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일 아닌 하고 싶은 일! 인생의 답 ‘판소리’서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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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온 ‘판소리꾼’ 마포 로르 씨
“어? 여기 거북이 있어요. 토끼만 있으면 딱 ‘수궁가’ 불러야겠네요.”
연못 주위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말했다. 거북을 보고 ‘수궁가’를 떠올리는 외국인이라니. 카메룬계 프랑스인 ‘소리꾼’ 마포 로르 씨다. 취재진을 보고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것도, 아직 자신의 ‘소리’가 부족하다며 겸손을 부리는 것도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다만 한여름 찜통더위 앞에선 그도 혀를 내둘렀다. “여기가 카메룬보다 더 덥다. 한국의 여름은 매년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의 손엔 전통부채가 쥐어 있었다. ‘소리꾼의 옷’이라 불리는 부채는 먹색의 저고리를 차려입은 이국의 소리꾼과 무척 잘 어울렸다. 거북이 물살을 가르는 연못 주위엔 그가 낮게 읊조리는 판소리가 습기를 머금은 채 퍼져 나갔다.
서울 성북구 한국종합예술학교(한예종)에서 만난 로르 씨는 곧 있을 공연을 위해 방학에도 매일 학교에 온다고 했다. 로르 씨는 2021년 한예종 전통예술원에 판소리 전공으로 입학했다. 올해 3학년이다. 교내 판소리 전공생 중 외국인은 그가 유일하다. 특별전형을 통해 입학했지만 한국인 학생들과 같이 한국어로 수업을 듣고 함께 평가를 받는다. 1985년생인 그는 “프랑스에서 석사까지 마쳤는데 한국에 와 다시 대학 신입생이 됐다”며 웃었다. 프랑스에선 회계감사를 전공했다.
로르 씨는 오는 7월 21일부터 사흘간 한예종이 주최하는 ‘K-아트온로드’ 공연에서 단독무대에 선다. 제목은 ‘풀이 연습’. 이번 공연에선 전통 판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판소리를 함께 선보인다. 고향 카메룬에 대한 그리움을 판소리로 풀어냈다.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판소리에 담긴 ‘한’의 정서를, 그는 가슴 속 내재된 그리움을 통해 표현한다고 했다.
대기업 그만두고 한국행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안정적인 회사에 잘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판소리가 너무 하고 싶어진 거예요. 머릿속에서 전쟁이 났죠(웃음).”
로르 씨는 판소리를 처음 들은 그날의 심정을 이같이 회고했다. 2015년 당시 삼성전자 프랑스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갔던 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 명창(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의 공연을 보고 판소리에 푹 빠졌다. 평소 가족들이 ‘그만 좀 부르라’고 할 정도로 양희은과 김광석 등 한국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했지만 판소리를 접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가 들은 건 ‘춘향가’의 ‘쑥대머리’였다.
“가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정이 느껴졌죠. 어릴 때부터 카메룬 전통민요를 많이 들었지만 복식호흡을 쓰는 판소리는 발성부터가 달랐어요. 무척 신기했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건데 그때 정답을 찾은 것 같았어요. 이전까지 회사에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었죠.”
‘한국에 오면 판소리를 가르쳐주겠다’는 민 명창의 말에 로르 씨는 2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직 판소리 하나만을 보고 선택한 길이었다. 민 명창이 운영하는 ‘소을소리판’에서 시작한 소리 공부는 매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매년 8월엔 3주간 산에만 머물며 소리 연습을 하는 ‘산공부’도 떠났다. 하지만 할 줄 아는 한국말이라곤 ‘네’, ‘감사합니다’뿐이었던 이방인에게 판소리가 쉬울 리 없었다. 좋은 소리를 내는 건 뒤로하더라도 가사를 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한자, 옛말, 사투리가 많은 탓이다.
대장군방 벌목하고/삼살방에 이사권코/오구방에다 집을 짓고/불 붙는 데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 박고/길 가는 과객양반/재울듯이 붙들었다/해가 지며는 내어쫓고
그가 처음 배웠다는 ‘흥보가’의 첫 대목인 ‘대장군방’의 일부다. 놀부의 심술을 묘사한 가사는 아무리 연습해도 좀체 입에 붙지 않았다. 판소리는 그에게 ‘재울 듯 붙들었다 해가 지면 쫓아내는’ 놀부 심보 같았으리라. “그럼에도 10번, 100번, 1000번을 연습하니 어느 날 ‘탁’ 하고 목소리가 트였다”고, 한국인의 성실함을 존경한다는 소리꾼은 말했다.
