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의 디자인은 용사들이 입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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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유공자 ‘새 제복’ 디자인 김석원 앤디앤뎁 대표
2022년 6월 20일, 국가보훈부가 호국의 달을 맞아 6·25참전유공자를 위한 새로운 여름 단체복을 공개했다. 이제껏 규격화된 제복 없이 여름이면 일명 ‘안전조끼’로 불리는 상의를 입어온 영웅들을 위해 새로운 제복을 만드는 과정과 이를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을 담은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는 공개 이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국가보훈부는 2023년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제복의 영웅들’ 사업을 전면 확대해 생존하는 6·25참전유공자 전원에게 새로운 제복을 지급하기로 했다. 2023년 1월 1일 기준 생존 6·25참전용사는 5만 1000여 명이다.
연갈색 재킷과 흰색 셔츠, 남색 바지와 넥타이. 5만 1000여 명의 6·25참전유공자가 입게 될 새 제복은 단순하지만 격식 있고, 각 잡힌 듯하면서도 편안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 제복을 구상하고 제작한 김석원(53) 앤디앤뎁 대표는 “6·25참전유공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입기 편한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6·25참전유공자의 의견을 듣고 소재부터 단추까지 수정을 거듭했다. 지금도 생산 과정을 꼼꼼히 감독하며 완벽한 제복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달부터 새 제복 지급이 시작되는 가운데 김 대표를 만나 제복이 완성되기까지 과정과 이번 작업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국가보훈부가 6·25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인식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해온 걸로 알고 있다. 2021년에는 6·25참전유공자의 외모와 패션을 변신시켜주는 ‘다시 영웅’이라는 재단장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022년에는 6·25참전유공자들이 여름에 입는 약복, 조끼가 그들의 격에 맞지 않는다며 새로운 여름 단체복을 만드는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가보훈부로부터 새 제복의 디자인을 요청받았고, 디자이너로서 영웅들을 위한 옷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 참여하기로 했다.
기존 약복을 봤을 때 느낌은?
6·25참전유공자들이 공사 현장이나 작업할 때 입는 작업복 조끼를 입고 있는 것도 놀라웠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태극기와 약장(略章·약식의 훈장, 휘장, 기장)을 달고 있는 모습도 놀라웠다. 6·25참전유공자에 대한 처우에 놀랍고 안타까웠다.
디자이너로서 큰 부담을 느꼈을 것 같다.
6·25참전유공자를 상징하는 제복의 이미지라는 게 사실상 없었다. 내가 디자인한 옷으로 6·25참전유공자를 표현하고 정체성을 만들어드린다는 게 부담스러우면서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책임감도 느꼈고.
새 제복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했나?
우선 일반 국민이 6·25참전유공자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상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참전유공자지만 현역 군인은 아니기에 자칫 군인의 정복과 비슷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처럼 보이는 복장도 아니어야 했다. 이 모든 걸 합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통 복식사에서 전쟁에서 군인들이 입었고 또 거기에서 발전한 옷인 사파리 재킷을 떠올렸다. 하복이기 때문에 소재는 시원하고 통풍성이 좋은 리넨(linen·마)이 적합했다. 사파리 재킷을 리넨 소재로 제작해 정복 같은 느낌을 주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미를 나타내기로 했다. 여기에 훈장, 기장 등을 달아도 축축 늘어지지 않도록 옷의 기능적인 요소를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완성된 새 제복은 어떤 모습인가?
새 제복은 연갈색 재킷과 흰색 셔츠, 남색 바지와 넥타이로 구성됐다. 사파리 재킷 형태의 재킷은 가볍고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살릴 수 있게 했다. 훈장과 기장 등을 달 수 있도록 아웃포켓을 달았다. 셔츠는 얇은 여름용이지만 6·25참전용사들이 기장과 훈장을 주머니 부분에 착용했을 때 그 무게로 셔츠가 처지는 등 변형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썼다. 넥타이에는 상징성 있는 자수를 더해 기장이나 훈장을 착용하지 않더라도 참전용사임을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디자인에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옷의 디테일보다 옷의 의미를 생각했다. 이 제복의 디자인은 입는 분들이 제복을 입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명예로운 훈장, 기장 등을 달았을 때 완성된다. 나는 그분들이 그런 걸 하실 수 있게 밑작업만 한 거다. 6·25참전유공자를 만나보면 각자 제복을 꾸미는 방식이 다르다. 개성이 드러난다. 내 디자인은 6·25참전용사들이 각자 개성있게, 자신의 기호에 맞게 옷을 입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그렇게 디자인했다.
