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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자·아픈 반달가슴곰… 위기의 동물들이 이곳으로 모이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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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 ‘보호’로… 청주랜드동물원을 가다
“으르렁.” 사람을 보자 수사자 ‘바람이’가 낮게 포효했다. 2004년생으로 올해 나이 스물. 사람으로 치면 100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맹수의 위용은 여전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던 ‘바람이’는 이내 동물복지사가 건네는 고깃덩어리를 물었다. “여름엔 동물들도 식욕이 줄게 마련인데 ‘바람이’는 고기 4㎏을 한자리에서 다 먹는다. 이제 갈비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집도 올랐다.” 청주랜드동물원의 최형민 동물복지사가 말했다.
‘바람이’는 지난 7월 5일 충북 청주시 청주랜드동물원(이하 청주동물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전까지는 경남 김해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7년을 살았다. ‘바람이’에게 주어진 건 가로 14m, 세로 6m의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좁은 방뿐이었다. 유리창 너머 관람객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늙은 사자의 존재 이유였다. 어느새 ‘바람이’는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말랐고 그 모습은 몇몇 시민에 의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청주동물원은 ‘바람이’를 데려오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콘크리트 방을 벗어난 ‘바람이’는 현재 2000㎡(약 606평)에 이르는 청주동물원 내 야생동물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야생동물보호시설은 환경부의 ‘생물자원보전시설 설치 사업’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청주동물원에서는 여러 사유로 갈 곳을 잃은 야생동물들을 이곳에서 보호한다. 얼마 전까지 좁은 사자사에 살던 ‘먹보’와 ‘도도’도 이곳으로 옮겨왔다. 사자들은 하늘이 보이는 야외 방사장에서 나무와 바위를 오르고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며 자유롭게 생활한다. 원하면 언제든 관람객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내실로 들어와 쉴 수 있다. 언론을 통해 유명세를 탄 ‘바람이’를 보려 방문객이 몰리자 동물원에서는 모니터로 그 모습을 보도록 ‘바람TV’도 설치했다. 동물을 가까이서 보기 원하는 사람들과 관람객으로 말미암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동물 모두를 배려한 조치다. 최 복지사는 “가을이 되면 ‘바람이’와 ‘먹보’, ‘도도’의 합사를 시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자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무리지어 생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코끼리·기린, 인기 많아도 안 들여와
청주동물원은 2014년 환경부로부터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됐다. 서식지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야생동물을 구조해 치료한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국내 서식지 외 보전기관은 서울대공원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를 포함해 세 곳뿐이다. 그중에서도 청주동물원은 ‘전시’보다 ‘보호’에 주력하는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청주동물원의 고유종(토종 야생동물) 비율(27.1%)이 국내 공영동물원 10곳 가운데 가장 높은 점은 이를 방증하는 예다. 오직 관람과 전시만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기후 조건에서 살기 어려운 외래종을 들여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청주동물원에 코끼리나 기린과 같이 관람객에게 인기 많은 대형 외래종이 없는 이유기도 하다. 기존에 보호하던 외래종은 자연감소를 위해 중성화수술을 하고 자연방사가 불가능한 토종·멸종위기 야생동물은 계속 보호한다.
이 때문에 청주동물원엔 저마다 아픔을 지닌 동물이 모여든다. 독수리 ‘하나’는 가까이서 보니 다른 독수리와 달리 부리가 밑으로 휘어져 있었다. 야생에 있으면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17년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한 뒤 이곳으로 옮겨졌다. 독수리 방사장 앞엔 관람객이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2년 전 강원 철원에서 어미를 잃고 떠돌다 구조된 산양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이면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다. 발견 당시 개선충에 감염돼 있었던 산양은 건강을 회복한 뒤 야생동물 방사 훈련장에 살고 있다. 숲이 우거진 방사 훈련장에서 산양의 모습을 어렵사리 찾았다.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은 “산양은 한동안 사람만 따라다녔다. 더 이상 산양이 눈에 띄지 않으면 야생으로 돌아갈 훈련이 됐단 뜻이다. 적응이 끝나면 자연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이밖에 복숭아밭을 떠돌다 구조됐지만 갈 곳이 없어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붉은여우 ‘김서방’, 웅담 채취 목적으로 좁은 철창에 갇혀 살다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구조한 사육곰 출신 ‘반이’, ‘달이’, ‘들이’ 등 많은 동물이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똥 치우기 좋은’ 구조에서 ‘동물 놀이터’로
청주동물원도 처음부터 동물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건 아니다. 1997년 설립된 이곳은 8만 2500㎡(약 2만 5000평) 부지에 130여 종의 동물이 모여 살 만큼 환경이 열악하던 시절도 있었다(현재는 69종 379마리가 산다). 호랑이, 늑대,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마저 좁은 방사장에 한두 마리씩 갇혀 살았다.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들은 한자리에서만 빙빙 도는 등의 ‘정형행동’을 보였고 콘크리트 바닥에 살며 관절염에 걸리기도 했다.
“동물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게 본능이기 때문에 죽고 나서야 질병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사체를 부검해보니 질병에 걸리고 부상에 시달려온 동물이 많았죠. 동물은 생존이 치열한 야생에서보다 동물원 안에서 수명이 더 길어야 하는 게 상식적인데,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하면 이 안에서 고통만 받다 짧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적어도 본래 습성을 고려한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정호 팀장의 말이다. 2001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해온 그는 청주동물원의 변화를 이끈 주역이다. 청주동물원은 2018년 환경부, 녹색연합과 함께 ‘반이’, ‘달이’, ‘들이’를 구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동물원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곰 방사장은 기존 콘크리트 바닥을 해체한 뒤 흙으로 덮고 쉼터와 놀이터를 조성했다. 김 팀장은 “과거 곰 방사장은 곰의 생태는 고려하지 않은 그저 ‘똥 치우기 좋은’ 구조였다”고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늑대 방사장은 벽을 허물어 기존보다 네 배 더 넓혔고, 공간 확장이 불가능한 스라소니 방사장은 떨어져 있는 두 개 공간을 하늘터널로 잇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활동공간을 만들었다. 과거 360도로 관람이 가능했던 야생조류 방사장은 사람의 출입을 막은 대신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도록 했다. 이 덕분에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관람객은 비무장지대(DMZ)에나 있는 두루미를 비롯해 흑고니, 해오라기 등 희귀 조류들이 드넓은 방사장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동물원 스스로 존재 이유 만들어나가야”
청주동물원이 지향하는 동물원의 모습은 ‘동물의 본래 습성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에겐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이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 방사장에 나오도록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 탓이다. 일례로 ‘명암’, ‘무심’, ‘미호’ 등 수달 가족의 집 앞에는 오후 2시를 가리키는 시계와 안내문을 놔뒀다. 수달의 기상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전까지는 누구도 수달의 단잠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관람객 오소희 씨는 “수달과 곰은 오후가 돼서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실망했지만 기다림 끝에 만나니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며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당연한 사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동물원들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일부 동물원의 열악한 처우가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모든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김 팀장의 의견은 다르다. 12월부터 동물원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면 당장 갈 곳을 잃은 동물들이 쏟아질 우려가 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동물원은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위해서도 이미 만들어진 동물원은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야생동물 보전과 기후위기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동물원이 허가제로 바뀌면 실내 동물원부터 타격을 입을 거예요. 거기서 쏟아지는 동물을 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공영동물원의 역할이 커지겠죠. 동물들이 어떻게 동물원까지 오게 됐는지, 마스크를 함부로 버리면 야생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 등을 알려주는 교육의 장으로 동물원을 활용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윤리적인 측면만 강조해서도 안 돼요. 동물을 가까이서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도 존중해야죠. 그러려면 동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동물이 지루함을 덜 수 있는 해먹 등 ‘행동풍부화’ 놀잇감을 만드는 가족프로그램은 특히 인기가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겐 동물원이 태어나 처음 동물을 마주하는 곳일 수 있어요. 관람객이 죄책감을 가지고 동물원 밖을 나서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동물원 스스로 존재 이유를 만들어나가야죠.”

