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버스서 환자 살린 ‘기적의 천사’ “간호사들의 무기는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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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병원 신속대응팀 이정애 간호사
병원 밖 급성심장정지 환자의 생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질병관리청과 소방청이 2022년 열린 ‘제11차 급성심장정지조사 심포지엄’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급성심장정지 환자 중 생존한 상태로 퇴원한 사람은 7.3%에 불과하다. 7.3%의 생존자 중 위급한 상황에서 전문 의료인을 만나 살아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한양대학교병원 신속대응팀 이정애 간호사의 응급처치를 받은 환자가 그 경우에 속한다. 지난 4월의 일이다. 이 간호사는 출근길 버스에서 급성심장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 귀한 생명을 살렸다. 환자의 가족이 병원 누리집에 사연을 올리면서 이 일이 알려졌고 보건복지부는 이 간호사에게 보건복지부장관상인 ‘사랑의 실천상’을 수여했다.
이 간호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앞은 구급차와 구급대원, 침상에 누운 환자, 의료진으로 분주했다. 의료진은 무더운 날씨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간호사는 이 병원의 신속대응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신속대응팀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호흡곤란, 쇼크, 심정지, 의식저하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조직이다. 업무 특성상 다양한 부서와 협업하기 때문인지 병원 내에는 이 간호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기자와 잠시 인사를 나눈 응급의학과의 한 교수는 이 간호사가 병원 내에서 ‘친절한 정애 씨’로 불린다고 귀띔했다.
병원에서 유명인사인 것 같다.
제가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것이 병원 누리집에 게재되면서 알게 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신속대응팀에 있는 줄 몰랐던 사람도 많았다. 제가 상을 받으니까 신속대응팀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찾아본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 팀 인력을 더 충원할 계획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다. 사실 부끄럽다. 의료진들, 특히 응급실에 근무하는 분들은 매일 사람을 살리지 않나. 그래도 맨손으로 사람을 살렸다는 것을 칭찬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참 감사하고 기분이 좋았다.
심정지 환자를 살려서 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당시 상황이 어땠나?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4월 10일이었고 그날도 평소와 같이 왕십리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다. 직업 때문인지 극장이나 식당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는 버릇이 있다. 버스에 탔는데 그 환자분의 낯빛이 너무 좋지 않았다.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신경이 쓰여서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의자 밑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환자를 안전한 데로 옮겨서 상태를 살폈다. 목동맥을 측정했는데 맥박이 뛰지 않고 숨도 쉬지 않아서 바로 가슴압박을 했다. 다행히 버스가 병원으로 가고 있었고 모든 정거장을 건너뛰면 5분 안에 응급실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승객들이 기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저는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가슴압박을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혈색이 돌아오고 눈을 떴다. 정말 감사한 순간이었다.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대처를 잘했다.
상황이 절묘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119대원을 만났고 그분이 들것을 가지고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해줬다. 제가 신속대응팀에 근무하기 전에 10년 정도 응급실에서 근무했다. 그래서 다들 제 얼굴을 아니까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들것에 실려 들어가는 환자를 보면서 ‘아, 이제 저분은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처치 이후 환자는 어떻게 됐나?
환자에게 가슴압박을 하려고 상의를 열었을 때 심장판막 수술을 받은 흔적이 보였다. 병력이 있는 상태에서 심정지가 온 거라 걱정도 됐고 환자가 잘 치료를 받고 있는지 궁금해서 꾸준히 모니터링했다. 다행히 식사도 잘하고 검사결과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환자 상태가 궁금해 찾아갔다. 저를 너무 찾고 싶었다고 하더라. 본인이 버스에서 어떻게 쓰러졌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상황 설명을 다 해주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말씀드렸다.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앞으로 찾아오지 않겠다고 말씀드리고 헤어졌다.
사연을 병원에 알린 게 환자의 가족이라고 들었다.
환자분의 딸이 병원 누리집에 글을 올렸다. 감사하게도 너무 글을 잘 써주셨다. 그 환자는 퇴원한 뒤 저를 또 찾아왔다. 사실 환자와 의료진이 1대 1로 만나지 않는데 그분은 제가 얼굴을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해서 다시 만났다. 그날 가족들에게 ‘엄마 병원에 다녀온다’고 하고 나섰는데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고 한다. 남편, 아들, 딸까지 네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감사인사를 하셨다. 요즘도 병원에 전화해서 제 안부를 묻고 가끔씩 오셔서 간식도 사주신다.
