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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여름과 여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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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소금막해변.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표선해수욕장이다.│우희덕

땅이 녹아내린다. 땀이 흘러내린다. 몸이 늘어진다. 끈적인다 몸이. 태양이 작열한다. 여름이 방학을 끝냈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으니 야외 활동을 자제해 달라는 방송이 마을에 울려 퍼진다. 잠시만 피부가 햇빛에 노출돼도 피부과 레이저처럼 따갑다.
제주의 여름은 중년인 나를 20대 시절로 되돌려놓았다. 뜨겁던 그때로 나를 인도했다. 한 가지 일에 도전했다. 그건 제주에서 불가능하다는 옆집 아저씨의 말에 자극받아 끝까지 견뎌보기로 했다. 여름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유토피아는 없다는 생각을 줄곧 견지하고 있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이없게도 에어컨이 펑펑 나오는 읍내 마트에서 처음 했다.
7월 초까지 에어컨을 틀지 않고 버텼다. 에어컨이 없었을 땐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었다. 집에서든 차에서든 틀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다. 한낮의 열기와 계속되는 열대야. 숨이 턱턱 막혔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진이 빠졌다. 제주 특유의 높은 습도가 체감 온도를 끌어올렸다. 샤워를 해도 그때뿐이었다. 바보 같았지만 의미 없는 도전은 아니었다. 그새 몸무게가 4킬로그램이 빠졌다. 20대 때의 몸무게로 회귀했다. 제주의 여름은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이든 도전했던 그때의 여름과 닮았다.
여전히 에어컨 가동은 자제한다. 대신 자연에서 더위를 식힐 방법을 찾는다. 이렇게 뜨거운 여름을 안겨준 제주는 사실 대한민국 최고의 피서지가 아니던가? 언제까지 낙원에만, 아니 읍내 마트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해변으로 향한다.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금능, 협재해수욕장이 아닌 작은 해변으로 향한다. 인파로 북적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표선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다. 예상했다. 사막 같은 해안사구와 현무암 지대를 건너 옆에 있는 해변으로 간다. 어떤 비밀한 경계를 건너간다. 이내 내 앞에 펼쳐지는 건 소금막해변. 유명한 해수욕장 옆인데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드문드문하다. 한적하다. 그 규모도 작고 물빛이든 백사장이든 특별한 것은 없으나 부족한 것 또한 찾을 수 없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기분은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기분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가만히 해변을 바라본다. 서프보드를 들고 있는 사람, 개와 산책하는 사람, 파라솔 아래 낮잠을 자는 사람, 그렇게 해변과 하나가 된 사람들을 바라본다. 잔잔한 파도가 나를 부른다. 아직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지 않은 모래밭을 달려 바다로 뛰어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넘어질 거라는 것을. 소금막해변은 마치 내가 해변을 소유한 것처럼,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유유히 평화롭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해변에는 그늘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름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걸. 산이든 강이든 바다든 그 어디든. 지금 소금막해변의 사람들처럼.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_ 장편소설 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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