약을 맺고 여러 곳을 청소한다. 경찰서, 공장, 상가 등 일주일에 다섯 곳을 치운다. 한곳에 상주하지 않고 하루에 서너 곳을 돌며 빠르게 치우고 빠지는 방식이다. 오후 시간, 원하는 일을 하며 맘껏 활용할 수 있는 이유다.
청년 청소부는 더욱이 낯설다. 청소 일을 시작하며 망설임이 없었다는 점 또한 의외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때였다. 보험회사와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없으니 정작 취직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 그때 청소 일을 하고 있던 엄마가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수입도 괜찮고 시간관리도 편한 데다 사람 스트레스가 없다는 거다. 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엄마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육체노동인데 힘들진 않았나?
처음엔 매일 울었다. 걸레와 빗자루를 잡을 때 악력을 많이 쓰다 보니 손이 퉁퉁 부었고 굳은살도 많이 생겼다.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더운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청소부에겐 더욱 힘겨웠다. 봄엔 미세먼지가, 가을엔 낙엽이 골칫덩이였다. 더러운 건 매일 봐도 왜 똑같이 더럽게만 느껴지는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반복작업이다 보니 어느새 일을 운동처럼 가볍게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적응되지 않는 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시선이 어땠길래.
젊은 사람이 청소를 하고 있으니 신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개중에 “왜 회사에 안 다니고 이런 일을 하냐”, “대학은 나왔냐”, “부모님이 이런 일 하는 거 아시냐”는 등의 말은 큰 상처였다.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까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위축되더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요즘 뭐 하냐고 물어보면 청소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청소부 김예지’를 하대했던 시절이었다.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은 건 시선을 극복한 결과인가?
어느 순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모진 말을 한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잊고 발 뻗고 잘 텐데 나 혼자 끙끙 앓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타인의 시선과 말로 내 자신을 망가뜨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도 아픈 시선은 있다. 이겨내진 못했지만 견디는 법을 터득했다.
청소부의 삶을 그린 책엔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첫 책을 낸 건 청소 일을 한 지 3~4년쯤 됐을 때다. 일은 적성에 잘 맞았고 내 명의의 집을 장만할 만큼 수입도 안정적이었다. 다만 인식과 처우는 크게 나아진 게 없었다. 더욱이 그때까지도 일러스트레이터로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고민이 깊었다. 그렇다고 당장 청소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을 그림으로 정리해보자 싶었다. 청소부의 삶에 누가 관심이 있겠나 하는 생각에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맘껏 썼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책에는 청소부로서의 자긍심과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그 지점이 많은 이에게 가닿은 것 같다.
청소 일은 생계를 책임져주는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작가도 일러스트레이터도 되지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내가 꿈꾸는 자아 앞에서 청소부라는 자아는 자꾸만 숨기고 싶은 무엇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다양한 고민 속에서도 10년간 청소 일을 그만두지 않은 덕에 나만이 얘기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됐다. 독자들은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나의 모습을 새로운 인생의 사례나 지표로 받아들여줬다.
책을 본 뒤 청소 일에 뛰어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고.
나를 보고 청소 일을 시작했다는 청년들을 종종 만난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영감을 줬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엔 청소 일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이 정말 많았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생기는 상황에서도 청소는 가장 근원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청소부를 하려는 청년이 많아지면서 요즘엔 청소 일을 가르쳐주는 학원까지 생겨났다. 또래의 청소부들을 만나면 신박한 청소법, 세금내는 법, 일당 안 떼이는 법 같은 걸 공유한다(웃음).
최근 청년들이 블루칼라 노동에 뛰어드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
뉴스를 보면서 그간 청년들이 남들이 보기에 좋은 삶을 사느라 많이 지쳤구나 싶었다. 살면서 누가 도배사가 되라, 건설 노동자가 되라고 권유하는 경우는 없지 않나. 블루칼라 청년 노동자들은 평균적인 삶, 세상의 잣대와는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의 생각으로 직업을 결정한 거다. ‘내 방식대로 살겠다’는 외침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오는 피로감 또한 큰 영향을 미쳤을 거다.
육체적으로 오래 할 수 있나? 더불어 직업이 생계수단에만 그쳐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60대 부모님 모두 청소 일을 하시는데 육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특히 엄마는 평생 육체노동만 하셨지만 무척 건강하다. 일의 지속성은 스스로 어떻게 몸 관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직업을 생계수단으로 여길지 자아실현의 축으로 삼을지 역시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육체노동을 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미워하진 말자는 거다.
청년 청소부가 생각하는 직업의 의미는 뭔가?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현대사회에서 직업은 사회적 계급으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다만 그것은 ‘암묵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그러니 내 일의 귀함은 내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어나가면 되는 게 아닐까. 청년들이 책상에 앉아 안정된 미래만 꿈꾸고 높은 연봉만이 삶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계급장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청소부 11년 차다. 본인의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다.
예전엔 재밌던 일에도 금방 싫증을 내고 어려우면 도망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청소 일은 명절을 제외하곤 하루도 쉴 수가 없다. 대충 일하면 곧장 티가 나고 정확히 일을 한 만큼만 대가가 따라온다. 그 속에서 성실과 책임을 배웠다. 내가 나를 위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줬다. 특히 그림 그리는 ‘N잡러’ 청소부로 살며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노동을 숭배하는 세상에서 적당히 일하는 삶을 살게 해준 것도, 돈에 패배감을 느끼던 내게 부자가 아니어도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단 걸 알려준 것도 청소 일이다. 청소를 통해 나는 진짜 어른이 됐다.
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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