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놀이? 디지털 게임으로 이명 환자 치료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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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5 최고혁신상 받은 한양대 게임연구실 김기범 교수팀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에서 참가 국가 중 가장 많은(257개) 혁신상(Honoree)을 수상했다. CES 혁신상은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관하며 전 세계 100여 명의 심사위원 평가를 통해 혁신제품·기술에 수여된다. 이 중에서도 분야별로 가장 뛰어난 혁신을 보여준 출품작에는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이 주어진다. 올해는 ▲뷰티·퍼스널 케어 ▲패션 테크 ▲산업 장비 및 기계 ▲펫 테크·동물 복지 등 네 개 분야가 새롭게 추가돼 총 33개 분야에서 평가가 이뤄졌다.
CES 2025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인공지능(AI) 기술의 실용화’다. 이는 최고혁신상 수상작에서도 확인된다. 생성형 AI를 탑재한 프로젝터, AI 독서 플랫폼, AI 기반의 스팸 대응 기술 등이 수상작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 한양대학교 대학원 휴먼컴퓨터인터랙션(HCI)학과 게임연구실(Play Lab, 김기범 교수)이 학교 연구소 단위로는 유일하게 디지털 헬스 분야 최고혁신상을 수상해 주목받았다.
게임연구실에서 어떻게 헬스 분야의 혁신을 만들어냈을까? 한양대 게임연구실은 AI기술과 가상현실(VR)을 접목한 디지털 게임을 활용해 이명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기기 ‘TD 스퀘어(TD Square, Tinnitus Digital Treatment Device)’를 선보였다. VR 환경에서 AI기술이 접목된 인공신경망인 변이형 오토인코더(Variational Autoencoder)가 생성한 환자 맞춤형 이명 입체 음향 아바타를 환자가 직접 조작하게 함으로써 이명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핵심 원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이명 환자는 증가세로 2022년 34만 3704명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7억 4000만 명이 이명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명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TD 스퀘어는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제작됐다. 한양대 게임연구실 김기범 교수(한양대 ERICA ICT 융합학부)를 필두로 대학원생들(한양대 대학원 HCI학과 소속 김지문·대여운·최호준·한상선 등)과 함께 5년에 걸쳐 이뤄냈다. 학생들의 학사 전공은 문과계와 이공계에 고루 분포해 있다. 전공을 불문한 시너지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용자가 TD 스퀘어를 더욱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TD 스퀘어는 2020년 초기 버전부터 현재까지 세 번의 진화 과정을 거쳤다. 최초 버전은 사용자가 소리를 느끼는 방향에서 부유 중인 미세 입자를 잡아내 쓰레기통에 던지면 소리가 사라지고 두 번째 버전은 사용자가 커다란 구 모형을 깎아낼수록 소리가 줄어드는 방식이었다. 세 번째 버전은 사용자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등장하는 물방울들을 터트리는 형태다. “첫 번째, 두 번째 버전은 병원과 보건소를 타깃으로 했고 세 번째 버전은 개인이 집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는 게 김 교수의 얘기다. 왜 이명 치료기기를 개발하게 된 것인지, 효과는 어떤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CES 2025의 현장 분위기를 전해달라.
크게는 ‘AI’와 ‘디지털 헬스’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겠다. 지난해 CES는 AI 기술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인가 구상하는 자리였다면 올해는 AI가 들어가지 않은 출품작이 없더라. 우리가 개발한 TD 스퀘어 역시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 분야에선 TD 스퀘어가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기술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TD 스퀘어는 실제 의료현장과 협업해 만든 기기다. 환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기술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침습 치료기기라는 점을 우수하게 평가한 심사평도 있었다. 머리에 젤을 바르고 핀을 꽂아 전기신호를 흐르게 하는 침습기기와 달리 TD 스퀘어는 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만 착용하면 된다.
어떤 원리로 이명 증상을 치료하는 것인가?
