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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인생역전 케냐인에게 한국어는 새로운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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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나이로비 세종학당 학생에서 교원으로, 필리스 은디안구이
‘2023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가 8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올해로 15번째를 맞이한 이 대회는 세종학당 등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자들을 격려하고 최신 교수법 등 전문성을 제공하기 위한 연수회다. 특히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해외 한국어 교육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대면 행사로 전 세계 세종학당 한국어 교원, 학당운영 관계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필리스 은디안구이(Phyllis Ndiangui·33) 씨도 이번 대회를 위해 서울에 왔다. 은디안구이 씨는 케냐 케냐타대학에 있는 나이로비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원이다. 나이로비 세종학당 ‘1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와 마케팅 석사 졸업 후 케냐로 돌아가 2022년 9월부터 세종학당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은디안구이 씨는 한국어 우수학습자로 초대돼 이번 대회 첫날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한국어로 빚는 미래세대의 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은디안구이 씨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학생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원이 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줬다.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은디안구이 씨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한국어를 만나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세종학당에 처음 갈 때만 해도 자신이 한국에 유학을 가고 한국어 선생님이 돼 케냐에서 학생을 가르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 케냐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고 “아이구~”를 입에 달고 살 거라는 것도. 은디안구이 씨는 이제 케냐 대학에 한국어학과를 개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딸 생각까지 하고 있다. 한국어로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어를 처음 배운 건 언제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그냥 집에 있기도 뭐해서 나이로비 시내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취미 삼아 연극을 배웠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가 하루는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쳐준다는 얘길 해줬다. 신문에 실린 세종학당 한국어 수업 광고를 보고 한 얘기였다. 그때는 한국어에 관심도 없었고 한국어를 배우면 뭘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연극도 일찍 끝나고 무료라니까 한번 가보자 한 거다. 그렇게 2010년 6월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배워보니 어땠나?
처음엔 조금 어렵기도 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한국어가 재밌더라. 계속 배우고 싶어서 연극을 포기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데 집중했다.

한국어가 어떻게 재밌었나?
한글이 일단 쉬웠다. 자음, 모음만 연결하면 뜻을 몰라도 일단 읽을 수 있다. 자음, 모음을 연결해서 쉽게 읽을 수 있으니 재밌었다. 내가 한국어를 읽을 수 있다니! 그래서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에도 관심이 생겼나?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게 됐다. 자연스레 한국 문화도 접하게 됐고. 김치와 라면, 젓가락 쓰는 법도 알게 됐다. 당시 케냐 방송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나와서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이 더 생겼다. 언젠가 한국에 가면 드라마에서 본 한국,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했나?
세종학당에서 공부하면서 선생님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왜 대학에 진학하지 않냐고 하더라. 공부는 하고 싶었지만 대학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김응수 학당장님이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가서 공부하자고 마음먹었다.

한국 유학을 위해 학당장님이 도움을 많이 줬다고 들었다.
사실 학비를 내지 못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니 한국 대학에 지원을 할 수도 없었다. 김응수 학당장님이 내 사정을 듣고 나이로비에서 70㎞ 떨어진 고등학교까지 함께 찾아가 밀린 학비를 사비로 내줬다. 케냐 돈으로 3만 실링, 한화로 40만 원 정도였다. 그렇게 졸업장을 받았고 추천서까지 써줬다. 덕분에 한국 대학에 지원서를 낼 수 있었고 숙명여대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나이로비 세종학당 ‘1호 장학생’이라고.
나이로비 세종학당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첫 장학생이다. 나를 시작으로 나이로비 세종학당에서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이 하나둘 늘었고 지금까지 100명 넘는 학생이 한국에 왔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첫인상은?
일단 너무 추웠다. 한국에 처음 도착한 날이 2011년 2월 25일이다. 케냐에서 나름 방한복을 사서 입고 왔는데 한국의 추위를 막지 못했다. 추위도 추위지만 공항에서부터 깜짝 놀랐다. 이렇게 발전한 나라는 난생처음이었다. 우리나라와 완전 다른 느낌이었고. 모든 게 신기하고 떨렸다.

