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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호·의암호·춘천호… 호수마다 색다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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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도시 강원 춘천 
고려 때 ‘봄이 빨리 오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춘주(春州)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 ‘봄내’로 불렀는데 한자로 옮기니 자연스레 춘천(春川)이 됐다고 한다.
호수의 고장인 강원 춘천은 북한강과 소양강, 공지천이 어우러져 물이 풍부하다. 파로호에서 내려오는 북한강 줄기에 춘천댐을 짓고 소양강 자락에는 소양댐을 세웠다.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에는 의암댐을 지었다.
춘천은 젊음, 낭만, 애틋함의 도시이자 데이트 코스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춘천을 오가려면 경춘가도(46번 국도)를 이용해야 했다. 2009년에야 서울양양고속도로 중 서울~춘천 구간이 개통됐다. 1939년부터 2010년까지 운행된 경춘선 열차는 전철과 ITX 청춘열차가 대신하고 있다. 이제 춘천은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찾을 수 있는 가까운 도시가 됐다. 춘천은 인구가 증가세다. 현재 30만 명에 육박한다. 강원도에서는 원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소양호 너머 천년 고찰 청평사
1970년대 동양 최대 다목적댐인 소양강댐이 지어지자 주변에는 물길이 주요 교통로가 된 곳이 많다. 청평사가 대표적이다. 현재는 노후 선박을 대체(4월 이후) 중이라 육로로 방문해야 한다.
청평사는 고려 때인 973년에 창건된 백암선원으로 시작해 1550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청평사에는 전설이 있다. 당나라 태종에겐 어여쁜 공주가 있었다. 평민 출신 한 청년이 공주를 짝사랑해 상사병에 걸렸다. 분노한 태종은 이 청년을 죽였고 총각은 상사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온갖 수를 써도 뱀은 공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그러다가 찾은 곳이 고려 청평사다.
불공을 드리겠다는 공주의 말에 뱀은 10년 만에 잠시 떨어져나갔다. 기다리다 조바심이 난 상사뱀은 절 안으로 들어가려다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벼락을 맞고 폭우에 떠밀려 죽었다. 공주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3층 석탑을 세웠다. 이러한 전설을 담아 공주와 상사뱀의 동상이 계곡 입구에 세워져 있다.
청평사 입구에는 상사뱀이 돌아나갔다는 전설이 있는 보물 제164호 회전문이 있다. 빙글빙글 돈다는 의미의 회전이 아닌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줄임말로 ‘사람의 말과 행동에 따라 다음 세계가 결정되니 현생을 잘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조금 더 오르면 높이 9m의 구성폭포를 만날 수 있다. 폭포수가 떨어질 때 아홉 가지의 특별한 소리가 들린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청평사에 도착할 무렵 고려 정원인 영지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이자연이 만든 연못으로 남과 북의 길이가 다르다. 착시현상으로 정방형 연못처럼 보이도록 했는데 그 속에 비치는 오봉산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춘천 명소로 다시 태어난 육림고개
춘천 시내 죽림동에 있는 이 고개는 마가리고개라고도 불렀다. 6·25전쟁 후 군복과 미제 물건을 팔던 중앙시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좌판 골목이었다. 1967년 춘천 최초의 극장인 육림극장이 고개 아래에 생겨나면서 ‘육림고개’가 됐다. 극장이 문을 닫자 육림고개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2017년 춘천시에서 육림고개 청년몰 조성사업을 시작한 뒤 입소문을 타면서 춘천의 명소가 됐다.
육림고개를 지나면 커다란 종탑이 시선을 끈다. ‘춘천의 바티칸’이라는 별칭이 붙은 죽림동성당이다. 1941년 토머스 신부가 부지를 매입해 성당을 지으려 했으나 일제강점기에서 이뤄지지 못했다. 1949년 착공을 시작했으나 이듬해 6·25전쟁이 났다. 이 때문에 성당 대신 주변 부지에 병원을 짓고는 수녀들이 나서 인명 구호 활동을 했다. ‘성당병원’이라 불렀던 성골롬반의원은 2011년까지 건강 지킴이 역할을 했다.