환자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버지께서 항상 따뜻한 간호사가 되라고 충고하셨다. 한양대병원 응급실에서 12년간 근무했다. 응급실은 제일 급할 때 오는 곳이지 않나. 그런데 간호사가 쌀쌀맞으면 환자와 보호자들이 얼마나 불안하겠나. 그래서 설명을 자세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다. 또 환자들을 많이 안아드린다. 병원은 몸이 아파서 오는 사람이 많다. 몸이 아프면 사람이 약해지기 쉽지 않나. 그럴 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 고마울 것 같다.
10년 넘게 응급실에 있었으면 우여곡절이 많았겠다.
응급실은 정말 파란만장한 곳이다. 온갖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모두 만난다. 사실 대하기 힘든 환자도 많다. 취객이 난동을 부리거나 조직폭력배가 와서 먼저 치료를 해달라고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욕을 하는 환자나 보호자도 많다. 그런 환자를 만나면 이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할 때도 있었다. 반면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환자들도 많다.
가장 보람을 느낀 장면을 꼽으라면?
한 여성이 자상을 입은 채 응급실에 왔다. 칼에 많이 찔려서 말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정말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때 환자가 정말 작은 목소리로 ‘살고 싶다’,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 말이 너무 절박하게 들렸다. 환자의 손을 잡고 ‘걱정하지 마시라’, ‘저희가 살려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수술도 잘되고 회복도 잘했다. 환자가 응급실을 떠나면 임무가 끝나지만 관심 있는 환자는 상태가 어떤지 확인한다. 힘든 일도 참 많았지만 귀한 경험이었다.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한양대병원 응급실에서 12년간 근무하고 집안 사정으로 병원을 그만뒀다. 몇 년 후 다른 병원에 지원했는데 응급실 경험이 있는 간호사를 뽑았다. 응급실 경험이 저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준 거다. 그리고 1년 후 한양대병원에서 신속대응팀 간호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사실 이곳은 저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다시 한번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다. 다행히 병원 측이 제 경력을 다 인정해줬다.
지금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
일반 병동 환자들이 700여 명 정도 된다. 환자들의 혈압, 맥박, 호흡 등 다양한 정보를 모니터링해서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를 돕는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은 응급환자를 대비하는 의료진이 있지만 일반병동에선 응급환자를 빠르게 처치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속대응팀이 고위험군 환자를 빠르게 캐치해서 응급의학과 교수와 함께 출동한다.
입원 환자를 전부 스크리닝(가려내기) 하는 게 쉽지 않겠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늘 긴장하고 있다. 모니터링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갑자기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모니터링을 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코드블루(심정지 환자 발생 응급 코드)가 뜨면 허탈할 때가 있다. 돌발상황이 생기면 병동에서 신속대응팀에 연락한다. 환자의 상태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럴 때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감당하겠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급박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나?
응급실 근무로 다양한 상황에 단련돼서 그런지 침착한 편이다. 제가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손발이 맞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코드블루 방송이 나와서 병동에 가면 수십 명이 몰려든다. 그중에서 대처를 하는 사람은 3~4명이면 된다. 급박한 상황에서 손발이 맞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는데 저와 함께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항상 손발을 맞춰왔다. 우리가 함께 가면 안 좋은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긴다. 그래서 신속대응팀이 출동하면 ‘어벤저스’가 왔다고 말하는 후배들이 많다. 그런 말을 들으면 뿌듯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
간호사는 사명감 없이는 하기 힘든 직업이라고 느껴진다.
요즘 간호사들의 업무 환경이 편하지 않다. 오랫동안 코로나19 상황을 겪기도 했고 여러 가지 논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현장에 있는 것은 환자를 돕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각 병원에는 간호사 1명당 감당해야 할 환자의 수가 많다. 새로운 환자가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과부화가 걸려 있는 간호사들이 많다. 물론 모든 간호사가 친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환자의 쾌유를 돕고 있다. 환자들이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봐주면 좋겠다.
장가현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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