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규제 국민이 직접 바꿨다

도시락은 되고 봉투는 안된다? 포털 비번 6개월마다 꼭 변경?
황·당·규·제 국민이 직접 바꿨다
우리 일상에는 수많은 규제가 있다. 그중 국가와 사회가 유지되는데 반드시 필요한 규제도 있지만 규제를 위한 규제, 일상을 번거롭게 만드는 ‘황당규제’도 존재한다. 규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민이 생활 속 황당한 규제를 발굴하고 개선방안을 직접 제안하는 공모전이 열렸다.
국무조정실이 주최한 ‘황당규제 공모전’에는 불편한 규제를 개선하려는 다양한 의견이 접수됐다. 그중 전문가와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된 10개 우수제안과제가 황당규제 포털에서 온라인투표로 최종 순위가 정해졌다. 투표는 6월 13일부터 22일까지 열흘간 진행됐으며 총 5290명이 참여했다.

고령자 편의 고려한 제안, 대상 수상
대상은 ‘고령자 운전면허 대리반납, 주민센터에서도 허용’을 제안한 김현빈 씨에게 돌아갔다. 제안자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대신 대리인이 반납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의견을 냈다. 도로교통법 제93조 ‘운전면허의 취소·정지’ 제1항 제20호에 따르면 만 65세가 넘은 운전자는 자발적으로 면허증을 반납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간 고령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려면 경찰서를 찾아야 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의 편의를 위해 주민센터에서도 운전면허증을 반납할 수 있지만 고령자 본인이 직접 반납해야 했다. 김 씨는 고령자 운전면허증 대리반납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서뿐 아니라 주민센터에서도 대리반납을 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김 씨는 “주민센터 근무 당시 고령자 운전면허증 대리반납을 위해 찾아온 민원인에게 대리반납은 경찰서에서만 할 수 있다고 안내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며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 씨가 제안한 내용은 2023년 하반기부터 경찰청이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거친 뒤 시행할 계획이다.
최우수상은 ‘인터넷 포털 등에서 비밀번호 변경 의무 완화’가 받았다. 개인정보의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기준 제4조 제8항 제3호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 등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 및 사람은 비밀번호를 6개월에 한 번 이상 변경해야 한다. 이 규정이 포털 이용자에게도 준용되는 경우가 많아 이용자가 비밀번호를 자주 변경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겼다. 제안자는 포털 이용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비밀번호 변경 의무를 완화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 내용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산업계·전문가와 함께 동일한 비밀번호를 장기간 사용했을 시 생기는 위험성과 이용자의 편의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2023년 하반기부터 비밀번호 변경주기를 완화하기로 했다.
우수상은 ‘반려견 목줄 착용의무를 통일하자’는 제안에 돌아갔다. 반려견 목줄 착용의무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2조와 공원녹지법 제49조에 규정돼 있다. 동물보호법은 3개월 미만 반려견을 보호자가 직접 안아서 외출할 경우 목줄 착용의무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공원녹지법은 반려견 연령에 상관없이 도시 공원에 출입하는 모든 반려견은 목줄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어 두 법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제안자는 이를 일률적으로 관리하자는 의견을 냈다. 국토교통부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일률적으로 규제를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동물보호법에 맞춰 공원녹지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나머지 7개 제안은 장려상을 받았다. 아동복지법 제35조에 따라 지자체별로 저소득층 아동은 아동급식카드를 지원하고 있다. 대상 아동은 편의점에서 도시락 등 식품은 구입할 수 있지만 봉투는 구매품목에서 제외돼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제안자는 아동급식카드로 종량제봉투 등 1장 구매를 허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고 보건복지부는 2023년 하반기 중에 지자체 의견을 수렴해 매뉴얼을 만들 계획이다.

우수제안, 2024년 상반기까지 법 개정
청소년증 사진 규격을 다른 신분증 규격과 통일하자는 의견도 장려상을 받았다. 여권,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발급할 때 제출하는 사진은 3.5㎝×4.5㎝로 통일돼 있다. 하지만 청소년증 사진 규격은 3㎝×4㎝로 청소년증을 발급받으려면 사진을 다시 찍어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2023년 하반기부터 청소년증 사진 규격을 다른 신분증과 통일하기로 했다.
일부 비현실적인 특수건강진단 검사 규정을 현실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 206조에 따르면 특수건강진단은 분진, 소음, 화학물질 등 직업병의 원인이 되는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받는 검사다. 그중 일산화탄소의 경우 작업종료 후 10~15분 이내 채취해야 하지만 병원 이동과 대기시간 등을 고려하면 제한시간 내 검사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안자의 의견에 따라 2024년 상반기에 관련 규정 검사시간이 현실에 맞게 개정될 계획이다.
2023년 하반기부터 외국인도 전입세대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제안자는 주민등록자만 전입세대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어 외국인이 매매자 또는 임대차 계약 당사자임에도 전입세대 확인서를 발급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개선해달라고 제안했다. 행정안전부는 외국인도 전입세대 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주민등록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국무조정실은 이번 공모전에서 아쉽게 채택되지 못한 과제들 중 좋은 과제는 따로 선별해 개선할 방침이다. ‘검정고시 응시원서 제출사진 촬영기한, 수능 응시원서와 동일하게 통일하자’는 제안 등 좋은 평가를 받은 과제들도 관계부처 및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규제내용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장가현 기자

(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