이명은 치료약이 없는 데다 완치도 불가하다. 증상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때문에 인지행동치료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실제로 이명 치료법 중에 ‘상담’이 있다. 상담을 통해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이명으로 인한 일상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방법이다. 환자가 호소하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를 들려주며 치료하는 방법도 있지만 몰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TD 스퀘어는 환자에게 다중감각(시각·청각·촉각)을 느낄 수 있는 가상환경을 제공한다. 그 안에서 환자는 이명을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조작할 수 있어 이명이 치료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치료효과가 임상적으로 증명됐나?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이명 환자 19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일주일에 세 번, 5주 동안 TD 스퀘어로 치료한 뒤 이명과 관련한 뇌파신호를 측정해 효과를 확인했다. 이명 증상을 측정할 때 주로 쓰이는 THI(이명 설문지)에서도 통계학적으로 의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
심리적인 원인으로 인한 이명이 아닌 경우에도 TD 스퀘어가 유효한가?
TD 스퀘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명은 일종의 환상통과 같다. 환자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소리가 난다고 잘못 인식한다. 오른쪽 귀에 이명을 느낀다고 한다면 TD 스퀘어는 생성형 AI를 통해 이명과 매칭되는 소리를 왼쪽 귀에 들려준다. 왼쪽 소리를 인위적으로 줄이면 환자는 오른쪽 소리도 줄어들고 있다고 느낀다. TD 스퀘어는 이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주는 것이다.
TD 스퀘어를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최신 버전의 TD 스퀘어는 침실과 거실, 레스토랑, 길거리 등 총 네 가지 VR을 구현했다. HMD를 착용하자 눈앞에 침실이 펼쳐졌다. 이후 둥근 물방울들이 나타났다. 물방울을 정확히 잡아내자 햅틱 글러브(촉각 전달 장갑)를 통해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단계를 지날수록 소리 강도가 세지고 물방울 개수도 늘었다. 최종 3단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짧은 게임을 마친 기분이 들었다.
가상환경 콘셉트는 의도한 것인가?
가상이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용자가 멀미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도 실험했다. HMD를 착용하는 시간이 15분을 넘어가면 불편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단계별 소요 시간도 조정했다. 우리 연구실은 ‘기능성 게임 연구실’이다. 게임을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만 보지 않고 실용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 TD 스퀘어다.
TD 스퀘어를 치료 외에도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TD 스퀘어의 핵심 기술을 적용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가상현실 보행 보조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초행길은 더 낯설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이 외출 전에 모의로 걸어보고 길 모양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시각장애인이 가장 듣기 좋다고 느끼는 음역대로 가상의 안내견이 내는 소리를 따라 움직이면 된다. 햅틱이 보조 지팡이 역할을 해준다. 시각장애인은 글로 읽는 설문조사가 어렵지 않나. 이들이 모의 경로를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경로 모양을 출력한 뒤 손으로 고르게 하는 과정도 있다.
이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시스템을 개선한다는 의미인가?
휴먼컴퓨터인터랙션(HCI)은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융합을 뜻한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컴퓨터라고 해도 쓰기 불편하면 별로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그치치 않고 항상 사용자 평가를 거친다.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더 편리하게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지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TD 스퀘어의 상용화 계획은?
의료기기 허가를 받기 위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예정대로 올해 안에 허가를 받으면 상용화할 계획이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위주로 제공할 계획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HMD, 햅틱 글러브를 사용해도 TD 스퀘어를 쓰는 데 문제없다.
CES 2025에서의 성과가 알려진 후 김 교수는 많은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한 글로벌 패션뷰티 명품 브랜드 측은 화장품을 피부에 발랐을 때의 촉감을 TD 스퀘어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을지 자문을 구했고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다. 많은 이명 환자의 메일도 쏟아졌다. TD 스퀘어를 경험해볼 수 없겠냐는 간절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김 교수는 “이명 때문에 이민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분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의료기기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이 곧 진행되니 참여해보라고 말씀드렸다. 우리 기술이 그분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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