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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남자는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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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온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북토크에 온 독자 대부분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여성 독자들만 모인 거죠?” 당연히 요시다는 이렇게 물었고 그에 대한 담당자의 대답은 궁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남성들은 소설을 잘 안 읽어서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요시다가 유독 여성스러운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작가가 되기 전 이삿짐센터 같은 데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역동적인 남성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꽤 오래전 일인데 사정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북토크를 하거나 독서모임을 해봐도 남성 독자들의 참여율은 ‘8대 2의 법칙’을 벗어나 9대 1까지 가는 경우가 흔하다. 왜 이러는 것일까? 남성들은 원래 책을 안 읽어서, 라고 하기엔 사안이 좀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북토크에 온 분들 중 남성 참여자에겐 꼭 질문을 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남성 참가자가 이렇게 적은데도 용케 와주셨네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내나 여자친구를 따라왔노라는 자백이 이어진다. 자기는 오기 싫었는데 그냥 와서 앉아만 있으라고 해서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와보니 어떠셨나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오기를 참 잘했다”는 소감을 밝힌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영화보다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니는 편인데 관객 대부분이 여성이다.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남성 관객들을 보면 연극에도 ‘8대 2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하다. 심지어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룬 <한남의 광시곡>이라는 연극은 여성보다 남성이 보면 더 좋은 작품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간 날 남성 관객은 나를 포함해서 서너 명에 불과했다. 나중에 김재엽 작가 겸 연출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 작가는 “나이 50세가 넘어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니 친한 사람들조차 곤혹스러워하는 게 보이더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페미니즘이라는 메시지 전달에만 치중한 게 아니라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었다. 김 작가는 “남성들의 이야기인데 정작 남성들이 안 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런 현상이 어렸을 때부터 우리에게 주입된 ‘가부장제’의 폐해가 아닌가 싶다. 책을 읽거나 북토크에 가는 행위, 연극을 보는 것 등은 왠지 남자다운 일이 아니라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여성은 물론 남성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남자고등학교 동창들은 만나기만 하면 골프나 조기축구 얘기를 하는 걸까? 아니다. 골프는 여성들도 많이 친다. 김혼비 작가 같은 사람은 지금도 여성축구팀에서 뛰고 있다.
버트 레이놀즈가 탐정으로 나오는 영화를 KBS <명화극장>에서 본 적이 있다. 그가 서점에 가서 어떤 여성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성이 서가에서 빼는 책마다 다 읽었다고 하자 여성의 눈빛이 달라진다. 결국 다음 장면에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워 있다. 책을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가끔 이 얘기를 농담처럼 해준다. 책 읽는 남자는 섹시하다.


편성준
유머와 위트 넘치는 글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썼다. 현재 다양한 채널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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