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여행 버킷리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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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도, 외도 보타니아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카페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수를 상의하기 위해 퇴근 후 만나기로 한 것이다. 가족과 같은 집에 머무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기대감에 들뜨기도 한 날들이었다. 유난히 엄마와 친했던 나는 결혼을 하면서도 엄마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매일 엄마와 아웅다웅 말다툼하는 언니, 무뚝뚝한 아빠 사이에 내가 없으면 엄마가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그날 우연히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두 여성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성공하면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원하는 호강은 무엇일까?’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가 경찰이셨잖아.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아셨기 때문에 절대 여행을 보내주지 않으셨지. 심지어 수학여행 때는 삼촌들을 둘이나 딸려 보냈지 뭐니? 얼마나 창피했던지….”
결혼 후에도 엄마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늘 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엄마에게 첫 번째 호강을 시켜드리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바다와 해산물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아름다운 섬 경남 거제도행 버스 티켓을 예약했다.
엄마와 딸의 여행, 바람의 언덕에서 신선대까지
봄바람이 은은하게 불어오는 거제도에서 처음으로 찾은 장소는 바람의 언덕이다. 거제도의 남부 도장포마을에 도착하면 붉은 풍차가 세워진 언덕이 보인다. 시원하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바람의 언덕은 여러 드라마의 배경이 된 이후 유명해졌다. 거제도만의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
해안가 마을인 도장포마을에 들어서면 관광지 특유의 번잡함과 바다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의 삶이 담긴 골목이 오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파도가 잔잔해서 예로부터 대한해협을 지나가는 배들이 쉬어가는 장소였다. 도장포라는 이름도 일본 도자기 무역을 하던 원나라 배의 창고가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바람의 언덕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신선대로 자리를 옮겼다. 신선들이 내려와 풍류를 즐겼다고 할 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난 장소다. 해안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진짜 신선들이 만들었나 싶을 만큼 아름다운 장소에 도착했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 옆으로 웅장한 모습을 뽐내는 기암괴석 위엔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하게 서 있었다. 신선대를 배경으로 준비해간 삼각대를 세워놓고 엄마와 친구처럼 사진을 찍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다음날은 거제도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해금강과 외도 보타니아로 떠났다. 엄마에게 “나만 믿고 따라오시라”할 만큼 모든 여행 계획을 꼼꼼히 짜왔다. 해금강을 관광하며 외도 보타니아에 내리는 유람선 투어가 있어서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은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조각 같았다. 유람선을 타고 둘러본 자연 십자동굴과 사자바위의 장관은 경이로웠다.
거제 여행의 하이라이트, 해금강과 외도 보타니아
외도 보타니아는 거제도에 있는 60여 개의 섬 중 하나로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난하며 강우량이 많아 난대 및 열대성 식물이 자라기 쉬운 환경을 지녔다. 이곳에서는 거제도, 해금강, 홍도, 대마도까지 관망할 수 있다. 외도는 1969년부터 이창호·최호숙 씨 부부가 모든 열정을 쏟아 45년간 쉬지 않고 가꿔낸 섬이다. 그야말로 그들의 인생이 녹아 있는 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은 곧 자연 파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섬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섬에 내려 두 시간여 동안 산책을 하며 “아름답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지중해의 한 해변을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인 모습부터 유럽풍 양식의 화려한 정원까지 곳곳이 숨은 보석 같았다. 엄마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분홍빛 원피스를 입었다. 소녀처럼 설레는 미소를 짓는 엄마를 보며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제도 여행에서 엄마의 마지막 호강은 패러글라이딩이었다. 여행 다음 주가 엄마 생신이었다. 예전에 엄마가 “더 나이들기 전에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고 지나가듯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마침 거제도에 막힘없이 펼쳐진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 액티비티가 있었다. 엄마 몰래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거제 계룡산에 올라갔다. 깜짝 생일 선물이었다.
엄마는 영화 <탑건>의 파일럿처럼 비행 슈트를 챙겨 입고 선글라스까지 썼다.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웬걸,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 한 마리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낙하산은 엄마의 인생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행복한 비행을 마치고 땅으로 돌아온 엄마를 꼬옥 안았다. 여행지 영상을 수없이 찍었지만 엄마가 주인공인 영상은 처음이었다. 인터뷰를 하듯 “여기에 오니 어떠신가요?”하고 질문을 던지자 엄마는 “딸과 이렇게 예쁜 곳에 와서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다 말을 멈췄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엄마의 버킷리스트 같이 해보기
덤덤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는 엄마가 눈물 흘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감정표현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엄마의 호강은 큰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 엄마가 어려워하는 기계의 작동법을 짜증 내지 않고 잘 알려주는 것, 함께 여행하는 것, 가끔 어리광을 부리는 것 등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딸들이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 1위가 ‘나 때문에 참지 마. 가족에게 너무 희생하지 마’라고 한다. 나도 가정을 이루고 나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항상 엄마가 가장 행복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여행 가고 싶어 하는 엄마를 위해 사랑은 아끼지 말고, 용돈은 틈틈이 모아야겠다.
조유리 작가
여행작가이자 인스타그램(@curryuri) 팔로워 19만 8000명을 보유한 인스타 셀럽.
남편인 코미디언 김재우와 함께 ‘카레부부’로 불린다.
저서로 <카레부부의 주말여행 버킷리스트>(2021)가 있다.
박스기사
함께 가면 좋은 곳
거제 파노라마 케이블카 전망대
거제시 노자산에 위치한 거제 파노라마 전망대는 아름다운 거제의 산과 노을, 숲과 바다를 경계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학동고개에서 노자산 정상을 연결하는 1.56㎞ 구간을 케이블카로 오르며 상부 전망에서 노자산과 다도해 전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접할 수 있다.
주소 경남 거제시 동부면 거제중앙로 288
가격 3~4월 일반 캐빈 (왕복) 1만 700~1만 3700원
옥화마을(벽화마을) 해변데크 산책로
미술을 전공한 이장님이 벽화를 그리면서 점점 유명해진 옥화마을은 알록달록 무지갯빛으로 꾸며진 해안도로를 따라 시작된다. 바다를 모티브로 한 벽화들부터 ‘사랑의 나무’로 불리는 연리목까지 걷다 보면 평화로운 옥화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해안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주소 경남 거제시 일운면 옥림4길 11
구조라성과 샛바람소리길
조선시대에 축조된 구조라성은 1998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방의 보루로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내는 모두 논과 밭이며 가운데 우물이 있다. 성문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 있으며 성 아래쪽에 구조라마을이 있다. 구조라마을에서 성곽으로 오르는 길을 샛바람소리길이라고 하는데 거제가 지닌 특유의 감각적이고 독특한 마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주소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산55
학동 흑진주 몽돌해수욕장
흑진주 같은 검은 몽돌로 이뤄졌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몽돌해변에 앉아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몽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해안가를 따라 동백림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팔색조 번식지로도 유명하다.
주소 경남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 몽돌해수욕장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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