조윤 기자

박스기사
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생태 고려 안 한 동물원 퇴출

오는 12월부터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등록제’로 운영되던 국내 동물원과 수족관이 ‘허가제’로 전환된다. 이전까지는 동물을 일정 종류 및 수 이상 전시하고 관공서에 등록하면 누구나 관련 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검사관의 평가를 받아 허가 기준을 만족해야만 한다. 허가 기준은 ▲동물에 맞는 서식환경 ▲보유 동물에 대한 질병·안전 관리 계획 ▲전문인력 ▲휴·폐원 시 보유동물 관리계획 ▲예산 등이다. 구체적인 허가기준이 마련되면 검사관이 직접 동물원을 방문해 평가한다. 기존 동물원 운영자에게는 2028년 12월까지 유예기간을 줘 환경개선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개정안에는 전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숨지거나 질병에 걸릴 우려가 있는 종은 동물원·수족관이 보유할 수 없다는 규정도 담겼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먼저 국내 수족관에서 고래를 새로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게 할 계획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운영됐던 각종 체험 프로그램도 금지된다. 동물을 동물원·수족관 외의 장소로 옮겨 전시해서는 안 되며 동물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만지기’, ‘올라타기’, ‘먹이주기‘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많은 동물원에서 토끼나 양 등에게 먹이를 주거나 동물을 만져보게 하는 체험이 사라질 전망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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