한국에서 생활은 어땠나?
정말 재밌었다. 한국 음식도 좋았다. 여행을 좋아해서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특히 바다를 좋아해 바다를 보러 많이 다녔다. 남해도 가고 제주도, 부산도 갔다. 한국은 교통이 편리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고 한 나라 안에서 바다, 산 등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대학원 졸업 후 한국에서 인턴 생활도 했는데 회사에서 존댓말 쓰는 게 정말 어려웠다. 사장님, 팀장님 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존댓말을 쓰다가 친구들한테 반말 하려고 하면 반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게 정말 어려웠다.

한국에서 인턴까지 하다 다시 케냐로 돌아갔다.
한국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여기서 취직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졸업 후 잠깐 케냐에 갔다가 세종학당에 와서 일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 한 번 더 제안을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나에게 정말 많은 기회가 생겼는데 이제 나도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2019년 케냐로 돌아갔다.

한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결심은 언제 했나?
처음에는 나이로비 세종학당 운영요원으로 일했다. 가끔 학생들이 질문하거나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으면 설명을 해주곤 했다. 내가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아니까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한국어 교육에 흥미가 생겼다.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한국어교원 과정을 수료해야 했다. 2021년에 한국어교원 과정을 시작했고 수료 후 2022년 3학기부터 공식적으로 수업을 했다.

선생님이 돼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분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지고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케냐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뭔가?
‘ㄲ, ㄸ, ㅃ, ㅆ’ 같은 된소리 발음을 어려워해서 발음 연습을 많이 시킨다. 조사 은/는, 이/가를 구분하는 것도 어려워 한다. 다행히 스와힐리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 쉽게 배우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삼촌, 큰아빠, 큰엄마, 작은엄마, 작은아빠 같은 단어다. 영어에는 이런 개념이 없지 않나. 스와힐리어로 한국어와 유사한 점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K-컬처’의 인기가 뜨겁다. 나이로비 세종학당의 학생도 많이 늘었나?
내가 세종학당에 다닐 때만 해도 학생이 10~15명 정도였다. 지금은 10배 이상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으로 한국 드라마·음악을 접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학생도 많아진 것이다. 세종학당에 온 학생 대부분이 <오징어 게임>과 방탄소년단(BTS) 때문에 한국어를 배운다고 할 정도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크겠다.
세종학당에서도 그래서 문화 수업을 많이 한다. 특히 ‘K-푸드’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김치나 짜장면을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고 한복 체험, 전통놀이 체험도 하면서 한국 문화를 경험하게 해준다.

은디안구이 씨처럼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유학이나 취직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나?
케냐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알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한국으로 유학을 갈 수도 있고 한국어 선생님이 되거나 통번역 일도 할 수 있다. 케냐에 진출한 한국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케냐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한국 회사에서 일하면 월급도 더 많이 받는다. 한국어를 잘하면 삶의 질이 달라진달까?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단순히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을 넘어 더 많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

한국에서 많은 기회를 잡았다.
나에게 한국은 기회의 나라다. 한국에 와서 정말 많은 기회가 생겼다. 한국 회사에서 일도 해보고 여행도 해보고 방송도 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나서 상상하지도 못한 인생을 살고 있다. 행복하다. 나뿐 아니라 언니, 남동생도 한국에서 공부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대학에도 갈 수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가족이었는데 한국이 우리 가족 인생을 통째로 바꾼 거다. 한국은 내게 정말 특별한 나라다.

앞으로 목표는?
아직 케냐에는 한국어학과가 있는 대학이 없다. 케냐에 한국어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는 게 목표다. 하나 더!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 등 아프리카에는 케냐처럼 스와힐리어를 쓰는 나라가 많다. 스와힐리어로 된 한국어 교재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스와힐리어로 된 한국어 교재를 만들고 싶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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