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혀주는 남자 10년간 300만 벌! 한복 체험을 전통 아닌 놀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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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한복대여점 1호 ‘한복남’ 박세상 대표
호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 전동성당 앞을 가득 메운 ‘셀피족(자기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찍는 사람)’, 한옥마을의 명물 수제 초코파이를 맛보기 위해 길게 늘어선 대기행렬, 자동차 대신 미니 전동차에 몸을 싣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오가는 가족과 연인들. 국내 대표적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전북 전주한옥마을의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색색의 화려한 한복을 입고 갓 쓰고 댕기머리 한 젊은이들이었다. 취재진이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6월 중순, 30℃를 육박하는 때 이른 더위에도 전통 한복을 입은 청년들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한옥마을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쌍화차와 팥빙수가 한 상에 차려진 이곳만의 색다른 컬래버레이션(협업)을 즐기며 전통과 현대를 오가고 있었다.
“이렇게 더울 땐 저조차 한복을 입기 쉽지 않은데 관광객들은 참 즐거워 보이죠?(웃음) 6월은 관광 비수기인데도 이래요. 성수기인 7~8월이 되면 찜통더위에도 한복을 입은 관광객으로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아무리 더워도 전주에 오면 꼭 한복을 입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한복 체험이 필수적인 관광문화로 자리 잡은 거죠.”
한복 입기를 일상의 놀이로 만든 ‘한복남’ 박세상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2012년 ‘한복길’이란 이름으로 한복 대여업체를 차렸다. 전주한옥마을의 1호 한복 대여점이었다. 이후 인근에는 수십 개의 비슷한 업체가 생겨났고 ‘한복남’이 서울로 진출하면서 그 영향은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로까지 퍼져나갔다. 한복을 입고 한옥과 궁 등을 거니는 문화는 지방에서 먼저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로컬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전주한옥마을을 비롯해 경복궁과 창덕궁,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 등 네 곳에 업체를 두고 있는 박 대표가 한 해 대여하는 한복만 30만~40만 벌, 10년간 사람들에게 300만 벌의 한복을 입혔다. 박 대표에겐 ‘한복 입혀주는 남자’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명절,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만 입었던 한복은 이제 관광의 재미를 배가하는 ‘문화’로, 일상에서도 쉽게 즐기는 ‘놀이’로 거듭났다. 창업 12년 차, 박 대표는 이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한복을 입힐까’가 아닌 ‘한복을 입고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한복을 창업 아이템으로 떠올린 이유가 뭔가?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연 관광객이 1000만 명 정도 되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약 200만 명에 불과했다. 전주는 한식이 유명한데 밥을 먹고 나면 할 게 없었다.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게 할까 고민한 끝에 떠올린 게 한복이었다. 먹고 자고 입는 것부터 한국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한옥과 한식은 있으니 나머지 빈자리를 한복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라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한복축제’부터 기획했다고.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기에 앞서 약 3년간 ‘한복데이’라는 한복축제를 통해 일종의 테스트를 했다. 누리소통망(SNS)에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고 ‘한복 입고 놀 사람 모이자’고 글을 올렸다. 그게 1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면서 첫해에 100명, 그 다음 해에 3000명까지 모였다. 한곳에 모여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고 플래시몹 등을 하며 놀았다. 지방자치단체와 인근 상점 사장님들을 설득해 한복을 입고 오면 관광지 입장료를 면제해주거나 식당·카페 등 이용료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한복가맹점’을 만들어 일종의 ‘한복여행코스’를 만든 거다. 누군가 혼자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이상하게 생각했겠지만 단체로 한복을 입어 ‘나도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한복 대여점이라는 공급망을 통해 한복 관광에 대한 수요, 나아가 하나의 시장을 만든 셈이다.
‘한복길’이 문을 연 뒤 비슷한 대여점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그렇게 공급이 많아졌기 때문에 한복이 매력적인 상품이 됐다고 생각한다. 나만 독점했다면 한복 대여 시장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거다. 특히 민간의 힘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대부분의 전통문화 사업은 지자체나 정부 보조를 받는데 지원이 끝나면 사업도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전통문화 사업도 고객과 직접 만나는 B2C 방식으로 운영해야 더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본다.
