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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바람에 반해 3대째 가업 “힘들게 지킨 전통 내가 마지막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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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호바람 김주용 부채 장인
‘쏴아-’ 대나무 바람이 불어온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이 잦아든다.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대나무 잎을 흔든다. 반갑다고 인사라도 하는 걸까. 세상 이야기를 전하는 걸까. 대나무 바람소리를 듣다 보니 문득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대나무 서식지 전남 구례군.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대나무가 지리산 자락의 험난한 생육 환경을 이겨내고 자라는 곳이다. 적정한 수분과 양분을 받지 못한 지리산 대나무는 성질이 강하다. 때문에 탄성이 좋아 얇게 깎아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을 내기에 적합한 재료다. 죽호바람 김주용 부채 장인은 구례에서 자란 대나무를 이용해 부채를 만든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다. 그는 대나무를 가꾸는 일부터 채취해 삶고 씻고 얇게 잘라 부채 완성품을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선, 대나무 살을 휘어 만든 곡두선, 치마 모양을 형상화한 치맛바람 부채, 대나무 껍질을 포개 만든 합죽선 등이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채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을 정도로 부채 제작이 성행했다. 이제 직접 부채를 만드는 곳은 몇 곳 남지 않았다. 수입산이 밀려들어 오며 전통부채는 설 곳을 잃었다. 부채를 찾는 사람도 줄어 소득이 현저히 감소했고, 대나무를 자르며 엄지손가락을 세 번이나 크게 다쳤지만 그는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토록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사라져가는 게 얼마나 많겠냐만은 적어도 자신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했다.
운명이라고 해도 좋고 전통을 지키는 사명감이라고 해도 좋다. 혹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이어가고 싶은 고집일지도 모른다. 결국 40대 후반의 김주용 장인은 전국에서 가장 어린 부채 제작자가 됐다. 어쩌면 마지막 부채 제작자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대나무와 바람이 속삭이던 그날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손을 거친 아름다운 자태의 부채들이 사람들의 무더위를 식혀주며 청정한 바람을 불어 일으킨다. 죽(竹)호(好)바람이다.



부채를 만들 때 왜 대나무를 사용해야 합니까?
부채는 바람을 내는 도구예요. 부채에 들어가는 나무가 얇고 탄력이 있어야 바람이 잘 나요. 다른 나무는 얇게 깎기도 어렵고 잘 부러집니다. 대나무가 가장 적합하죠. 대나무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데 우리나라 남원, 구례, 하동 등 지리산 일대는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추운 지역이에요. 지리산 대나무는 수분과 양분을 잘 못 받아 성질이 강합니다. 때문에 얇고 가늘게 뽑아도 탄력이 생겨요.
대나무를 채취하는 일부터가 부채 만드는 과정의 시작이겠군요.
겨울이면 2m 정도 되는 대나무를 1m50~70㎝로 자릅니다. 자른 대나무에 구멍을 뚫고 삶아 표면 때를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햇빛에 말리죠. 일주일에 한 번씩 돌리며 한 달을 꼬박 널어요. 이후 부채 크기만큼 마디를 잘라 가늘게 쪼개면 부챗살에 이용할 수 있게 돼요. 살 위에 풀칠을 하고 한지나 모시를 붙여 다시 말려요. 부채 모양으로 오린 뒤 손잡이를 끼우면 부채가 완성됩니다.

부채 종류는 어떻게 나뉘나요?
일상에서 쓰는 부채는 크게 단선과 접선으로 나뉩니다. 손잡이가 있고 모양이 둥근 부채는 단선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방구부채라고 해요. 단선에 태극무늬를 넣으면 태극선, 한지를 붙이면 한지부채, 둥근 모양은 원선이라 하고요.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는 접선이에요. 손에 쥔다고 해서 쥘부채라고도 하죠. 간혹 쥘부채를 합죽선으로 아는데 잘못된 거예요. 합죽선은 접선의 한 종류예요. 그 밖의 부채는 별선이라고 합니다. 임금님의 햇빛을 가리거나 혼례식에서 얼굴을 가리던 부채, 상여에 사용하는 부채 모두 별선에 해당해요.

접선과 합죽선을 헷갈려 한다는데 둘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대나무의 어느 부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요. 대나무를 쪼개서 껍질을 분리하는데 속 부분을 가늘게 자른 건 단선이나 일반적인 접선에 써요. 껍질을 물에 불려 0.3㎜ 정도로 얇게 자른 건 합죽선에 쓰고요. 껍질 두 개를 붙여 합친 대나무라고 해서 ‘합죽’이 됩니다. 합죽은 대나무 껍질로 만들어 양쪽이 만질만질해요. 합죽 자체가 얇게 자른 대나무를 포갠 것이지만 손잡이 부분은 더 얇게 깎아 모양을 낼 줄도 알아야 해요. 합죽선은 가장 단단하고 내구성 좋은 껍질로 만들기에 튼튼합니다. 종이만 갈아준다면 평생 쓸 수 있어요. 합죽선은 우리나라만 만들 수 있는데요. 지리산 왕대만이 얇게 깎을 수 있기 때문이죠.

