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난방비 구원투수 히트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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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가스비가 급등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냉난방 장치의 대안으로 히트펌프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2030년까지 모든 주가 최소 1200만 개의 히트펌프를 설치할 계획이고 영국은 2028년까지 60만 개의 히트펌프 교체지원 사업을 벌인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도 3월 13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냉난방공조전시회 ‘ISH 2023’에서 고효율의 히트펌프 신제품을 공개했다. 히트펌프는 어떤 원리와 열원으로 구동되는 것일까?
2021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부터 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 보일러 판매를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는 2025년부터 모든 신축 건물에 오일·가스보일러 설치를 금지한다. 덴마크와 오스트리아는 이미 판매를 금지했고 독일은 2024년부터 100% 가스보일러 판매를 중단한다.
미국 또한 여러 도시와 주에서 신축 건물에 가스 연결을 금지하거나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뉴욕시는 2023년 말부터 7층 이하 신축 건물에, 그 이상 고층 건물은 2027년부터 가스보일러와 조리기구를 설치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일대 광역 대도시권도 2027년부터 가스 난방과 온수기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한다.
세계가 가스 사용을 금지하려는 이유는 탄소중립을 위해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에너지 가격 폭등과 50년 후엔 거의 바닥날 화석연료 때문이다. IEA는 화석연료 보일러를 대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에너지 절약 기기로 히트펌프를 지목해왔다.
히트펌프는 외부 열을 이용해 내부 공기를 따뜻하게 또는 차갑게 만들어주는 전천후 냉난방 장치다. 냉매의 발열 또는 응축열을 이용해 마치 펌프처럼 저온의 열원을 고온으로 끌어올려 난방을 한다. ‘히트펌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히트펌프는 이 흐름을 거꾸로 구동한다. 물론 고온의 열원을 저온으로도 전달할 수 있어 냉방 장치로도 쓰인다.
히트펌프 대체 땐 전력 소모 3분의 1로 줄어
히트펌프의 원리는 기존 일반 보일러 방식과 같다. 다만 열원을 가스·석유가 아닌 지열, 물, 공기 속의 열을 실내로 끌어들여 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압축기와 증발기, 응축기, 팽창 밸브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사용한 에너지의 2.5~5배에 달하는 열을 생산해낸다. 따라서 열효율이 높다는 게 히트펌프의 장점이다. 열교환기를 통해 공기열이나 지열, 수열 등을 저장하고 지속적인 사이클 과정을 통해 열을 펌핑하기 때문에 굳이 고온의 에너지가 필요 없다. 그만큼 전기를 훨씬 적게 쓴다는 얘기다. 기존의 전기 난방기기를 히트펌프로 대체할 경우 전력 소모를 3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히트펌프는 구동 방식에 따라 공기열, 지열, 수열 세 종류로 나뉜다. 그중 공기열을 이용한 히트펌프가 가장 경제적이고 구동하기 쉬운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는 공기 열원을 신재생에너지로 간주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어 기후변화 대응책으로도 주목받는다.
보통 세계시장에 나온 공기열 히트펌프는 ‘공기 대 공기 방식’인 공간 난방(따뜻한 공기 방출)이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은 우리 주거생활에 맞도록 바닥 난방까지 가능한 ‘공기 대 물 방식’의 시스템(엑서지21)을 개발했다. 연평균 15℃의 공기에 숨은 열(잠열)을 이용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을 만들어 난방에,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만들어 냉방에 이용한다.
2005년 삼성보라매옴니타워(서울 신대방동)에 설치된 엑서지21은 대표적인 대용량 공기 히트펌프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동주택 바닥 난방을 공기 히트펌프로 해결한 사례로, 시스템 한 대에 60킬로와트(㎾)의 전력을 사용해 180㎾의 열을 생산한다. 중앙집중식 난방과 60℃의 급탕을 24시간 연속 공급하면서 기존 가스 보일러에 비해 45%의 난방비 절감 효과도 이뤘다. 현재 주상복합건물, 골프장, 대형마트,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등에도 설치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도 공기열 히트펌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ISH 2023’에서 삼성전자는 ‘EHS 모노 R290’, LG전자는 ‘써마브이 R290 모노블럭’이라는 새 공기열 히트펌프를 공개했다. 두 제품은 기존 히트펌프에 친환경 자연냉매 ‘R290’을 적용했다. R290은 오존층 파괴지수(ODP)가 0, 지구온난화지수(GWP)는 3에 불과해 기존 R32 냉매보다 환경 친화적이다.
히트펌프 활성화로 냉난방 해결과 탄소중립 실천
한편 정부세종청사, 서울시청 신청사 등에는 지열 히트펌프가 설치돼 있다. 20메가와트(㎿) 이상의 규모로 단일 시설로는 최대 수준이다. 지열 히트펌프 시스템은 300m 이내 15~20℃ 범위의 땅속에 열교환기를 설치하고, 히트펌프를 이용해 지구 내부의 마그마 열에 의해 보유하고 있는 지열(지하수, 지표수 포함)을 흡수하는 구조다. 땅을 깊게 파지 않아도 돼 지리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물론 히트펌프에도 단점이 있다. 일단 초기 투자비가 크다. 가스보일러 설치는 100만 원 내외지만 히트펌프는 용량에 따라 대당 몇 백만 원부터 몇 천만 원 수준이다. 또 실외기가 커서 히트펌프를 설치하려면 가스보일러보다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히트펌프가 주로 상업용, 사무실, 학교, 공공기관, 전원주택 등에 쓰이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는 유럽에서는 공간이 넉넉해 히트펌프를 설치하기가 쉽다. 하지만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많은 우리나라는 중앙집중식 난방에는 설치가 가능하지만 개인 난방인 경우 설치 공간 마련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탄소중립 등 기후변화 문제로 세계의 히트펌프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8번째로 전력 소비가 많은 나라다. 하지만 사용 전력 중 2%만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유럽처럼 에너지 전환을 위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지정하면 어떨까? 기업들 또한 국내 여건에 맞는 가정용 히트펌프 기술을 추가적으로 개발해 시장의 보급률을 높이면 어떨까?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탈탄소 시스템에 적극 대응해나간다면 새로운 재생에너지로 냉난방을 해결하는 일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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