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 잡은 사람은 왜 멀미를 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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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휴대폰이나 잡지로 읽고 있는 당신을 뒤에서 누가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고 하자. 만약 지금이 밤이고 자기 전에 침대에 배우자나 연인과 함께 있다면 당신은 그 손을 감싸 쥐며 포근함과 사랑을 느낄 것이다. 최근 둘 사이의 관계가 안 좋았다면 그걸 상대방의 화해 몸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군가 당신을 뒤에서 감싸 안았다면? 온몸이 곤두서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를 것이다. 즉시 당신은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거나 아니면 주방으로 달려가 손에 무엇이라도 잡고 당신을 방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예 소리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얼어붙을 수도 있다.
이처럼 당신을 뒤에서 감싸 안은 ‘같은 자극’에 대해 뇌는 ‘다른 해석’을 하고 몸은 그 해석에 맞춰 ‘개별 대응’을 보인다. 같은 자극에 대해 해석과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해석만큼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어렸을 때 세 살 많은 우리 형은 버스를 타면 자주 멀미를 했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비포장도로로 2시간 넘게 가야 했던 외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오징어나 쥐포를 사서 형이 씹도록 했다. 처음에는 딱딱했지만 형의 이와 침, 그리고 위산에 녹아 흐물흐물해진 오징어와 쥐포는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얼마 안돼 다시 형의 몸 밖으로 나왔다. 꼬릿꼬릿하고 시큼한 냄새와 함께 형이 “웩웩” 하고 토하면 그 소리와 냄새 때문에 참고 있던 나도 구토를 해 어머니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랬던 형이 언제부턴가 멀미를 전혀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이 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바닥을 활짝 편 다음 12개 갈비뼈 사이에 손가락을 놓고 꼼지락거려 보자. 나에게 하면 하나도 간지럽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하면 상대는 간지러워 한다. 같은 자극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른 느낌인 이유는 뭘까?
남이 내 몸을 간지럽히면 간지럽다. 내가 내 몸을 간지럽히면 안 간지럽다. 남이 운전하면 어지럽다. 내가 운전하면 안 어지럽다. 주도권이다. 남이나 세상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면 삶은 단순히 간지럽고 어지러운 것에 그치지 않는다. 치과를 떠올려 보자. “위이잉” 드릴 소리만 들어도 벌써부터 몸에 소름이 돋는다. 거기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우리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한다. 내가 아니라 남이 내 삶을 좌지우지할 때 미래에 대한 예측은 자신에게 불안과 공포를 안겨준다.
자극(정보)이나 주위의 상황만큼 중요한 것이 해석(그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과 주도권이다. 이는 우리 몸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마음과 행복에도 적용된다. 주어진 상황만큼 중요한 것이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의 주도권이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와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는 같은 상황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석이다. 누가 더 행복할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거기다 ‘물이 부족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기에 앞서 직접 자신이 물을 채워 넣는다면 최고가 아닐까?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빛나는 외모만큼 눈부신 마음을 가진 의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작가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주치의〉를 비롯해 7권의 책을 썼다.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환자 한 명당 진료를 30분씩 보는 게 꿈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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