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밥상이 거저 차려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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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백 사업으로 대박이 난 가수 출신 사업가 임상아가 말하길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위해선 하기 싫은 일 아홉 가지를 해야 한단다. 악어백 앞에서 근사하게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실리는 일을 하기 위해선 원단을 구하고 봉제를 하고 짐을 실어 나르고 협상을 해야 한다. 오지 여행가 한비야도 그랬다. 본인을 닮고 싶은 사람으로 꼽는 대학생이 많은데 여행책을 내고 멋진 강연을 하는 모습만 보고 부러워할 게 아니라, 오지에 가서 손가락으로 구역질 나는 걸 먹기도 하고 맹수에 위협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도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방송인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모습으로 화면에 나오기 위해선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긴장과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 그래서 유독 방송인 중에 공황장애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무대 뒤에서 가수 송창식이 누구보다 먼저 와 기본적인 기타 연습을 하고 있길래 “고수께서 왜 그렇게 연습을 하냐” 물으니 “하루 4시간 이상 기타 연습을 안 하면 손가락이 굳는다”고 말하더라. 야구선수들은 경기 전후 10시간씩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세계적인 홈런타자들도 공 10개 중 3개를 맞추려고 일평생 방망이를 휘두른다.
방송인 유재석도 롱런하는 이유가 있다. 술을 못 마시는 그는 음료수를 마시며 동료들과 밤샘 수다를 떨기도 하는데 뒷담화 많은 연예계에서 나는 유재석을 흉보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언제나 먼저 와서 인사하고 끝까지 남아 고개 숙여 마중하고 경조사도 누구보다 잘 챙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해어진 발레슈즈는 모두에게 감동을 줬다. 무대에서는 백조같이 우아한 그는 말한다. 30년간 아물지 않은 그 상처가 나를 키웠다고. 보통의 무용수들은 남성과 여성이 따로 연습하지만 강수진은 남성들과 연습했다고 한다. 왜냐. 여성과 연습해서는 여성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에.
전북 고창 호암마을 성당에 계시던 이탈리아인 강칼라 수녀님은 평생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했는데 몇 년 전 성당 행사에서 사회를 보기 위해 수녀님을 뵈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수녀님의 굽은 허리와 주름진 얼굴의 평화를 보고 울었고, 수녀님의 일그러지고 뭉개진 생강발을 보고 크게 울었다. 망가지다 못해 발가락이 생강처럼 붙어버린 수녀님의 발에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문턱이 닳은 설렁탕집의 주인은 몇 십 년 동안 뜨거운 불 앞에서 몇 만 그릇의 설렁탕을 끓여냈을까. 고깃집 신발을 정리하는 ‘신발맨’은 수십 켤레의 신발 주인을 턱턱 알아보고 신발만 봐도 그 사람의 직업과 인생이 보인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신발을 정리하면 그 경지에 다다를까. 달콤한 꿀 한 방울 만들기 위해 벌꿀은 꿀주머니 그득 꿀과 즙을 싣고 벌집으로 돌아와 일벌에게 전달하고, 일벌은 수 백 번 꿀을 머금고 뱉는 일을 반복하고는 날갯짓으로 건조시키고 밀봉·밀납시키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우리가 먹는 꿀이 만들어지는 거란다.
오늘 저녁 밥상은 누군가의 땀과 노고와 밥벌이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 한 알의 딸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심고 거두고 물주고 팔고 사고 씻고 담는 고됨이 있었다는 것, 일상의 식탁은 그래서 위대하다.
윤영미
SBS 아나운서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캐스터다. 현재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산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주 무모한집을 소개하며 뉴미디어를 향해 순항 중인 열정의 소유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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