나조차도 3년 정도면 유행이 식을 줄 알았다. 관광지에서 한복 입고 SNS에 올리면 그걸로 끝일 줄 알았는데 한번 경험한 사람들이 또 오더라. 시장의 규모는 작아도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전통문화의 특징 때문인 듯하다. 특히 요즘 10대들은 입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복을 오히려 특별한 옷으로 생각하고 관광지에서 입는 걸 무척 재미있게 여긴다.
서울 경복궁에 지점을 낼 땐 전 직원이 반대했다고 들었다.
‘전주한옥마을이니까 입지 서울에서 누가 한복을 입느냐’는 게 당시 반대 이유였다. 그럼에도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있어 가능할 거라고 봤다. 외국인들은 우리 전통문화 체험에 대한 욕망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 예상은 적중했고 한복을 입고 서울의 궁을 거니는 문화는 외국인의 체험에서 시작해 역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퍼졌다. 이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까진 매년 한복을 300벌씩 들고 해외를 돌며 ‘한복데이’를 개최했다. 사전에 신청을 받아 한복을 무료로 입혀주는 행사였다.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태국 방콕에서 진행한 ‘한복데이’엔 하루에 1000명이 몰리기도 했다.
한옥마을이 있는 지자체들로부터 컨설팅 요청도 받고 있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기준은 뭔가?
한옥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무조건 한복을 입는 게 아니다. 한복을 입고 즐길거리가 있어야 한다. 창업 전 ‘한복데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자체 공연, 관광지 무료입장, 상점 할인과 같은 즐길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한옥마을은 주차장에서 메인거리까지 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는데 이런 곳은 한복 입는 문화가 생겨나기 어렵다. 창업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 역시 ‘한복을 입고 뭘 하면 재미있을까’다. 전통다과와 비빔밥 등을 응용한 메뉴를 선보이는 전통 카페·주점을 운영하는 것도 이 같은 고민의 결과다. 최근엔 전주한옥마을 인근 지역에 추억여행을 콘셉트로 한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갈수록 관광객의 체류시간이 줄어드는 등 전주를 다른 도시를 거쳐 가기 위한 곳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한복을 입은 이들을 낮엔 한옥마을에, 밤엔 테마파크에 머물게 하는 게 목표다. 한복 입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동시에 침체된 지역도 살릴 수 있다.
코로나19에도 관광산업을 혁신한 공로로 정부가 선정한 ‘2022년 우수 관광벤처’ 42곳에 이름을 올렸다.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코로나19 때 온라인을 통한 한복 대여를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관광지의 대여점에 가야만 한복을 빌릴 수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대여해줌으로써 언제 어디서든 한복을 입을 수 있게 한 거다. 때마침 BTS, 유재석 등 연예인들이 일상에서 한복을 입은 모습이 노출되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늘었다. 다음 목표는 해외진출이다. 해외에서 한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점점 더 전통적인 것과 결합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에 나가 한국사람이 피자를 팔면 얼마나 사먹겠나.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할수록 전통을 앞세워야 하는 거다. 그건 대기업보다 로컬기업이 오히려 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오리지널리티만 고수할 필요도 없다. 한복입기가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도 전통을 놀이처럼 해석한 덕이다. 한국적 색깔을 유지하되 진입장벽을 낮춰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하면 많은 이들이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한복-한류 협업 콘텐츠 공모
한류스타와 손잡고 한복 개발
6월 28일까지 업체 공개 모집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한복 분야 한류 연계 협업 콘텐츠 기획·개발’ 사업에 참여할 한복 업체를 6월 28일까지 모집한다. 올해 4회를 맞는 이 사업은 한복 디자이너와 한류 문화예술인이 협력해 매력적인 한복을 디자인하고 홍보해 한류의 외연을 전통문화로 확장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2년에는 김연아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참여해 한복 60종을 개발하고 한복 화보 영상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통해 송출했다. 올해 사업에는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참여한다.
이번 공모에서는 중소기업 6곳을 선정한다. 사업을 통해 개발된 한복은 2023년 하반기 한복 화보·패션쇼 등을 통해 공개된다. 자세한 내용은 문체부 누리집(www.mc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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