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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으로부터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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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고 싶어?”(남편)
“음… 당신이 해주는 거.”(아내)
나와 친한 권은순 디자이너 부부의 대화다. 이 부부는 결혼 생활 중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희한한 부부인데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밥’이다. 평생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한 남편은 음악과 사진 전문가인데 사고방식은 평범한 대한민국 중년 남자다. 아내는 패션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바쁜 삶을 이어왔다. 시간과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밥은 먹고 싶은 사람이 해먹거나 시간이 있는 사람이 해야지 굳이 아내가 전담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고도 이 부부는 분란 없이 내내 평화롭게 지낸다.
반면 내가 아는 아티스트의 부인은 일흔이 넘어서도 아침마다 12첩 반상을 차린다. 또 다른 지인은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저녁 즈음이면 좌불안석이 된다. 결국 남편의 저녁 밥상을 차리러 바지런히 들어간다. 여행 한번 가려고 하면 남편의 밥 때문에 며칠 전부터 국을 끓여 얼려두고 가지가지 찬을 만들어 반찬통에 착착 쟁여둔다. 그럼에도 여행을 다녀온 후 보면 손끝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라고 울상이다.
밥 정이니, 밥상머리 교육이니, 아침밥을 얻어먹느니, 집밥의 힘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밥에 집착하고 아내들도 자신의 존재를 밥으로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엄마 라미란은 여행을 다녀오며 집안이 엉망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정돈이 잘돼 있고 식구들이 밥도 잘 챙겨먹어 외려 존재감 상실로 덜커덕 주저앉는 장면이 내겐 충격이었다. 어쩌면 여성들 스스로가 밥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밥을 통해 식구들을 통제(?)하려 했던 건 아닌지.
결국 밥으로부터 해방은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남편이 설거지 하다 그릇을 깨면 ‘아이고, 저리 비켜. 내가 하고 말지’ 하지 말고 ‘잘한다’며 엉덩이 팍팍 두드려 주고, ‘집안일 도와 달라’ 하지 말고 ‘우리집 일이니 당연히 같이해야 하는 일’로 인식시켜야 한다.
요즘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도 잘돼 있다. 묶음으로 두 손 가득 사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시켜 먹거나 집 앞에 나가 한 끼 사 먹는 게 돈도 시간도 절약이다. 나는 쇠고기배춧국 한번 시켜먹고는 깜짝 놀랐다. 너무 맛있어서. 쇠고기랑 배추 사서 한 끼 먹으려면 버리는 게 태반이고 적은 양은 또 팔지도 않는다. 싱크대에 매달려 뜨거운 불 앞에서 시간 보내지 말고 그 시간에 차라리 집 앞 카페에 나가 책을 읽거나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게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길이다.
자, 이제 “간단하게 국수나 해먹을까?” 하는 남편 얘기에 “응, 당신이 해주는 간단한 국수”라고 하자. 국수가 간단하다고 누가 그러던가. 물 끓이고 국수 삶고 간 해야지, 고명 썰어 얹고 김치도 꺼내야지, 그렇게 간단하면 당신이 좀 해보라고!


윤영미
SBS 아나운서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캐스터다. 현재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산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주 무모한집을 소개하며 뉴미디어를 향해 순항 중인 열정의 소유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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