제작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6개월 정도 걸렸다. 나 혼자만의 디자인이 아니라 6·25참전용사의 상징성, 국가보훈부의 의견을 종합하다 보니 많은 협의가 필요했고 시간이 꽤 걸렸다.
2022년 공개된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사업이 확대돼 생존 6·25참전유공자 전원이 새 제복을 입게 됐다.
원래 프로젝트는 10명의 참전유공자가 시범 착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거였다. 그런데 국민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다. 나라의 세금을 이런 데 써야 한다는 댓글도 많고, 참전용사들이 이런 처우를 받고 있다는 걸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같은 호응이 국가보훈부가 사업을 확대해 참전유공자 전원에게 새 제복을 지급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할 일이 많아졌다. 대량 생산을 위해 소재와 컬러, 디자인을 보완해야 했고 샘플을 만들고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예우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지금이나마 국가에서 해드리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6·25참전유공자의 의견도 적극 반영했다고 들었다.
소재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리넨은 시원하지만 구김이 많이 생긴다. 드라이클리닝 대신 물빨래가 가능한 소재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 재킷 소재를 바꿨다. 그러면서 컬러도 리넨 고유의 베이지색에서 밝고 선명한 연갈색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단추를 금장으로 바꿔 화려함을 더했다. 보다 정체성 강한 옷이 완성됐다.
새 제복 제작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디자이너로서 소재부터 단추 하나하나 생산 과정에 필요한 감리를 하고 있다.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처리하기도 하고. 새 제복이 제대로 생산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있다.
새 제복을 입은 6·25참전유공자를 만나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얼마 전 한 패션화보 촬영장에서 새로 만든 제복을 입은 6·25참전유공자를 만났다. 그분들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뭉클했다.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거기에 명예로운 훈장을 달고 사진 촬영하는 걸 보면서 내가 이분들이 희생하고 헌신한 참전의 의미를 알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만난 한 분은 올해 94세로 일반 사병으로는 이례적으로 훈장을 3개나 받으셨다.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만한 분이었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기품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분께서 이 제복을 5년만 더 빨리 만들어주지 그랬냐고 하시더라. 그 사이 많은 분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셨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더 많은 참전유공자가 옷을 입었을 거라며 아쉬워하는데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러웠다.
1월 1일 이후 생을 달리한 참전유공자들도 유가족이 신청하면 제복을 받을 수 있다.
유가족들이 새 제복을 영정에 올리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살아계신 분들 중 수의(壽衣)로 입고 싶다는 분들도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단순히 참전유공자만을 위한 디자인 작업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이 제복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업이 디자이너 인생에서도 큰 의미로 남을 것 같다.
지금까지 재능 기부도 많이 하고 이런 작업을 많이 해봤지만 프로젝트 시작부터 지금까지 거의 2년 가까이 작업했고 의미도 큰 만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번처럼 국민이 좋아하는 작업도 없었던 것 같다. 나로서는 영광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로서 주목받고 싶진 않다. 제복을 만든 내가 아니라 6·25참전유공자들이 더 주목받고, 새 제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 제복이 어떤 옷이 되길 바라나?
제복이 우리 국민과 참전유공자들을 이어주는 브리지(Bridge·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알려주고 국민이 자연스레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이 옷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정미 기자
김석원 대표 약력
1996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패션디자인과 졸업
1999 앤디앤뎁 론칭
2000~2005 SADI(삼성디자인교육원) 패션디자인과 초빙 크리틱
2004 제8회 서울패션인상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상 수상
2008~2010 뉴욕패션위크 참가
2009 제2회 코리아패션대상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09~2012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심사위원
2010 서울패션위크 10주년 ‘10인의 헌정 디자이너’
2016 제9회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상 수상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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