대나무도 좋아야겠지만 적지 않은 기술을 요하겠군요.
맞아요. 합죽선은 단선보다 만들기 훨씬 어려워요. 부채 장인들도 기술을 잘 공유해주지 않으려 해 독학으로 터득했어요. 합죽 대나무를 깎고 옻칠을 연구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네요. 합죽선의 멋을 결정하는 게 변죽이에요.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다가 옻칠을 선택했고요. 옻칠을 여러 차례 하며 세 가지 색을 올리는데 이 부분을 얕게 혹은 깊게 파는 방식에 따라 무늬가 달라져요. 합죽선 제작이 고난도에 속하기 때문에 부채 만들기에 뛰어든 이상 합죽선까지는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유독 애착이 가는 부채가 있나요?
대나무 살을 휘어 만든 곡두선이요. 지리산 대나무의 특성을 잘 살려 살을 가늘게 뽑아 만든 부채죠. 굵게 뽑은 살로 부채를 만들면 투박하고 바람도 잘 안 생겨요. 일반 단선부채에 50~60개의 살이 들어가는데 곡두선은 아주 얇게 뽑은 살 120~130개가 들어가요. 따뜻한 기후에서 자란 외국 대나무로는 흉내 내기 어렵습니다. 곡두선은 제작에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부채 자체가 주는 멋이 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글귀를 쓰지 않아도 모양 자체로 작품이 되죠.

죽호바람에서 만든 치마부채도 인기가 좋은 걸로 아는데요.
옛날 방앗간에서 껍질을 바람에 날리는 부채가 있었어요. 그 모양을 거꾸로 보니 치마 같더군요. 해석을 다시 해서 치맛바람 부채를 만든 거죠. 2018년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대한민국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어요. 이를 응용해 2020년 남원시가 주최하는 ‘남원시 관광기념품 공모전’에 춘향·몽룡 부채를 출품해 대상을 받았고요. 선물용으로 반응이 좋아요.

부채 만들기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하군요.
과거 부채를 많이 만들 때 겨울이면 부채 장인들이 그다음 해에 쓸 대나무를 구하러 구례에 왔어요. 이 일대에서 두세 달씩 머무는데 그들과 인연이 돼 할아버지가 부채 만드는 일에 뛰어드셨죠. 1990년대 말부터는 아버지와 형제들도 부채를 만들었어요. 저 역시 틈틈이 도와드렸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했어요. 그 무렵 아버지가 편찮으셨습니다. 아버지가 회복할 때까지 1년만 도와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셨네요. 이 일을 계속할 건지 그만둘 건지 고민했어요. 창고에는 잘 정돈된 대나무 부챗살 수십만 개가 쌓여 있었고요. 결국 가업을 3대째 잇게 됐습니다.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이 쉽진 않았을 텐데요.
그렇죠. 판매가 많이 줄었으니까요. 한때는 이곳 부채가 전국으로 팔려 나갔어요. 1년에 50만 개는 만들었을 거예요. 동네 주민 다수가 부채 만들기에 달려들었어요. 그런데 2000년 전후로 중국 수입품이 들어오며 판매량이 급감했어요. 수입품은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했지만 우리 제품은 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요. 타격이 점차 커지면서 아버지에겐 빚이 생겼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상속을 포기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렇다면 할아버지, 아버지가 해온 모든 일이 사라지는 셈이었죠. 그래서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습니다. 전통을 지키겠단 일종의 사명감도 있었고요.

고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엄지손가락이 톱에 잘려 수술만 세 번 했어요. 대나무를 자를 때 톱을 사용해서 위험하거든요. 생계유지도 쉽지 않아요. 그만두고 싶은 때가 많았죠. 가족들도 그만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그때마다 생각했어요. 관두면 무슨 일을 할지.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은 부채 만드는 거였어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대나무밭과 부채 만드는 도구·재료가 있으니 남들보다는 충분한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해 관두지 못했고요. 작년에는 대출을 받아 판매 공간을 꾸몄어요. SNS(누리소통망)를 보고 오는 손님들에게 부채를 보여줄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시대 변화에 따라 위기를 맞는 곳이 있지만 부채 만들기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으로 보이네요.
옛날에는 부채 장만이 여름맞이의 중요한 과정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졌죠. 부채가 더위를 쫓는 용도보다 선물이나 작품 활동을 위해 더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또 에어컨·선풍기 바람을 싫어하는 분들이나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부채를 찾는 분들이 있어요. 전통부채를 만드는 곳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많이 사라졌어요. 다른 지역의 무형문화재 선생님들과도 종종 연락하는데 대부분 전승이 끊겼다고 하더군요.

아버지의 유산이자 삶의 터전이 된 대나무밭을 보면 만감이 교차할 것 같군요.
겨울이면 대나무밭에 가서 작업을 해요. 일을 하다 힘들면 누워서 하늘에 닿은 대나무를 바라봅니다. 바람에 움직이는 대나무 잎이 좋았어요. 바람과 대나무가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대나무에 바람이 세상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자란 대나무로 부채를 만들어 바람을 일으킨다면 부채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불어올 것만 같았어요. ‘죽호바람’이란 이름도 그렇게 지었어요. ‘대나무 죽(竹)’ 자와 ‘좋을 호(好)’ 자에 바람을 더한 거죠. 제 아호도 ‘죽호’인데 부채를 만드는 ‘죽호바람’에는 저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어떤 바람이 담겼을까요?
아쉽지만 제가 전통부채를 만드는 마지막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대를 이어주고 싶지만 차마 권할 수가 없어요. 다치기 쉽고 명성이 있는 일도 아니에요. 사실 일 자체의 노고보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크죠. 그럼에도 개인 공방을 열고 학생을 대상으로 부채 만들기 체험수업을 하는 이유는 전통부채 제작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예요. 부채 만드는 재미를 조금씩 알리다 보면 이 일이 끊어지지 않고 전해지지 않을까 싶은 거죠.

선수현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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