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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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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당시 만나던 친구와 집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핫도그가 먹고 싶어졌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한국식 핫도그가 아닌 기다란 빵 사이에 소시지를 끼워 케첩과 머스터드소스를 뿌린 미국식 핫도그가. 당시 나는 대학가에 살고 있었고 핫도그 가게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으나 문제는 날씨였다. 각종 뉴스에서는 며칠 전부터 어마어마한 태풍이 최고 속도로 국내에 상륙 중이라며 그 위력을 경고했고 그날은 태풍이 수도권을 지나는 결전의 날이었다. 혹시 비가 잦아들지는 않았나 하여 창문을 열어봤으나 하늘에서는 비가 와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은 틀렸다며 창문을 닫으니 그가 말했다.
“핫도그 먹으러 다녀오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에게 진심이냐고 물었다. 그는 반달눈을 하고 진심이라며 거듭되는 질문에 몇 번이고 답했다. 나는 방에 들어가 남색 반바지와 진빨강 티로 갈아입었다. 그렇게 준비를 단단히 한 후 우리는 집에 있는 가장 큰 우산을 하나만 들고 문을 나섰다.
호기롭게 1층으로 내려갔건만 우리는 눈앞의 풍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땅에서 튀어 오르는 빗물 때문에 세상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소리였다. “비 진짜 많이 온다”라는 말이 서로에게 들리려면 바짝 붙어 귓속말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앞에 펼쳐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서로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처마 밖으로 다리를 내디뎠다.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도 한 발짝 만에 무릎이 흠뻑 젖었다.
그와 나는 물웅덩이가 깊지 않은 지면을 찾아 삐뚤빼뚤 걸었다. 하지만 그것은 발가락만 잠기느냐 발등까지 잠기느냐의 문제였다. 우리는 옆구리를 찰싹 붙인 채 이 웅덩이에서 저 웅덩이로 철퍽철퍽 옮겨 다니느라 더 흠뻑 젖었고 예상치 못하게 빗물을 맞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심지어 횡단보도는 얕은 개울이 된 상태였는데 우리는 이 광경을 보자마자 이젠 진짜 망했다며 깔깔 웃었다. 술집과 밥집으로 가득한 토요일의 번화가에는 그와 나뿐이었다.
그렇게 발목까지 오는 물을 헤치며 가게에 도착했건만 우리는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와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 세탁기에서 갓 꺼낸 꼴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어서 오시라는 주인에게 저희가 완전히 젖었는데 가게에서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고 주인은 기꺼이 우리를 받아주었다. 우리는 10분 전의 호기를 잔뜩 부끄러워하며 빨간 비닐 소파에 앉았다. 그제야 몸 이곳저곳을 보니 팔에까지 나뭇 조각과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와 나는 냅킨으로 팔다리를 대강 닦고 핫도그를 시킨 후 셀피를 찍었다.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었던지라 사진을 보며 또 깔깔 웃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풍은 비만 쏟아낸 후 떠나버렸고 어느덧 하늘은 개어 있었다. 사람이 없는 정류장에서 그가 내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오늘 핫도그 먹으러 간 거 진짜 재밌었지?”
우리는 키스하고 헤어졌다.

김은경 출판 기획 에디터 겸 작가_ 12년 차 에디터. 를 썼다. 2022년에는 ‘성장’과 ‘실행’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볼 예정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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