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적 시각의 제도 개선이 돋보이는 ‘세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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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윤석열 정부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세제개편안이 발표됐다. 세제개편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매년 추진하던 세법개정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세법개정은 매년 대두되는 단기적·세부적 상황변화에 대한 정책대응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세제개편이란 용어는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의 정책대응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국제경쟁 환경을 반영하고, 이전 정부와 달라진 정책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역동적 혁신을 통한 성장과 세수의 선순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 활력제고와 민생안정을 주요 과제로 하고, 조세인프라 확충과 납세자 친화적 환경구축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민간·기업·시장 중심의 경제운용과 과학기술·혁신 선도형 경제라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제개편이라 평가할 수 있다.
금번 세제개편안의 세수효과는 전년대비 기준 13조1000억원 감세이다. 이는 2021년 기준 국내총생산의 0.6%에 불과하나 세제개편 효과가 이후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납세자 체감 규모는 동 수치보다 크다. 세목별 구성을 살펴보면 민간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법인세 감세가 6조8000억원으로 가장 큰 규모이다. 전쟁,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경기하락 위험성을 감안해 경쟁력 있는 기업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새 정부의 자세를 보여준다.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소득 하락, 급격하게 높아진 재산관련 세부담 완화 필요성 등에 대응한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감세가 각각 2조5000억원, 1조7000억원 규모로 제시돼 있다. 세 부담 조절을 통한 납세자 세후소득 증가와 납세 순응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개편내용으로 먼저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인세율 인하 및 단순화, 해외활동의 부담축소, 국내공급망 확대 지원강화 등이 포함됐다. 법인세율 인하 및 단순화는 기업의 국내활동 강화, 성장유인 확보를 위해 필요한 사항이다.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를 해소한 의의가 있다.
구체적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하향조정함으로써 외국에 비해 국내 기업활동의 불리함을 완화했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의 일몰종료는 세율이 아닌 형태의 세부담 부과라는 불투명한 제도운영 관행을 해소해 바람직하다.
또한 해외자회사의 배당에 대한 이중과세조정 합리화는 외국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과세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이다.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법인세 원천지주의의 적용으로 단순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정책이다.
국가전략기술 등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인 것은 경제발전의 동력을 확보하고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시설투자는 기업규모별 차등을 축소해 선도적인 시설확보에 중점을 뒀다. 반면 상대적으로 범용적인 일반 및 신성장·원천기술 관련 시설투자는 중견기업에의 지원 강화로 국내 생산기반 확충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생안정을 위한 정책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동산가격 상승, 세율인상 등으로 세부담이 크게 증가해 소득상황과 괴리가 심해진 종합부동산세를 낮춘다.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인하하고 세부담상한을 150%로 단일화해 지나친 부담상승을 방지한다. 동시에 고자산가에 대한 과세제도인 종합부동산세가 그 취지에 부합하도록 기존의 주택 수 누진 기준을 폐지하고 과세표준 기준으로 단일화한다. 납세자의 부담능력을 감안해 제도 순응성을 높이면서 특정지역으로의 주택 수요 쏠림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부동산, 유가 등 물가상승으로 악화된 생활여건을 반영해 중산층이하를 대상으로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월세세액공제율 인상 및 임차자금 소득공제 확대, 근로장려금·자녀장려금 급여액 인상 등이 추진된다.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저 큰 충격을 받고, 회복과정에서는 늦게 혜택을 받는 중산서민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주세의 물가연동제 도입은 알코올의 실질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확대를 방지하는 의미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공정한 과세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포함돼 있다. 고용보험 확대를 위한 간이지급명세서 제출주기 단축, 판매·결제대행·중개자료 제출의무의 강화, 플랫폼 기업 등으로부터 거래정보 입수근거 마련 등으로 디지털 경제 전환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존재한다. 상당한 감세정책으로서 최근 악화된 정부재정, 국가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재정건전화에는 단기적으로 기여하지 못한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세출부문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가업승계에 대한 정책도 지원목적과의 부합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가업승계의 지원목적은 상속세부담으로 인한 기업 및 일자리 상실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시장 가치평가를 통해 거래가능한 상장기업,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은 지원목적과 부합하기 쉽지 않다.
올해 세제개편안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담고 있다. 과거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간부문을 미래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성화하는 정책이다. 조세제도는 기업활동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확보를 지원하고, 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와 공정한 시장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세계경제의 다극화와 공급망 재편 등의 변화추세에 대응하면서 경제성장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방향이다. 민간활동 활성화가 야기할 수 있는 격차확대, 경제질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민생안정 노력도 잘 보여준다. 재정부담의 어려움은 있지만 중기적 시각의 제도개선이 돋보이는 세제개편이라 할 수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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