성당 건물은 1953년에야 완공됐다. 당시 석조 건물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지금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입구에 있는 높은 쌍둥이 종탑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리가 높은 곳에 자리한 이곳은 해가 질 무렵이면 야경을 보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호수를 머금은 춘천
커다란 호수 세 개와 큼직한 산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춘천은 풍요로운 물의 기운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0선에도 선정됐다. 의암호에 합류하는 공지천은 춘천 시내를 흘러간다. 봄이 되면 공지천 주변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소양2교에는 춘천의 랜드마크인 소양강처녀 동상이 있다. 쏘가리 조형물 앞쪽으로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2021년 개장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소양2교 전후면에 설치된 ‘미디어 파사드’에는 매일 저녁 화려한 불빛쇼가 펼쳐져 춘천 최고의 야경 명소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기 위해 구봉산 전망대를 찾는 것도 좋다. 이름은 전망대지만 전망대가 따로 마련돼 있지는 않다. 어디서든 전망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수가 잔잔한 날이면 나무 카누를 타고 유유히 의암호를 떠다니는 여유를 누리는 것도 멋진 추억으로 남을 테다. 중도물레길 나루터에서 간단한 요령을 배우고 하중도 생태숲을 향해 노를 저으면 된다. 시원스레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카누는 생각보다 다루는 방법이 쉽고 움직임도 날렵해 힘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중도물레길 나루터 옆에는 삼악산까지 이어지는 국내 최장 케이블카가 있다. 삼악산 8부 능선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춘천의 풍경은 시원스럽다.

이름을 딴 최초 기차역, 김유정역
김유정은 1908년 춘천 실레마을(현 신동면 증리 일대)의 갑부집에서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어려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집안은 급격히 쇠락했다. 김유정은 몸도 허약해 잦은 병치레를 달고 살았다. 그는 청년이 돼 고향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1933년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를 시작으로 ‘소낙비’, ‘노다지’를 발표했다. 1937년 스물아홉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주옥같은 수필과 소설 50여 편을 남겼다. 유독 한글을 사랑해 고향 실레마을 곳곳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2002년 김유정 생가터 일대에 문학촌이 문을 열었고 2004년에는 신남역을 김유정역으로 개칭해 국내 최초 인물명을 딴 기차역이 됐다. 역 주변으로 사라진 경춘선 무궁화호가 전시된 김유정 폐역과 김유정 문학촌이 자리잡고 있어 둘러볼 만하다. 사라진 경춘선 철로를 이용한 레일바이크는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김유정역을 출발하면 북한강을 따라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동화의 나라 남이섬
의암호를 지난 북한강은 춘천시의 작은 반달섬, 나미나라공화국(나미섬)에 닿는다. 입장권 대신 입국 비자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섬 둘레가 3㎞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은 홍수가 나면 섬처럼 고립됐으나 청평댐이 생기면서 아예 섬이 돼버렸다. 1960년대에 한 개인이 하중도란 섬을 사들여 나무를 심고 섬을 가꿔 휴양지로 개발했는데 2000년 이름을 남이섬으로 바꿨다.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내다 역적으로 몰려 28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남이장군의 묘가 이곳에 있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나루터는 경기 가평에 있다. 선착장을 나와 400m에 이르는 잣나무 숲길로 들어서면 동화의 나라가 시작된다.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다양한 조각품과 아이디어가 충만한 건물들이 놓여 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곧게 자란 길에서 다정한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중년 부부도 함께 자전거를 타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은행나무가 줄지어 선 가로수 길엔 노년 부부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사색을 즐긴다. 이 섬은 공원이자 숲속이다. “따르르륵, 따르르륵”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려오는 남이섬에서는 이른 아침의 한가로움이 마음을 더욱 평화롭게 한다.

박동철
<여행이 즐거워지는 사진찍기> <대한민국 주말가족여행> <사진의 구도 구성> <슬로시티 걷기여행> <신께서 허락한 나만의 별> <베트남 사진여행> <가볼까 두근두근 문화유산 여행> 등 40년을 넘긴 작품 활동을 통해 많은 책을 집필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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