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문제는 비핵화 문제와 연결돼 있다 국제사회 담론 우리가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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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국제사회의 오랜 숙제 중 하나는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이다. 4월 4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는데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21년간 연속으로 채택된 것이다.
국제사회에 비하면 북한인권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그동안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2006년 북조선인권법이 제정·공포됐다. 한국에서는 2016년이 돼서야 북한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마저도 잘 이행되지 않았다.
북한인권법 제10조에는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는 등 북한인권법에 따른 실질적인 활동을 할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재단은 설립되지 못했다. 북한인권법 제9조에 명시된 바도 마찬가지다. 법에서는 정부가 북한인권 증진을 위해 국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외교부에 북한인권대외직명대사(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둘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법 공포 직후인 2016년부터 1년간 이정훈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대사직을 맡은 것을 제외하면 이 자리는 5년간 비어 있었다.
5년 만의 공백을 메운 것은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대사직을 맡고 나서의 일이다. 이신화 교수의 임명은 북한인권에 대한 정부 태도의 변화를 상징한다. 실제로 3월 31일에는 ‘2023 북한인권보고서’가 공개됐다. 북한인권보고서는 북한인권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2017년부터 제작돼왔지만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보고서를 처음으로 공개·발간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제라도 북한인권법이 실제로 이행돼야 할 것”이라며 “이번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북한인권의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가르쳐야 한다”고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 대사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간 비정부기구(NGO) 중심으로 제기돼온 북한인권 문제를 정부 차원으로 국제적 수준에 맞게 끌어올리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사는 “이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누가 담론을 선점하느냐의 문제로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청년세대는 특히 왜 우리가 북한인권을 얘기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왜 우리는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북한인권 문제는 결국 보편적인 관점에서 누가 국제사회의 담론을 이끌어나가느냐의 문제다. 우리가 시리아 난민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프리카 아동의 굶주림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국제사회는 북한의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상당히 크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4년에 북한인권법이 제정됐다. 유럽연합(EU)에서도 북한인권은 언제나 국제적인 문제가 된다. 그런데 북한의 문제는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의 문제다. 이를테면 북한에는 이산가족과 그 후손들이 살아 있다. 우리 국민의 가족 문제가 바로 북한의 인권 문제다. 보편적 관점에서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개선돼야 하는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끌고 나가지 않으면 누가 끌고 갈까?
북한에 대한 정보가 극히 부족한 상태에서 유효한 활동을 할 수 있나? 실질적으로 북한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기소했다고 해서 푸틴 대통령이 처벌을 받을 것이라거나 전쟁을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기소를 하는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북한인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당장 북한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에는 분명한 압박이 된다. 예방효과가 있다. 결의안이나 보고서 등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나 인권이라는 단어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 등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accountability)’의 차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5년이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나치의 전쟁범죄에 대한 과거청산이 이뤄지고 있다. 모두 기록 덕분이다. 북한인권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다. 지금 당장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책임을 묻기 위해 우리는 기록해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를 말하는 것이 북한을 자극해 대북관계를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서 지난 5년간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를 모른 척했다. 그런데 대북관계는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북한은 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고 북한의 인권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인권문제는 추후에 다루자는 의견도 있다.
북한은 지난 한해 미사일을 71발 쐈다. 통일부에 따르면 100만 톤가량의 쌀을 살 수 있는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북한인권을 개선하자는 이야기는 곧 북한의 무력 강화에 쓸 돈을 주민들에게 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북한인권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별도로 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이런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로서 만나는 사람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하나는 NGO다. 정부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던 때에도 북한인권 문제를 기록하고 개선을 촉구하며 인식을 확산시키려고 노력한 활동가가 많다. 이 활동가들과 정부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해 정보의 양을 늘리고 질을 개선하도록 돕는다. 더 중요한 일은 국제기구,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일이다.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북한인권 문제는 중요한 이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지면 때로 뒤로 밀리곤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당사자로서 여러모로 우리는 북한인권 담론을 이끌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나?
3월에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열린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의 상호대화’ 등에 참석했다. 이때 열린 게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설립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 10주년 행사다. 4월에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브루킹스연구소 등 미국의 양대 싱크탱크에서 COI 설립 1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다. 세계적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다른 나라 청년에게도 북한인권 문제를 알리고 있나?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래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국제협력을 기획 중이다. 4월 24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리는 콘퍼런스에도 이런 고민이 들어가 있다. 청년활동가 오찬(Youth Outreach Luncheon) 프로그램이 있는데 메인행사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다. 청년들에게 북한인권 문제를 환기시키고 문제 해결에 참여시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콘퍼런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세계적 석학인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 등이 참석하는데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개최된다. 보편적 관점에서 북한인권, 지역안보 관점에서 북한인권이다.
지역안보 차원에서 북한인권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나?
우리는 지금껏 군사안보 차원에서만 지역안보를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확장된 관점에서 안보협력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때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북한에 압박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인권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미국이다. 군사안보 차원에서의 미·중 간의 경쟁이 인권담론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인권담론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인권실태를 파악하고 개선을 요구하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최근 알권리와 정보접근권 같은 기본권 유린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2020년에는 북한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라는 게 제정됐다. 2021년에는 청소년교양보호법, 2023년에는 평양언어보호법이 나왔다. 이 ‘3대 악법’의 요지는 주민의 눈과 귀, 입을 막는 것이다. 평양언어보호법에 따르면 남한 식으로 ‘오빠’라고 부르는 등의 말이 금지된다. 남한의 대중문화를 접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맞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더 있다. 탈북자 인권의 문제, 그리고 우리 국민의 인권침해 문제다. 특히 국군포로나 납북자의 인권문제는 지금껏 ‘별도’로 언급돼왔다. 이제는 매우 심각하게 적극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인권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우선은 정부의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북한인권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이행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에도 신호를 줄 수 있다. 그간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로서 세계 곳곳의 정치인을 만났다. 나토(NATO), EU, 미국, 영국, 일본 심지어는 노르웨이와 체코의 국회의원도 북한인권 문제를 염려하며 방문했다. 한국의 정치인만 못 만났다. 북한인권 문제가 정치와 관련돼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결코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안보의 문제고 윤리의 문제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직명대사로 무보수 명예직이다. 이를 수락한 이유가 있었나?
개인적으로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몇 가지 계기가 있다. 그중 하나가 미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있을 때 스웨덴에 가 아프리카의 분쟁 상황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었다. 미국 대학의 연구원으로 유럽에 가서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쉬는 시간, 발표가 끝나고 난 뒤에 쏟아진 질문의 상당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 느낀 것이 ‘학자로서 나는 결코 북한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북한과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무보수 명예직이기 때문에 대사직을 수락했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인권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NGO와 정부, 국제사회를 잇는 연결고리다.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NGO·정부·국제사회·학교를 오가며 활동할 계획이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북한인권 관련 주요 국제기구
유엔 인권이사회(UNHRC)
유엔 인권위원회(UNCHR)를 개편, 발전시켜 2006년 설립된 기관이다. 유엔 가입국의 인권실태를 파악하고 국제사회의 인권을 개선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매년 3회 이상 회의가 열리며 3년 임기를 갖는 47개 이사국으로 구성돼 있다. 대한민국은 2006~2008년, 2009~2011년, 2013~2015년, 2016~2018년, 2020~2022년 이사국으로 선출됐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에 따라 설치된 조직으로 유엔 차원에서 북한인권 침해에 대해 체계적이고 면밀하게 조사하고 기록하기 위해 세워졌다. 2014년 최종보고서를 내고 지속적으로 인권실태를 파악하며 기록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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