“고향 무대, 정상회담 공연보다 떨렸어요”
그렇게 판소리를 배운 지 1년 만에 로르 씨는 세계인에게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 2018년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열린 한·프랑스 정상회담 만찬에서 공연무대에 선 것이다. 한복을 입고 등장한 로르 씨는 양국 정상 앞에서 ‘흥보가’ 중 ‘돈타령’을 불렀다. 프랑스인이, 한복을 입고, 프랑스에서, 판소리를 하는 낯설고도 신선한 광경에 객선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로르 씨는 지난 6월 13일 주한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열린 ‘문화소통포럼 CCF 2023’에서 공연하는 등 각종 문화행사에 바쁘게 불려다닌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는 건 2019년 카메룬 한국대사관 무대에서 가족 앞에 섰을 때다. ‘딱 1년만’ 한국에 갔다 오겠다며 가족의 반대를 뒤로한 채 홀로 떠난 그였다. 그는 이날 ‘신뱃노래’, ‘사철가’, ‘사랑가’를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불렀다. 특히 프랑스어로 할 땐 추임새를 많이 넣었다.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판소리를 선보이는 자리였어요. 엄마의 허락을 받는 공연인 셈이었죠. 저 역시 대기업을 그만두고 선택한 길이었기에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어요. 엘리제궁에서보다 훨씬 떨렸죠. 엄마는 ‘판소리를 할 때 네가 정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봐 기뻤다. 행복한 일을 계속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로르 씨는 판소리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소리를 하며 어두웠던 성격도 밝아졌다. 억눌렸던 감정을 소리를 통해 해소한 덕이다.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열 살에 프랑스에 사는 이모에게 입양된 로르 씨는 내면에 쌓인 외로움이 판소리를 통해 사그라들었다고 했다. ‘판소리는 힐링’이라는 게 그의 표현이다.
“프랑스에 간 뒤 친구가 없어 늘 외롭게 지냈어요. 성인이 돼서도 힘들 땐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보다 집에 홀로 있었죠. 지금은 힘들어도 소리를 하고 나면 마음이 풀려요. 가슴 속에 쌓인 게 밖으로 다 날아가는 기분이에요.”
‘딱 1년만’ 배워보겠다던 로르 씨의 판소리 공부 계획은 이제 ‘무기한’으로 연장됐다. ‘판소리는 평생 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외국인 소리꾼으로서 또 다른 목표도 생겼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기 원하는 세계인들이 더 쉽게 판소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판소리협회를 통해 해외로 공연도 다니고 있다. 협회는 채수정 명창(한예종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이 판소리를 세계에 알리고 외국인에게 판소리를 교육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로르 씨가 종종 공연 중 가사를 프랑스어로 바꿔 부르는 것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흥보처럼 성실히 살 것”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판소리 이수자가 줄고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르 씨는 판소리의 명맥을 이어줘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 받는다며 겸연쩍어했다. 그는 그저 판소리의 재미와 매력을 더욱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랄 뿐이다.
“누리소통망(SNS)에 올린 제 공연영상을 보고 판소리를 배워보고 싶다는 외국인이 많아요. 판소리가 재미있는 것이란 걸 알리는 게 저의 역할인 것 같아요. 판소리를 교육하는 방법도 최근엔 많이 달라졌어요. 개인별 맞춤형으로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죠.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취미로 가볍게 배울 수도 있고요. 갈수록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건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기 때문이에요. 명창의 공연이 있어도 광고 하나 보기 어려워요. K-팝 공연은 뉴스에도 나오는데 말이에요. 제가 공연을 통해 판소리의 매력을 알았듯 일단 접해보는 게 중요해요. 전통문화 공연도 마케팅을 활발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르 씨가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 작품은 ‘흥보가’ 중 ‘박타령’. 어딜 가나 흥보네처럼 문제없는 가정은 없지만 착한 마음을 가지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다. 그래서 오늘도 이 성실한 소리꾼은 착한 마음으로 신명나게 목청을 높인다.
부자라고 자세를 말고/ 가난하다고 한을 마소/엊그저께까지 박흥보가 문전걸식을 일삼더니
오늘날 부자가 되었으니/이런 경사가 어디가 있느냐 /얼씨구 절씨구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아/ 박흥보를 찾아오소/ 나도 오늘부터 기민을 줄란다/ 얼씨구나 절씨구
조윤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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