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노래 함께 부르며 우리가 하나라고 느꼈어요”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UAE에서 살며 본 K-콘텐츠의 힘
“오늘 진짜 최고의 공연이었어요. 다 같이 노래 부를 때 우리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2023년 1월 29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걸그룹 ‘블랙핑크’의 월드투어를 관람한 현지인 한류팬 루자인 씨(28)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직 공연의 설렘이 가시지 않은 듯 “오랫동안 공연을 기다렸는데 표가 금방 매진돼서 혹시나 친구들과 같이 못올까봐 걱정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아부다비의 블랙핑크 콘서트는 K-팝 그룹 현지 팬들에게 오래전부터 큰 기대를 모은 행사였다. 콘서트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야외 공연장 ‘에티하드파크’에서 열렸다. 이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수만 명의 팬이 UAE와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표는 진즉 매진됐고 일부에서는 암암리에 비싼 웃돈이 덧붙어져 거래되기도 했다.
현지 매체들도 이번 블랙핑크 공연을 주목했고 앞다퉈 기사로 내보냈다. UAE 언론 매체인 <러빙 두바이>는 “K-팝 팬덤은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라며 “에티하드 파크의 문이 열리자마자 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UAE 매체인 <더 내셔널>은 “비록 오후 6시에 게이트가 열렸지만 몇몇 팬들은 행사장에서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줄을 섰다”며 후끈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K-컬처가 UAE를 강타하면서 한국에 대한 UAE 사람들의 호감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지속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K-컬처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현재 UAE 두바이에서 항공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는 필자는 이와 같은 인기(?)를 자주 경험한다. 비행 갈 때마다 승무원을 비롯한 스태프가 최근 본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고는 한다.
“추천할 만한 한국 영화 있나요?” “박해수 연기 너무 잘해요.” “한국에서 송강 같은 남자 만나고 싶어요” 등의 질문도 줄줄이 이어진다. 하도 같은 질문을 받다보니 이제는 모범답안이 생길 정도다. “미안, 한국에 와도 송강 같은 남자는 없어.”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두바이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와 친구 커플 셋이서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오손도손 일상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 테이블을 한 무리의 여성들이 에워싸는 것이 느껴졌다. 아랍식 전통복장인 히잡을 쓴 4명의 젊은 현지인 여성들이었다. 그중 한 여성이 “OPPA(오빠) 소리 한 번 다시 할 수 있어요?”라고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나누던 대화 중 ‘오빠’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알고 보니 K-드라마를 즐겨보던 아랍 소녀팬들이었다. 평소 즐겨보던 한국 드라마에서 그토록 듣던 ‘오빠’라는 단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니 너무 신기했다나 뭐라나. 한국어를 독학하고 있는데 우리 일행이 이런저런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공부한 한국어도 써먹을 겸 말을 걸어봤다고 한다. 이날 같이 동행했던 친구의 부인은 원어민 목소리로 ‘오빠’라는 단어를 그들 앞에서 열 번 이상 반복해야 했다.
‘K-드라마’는 이러한 K-컬처의 가장 큰 돌격대장이다. UAE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 상위 순위를 몇 년째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 <사랑의 불시착>으로 시작해 세계를 휩쓴 <오징어게임>, 그리고 최근 <더 글로리>까지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현지 유튜브 계정 등을 보면 한국 드라마를 다룬 채널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K-콘텐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현지 아랍 유튜버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들의 관심사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최근 집 계약 때문에 UAE 현지 은행에 갈 일이 있었다. 은행 창구 여직원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갑자기 “송중기 재혼 소식에 깜짝 놀랐다”며 “그가 나온 모든 드라마를 봤다”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레바논에서 두바이로 이주했다는 그 여직원은 “사실 내 세대는 현빈을 제일 좋아한다. 송중기는 나보다 조금 밑 세대들이 좋아하는 한국 배우”라며 세대별 취향(?)을 전해주기도 했다. “한국에 한 번 꼭 놀러오길 바란다”고 필자가 덕담을 건넸더니 “안그래도 가려고 계획 중이다. 2023년 아니면 2024년에 가족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랙핑크의 최근 UAE 콘서트처럼 K-팝, 즉 한국 대중음악도 큰 히트를 치고 있다. 중동에서 K-팝 콘서트는 이제 흔한 광경이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현지 팬들이 줄을 선다. 보이그룹 엑소(EXO)의 음악이 세계 3대 분수쇼 중 하나인 두바이몰 분수쇼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한 예다.
K-푸드 역시 인기다. UAE 전역에 한국 음식점이 생겨나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간장소스가 짭조름하게 들어간 코리안 바비큐(Korean BBQ)는 ‘돈이 없어 못 먹는’ 최고 메뉴로 자리잡았다. 김치도 몸에 좋다는 것을 안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UAE에서 한국 식재료를 취급하는 이른바 K-마트들도 외국인 손님들의 연이은 방문에 덩달아 매출이 올랐다.
K-드라마, K-팝, K-푸드로 시작된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어와 한국 전통문화까지 퍼져나가고 어느새 한글을 배우고 한국 관련 유튜브 영상을 탐독한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사람을 좋아하게 돼 우리에게는 든든한 아군인 ‘친한파’가 돼간다. 총칼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는 문화의 힘이다.
이와 같은 ‘K’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주위 현지인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재미있어서”였다. 그들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현실적이고 무언가 있을 법하고 스토리도 치밀하고 배우들 감정선도 명확해서 좋다고 한다. 특히 서구 영화에 비해 덜 선정적이고 남녀 간 로맨스도 서서히 발전해나가면서 같이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이야기에 공감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랍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다. 가족 간 사랑을 중시하고 장유유서 같은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씨족사회가 중심이 되는 아랍의 전통은 의외로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도 점점 개방된다고는 하나 아직 서구에 비하면 보수적인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랍인들에게 K-컬처는 서구문화에 비해 심리적 저항감이 덜하다. 아랍사회에서 K-컬처가 큰 저항없이 받아들여지고 소비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딸을 가진 보수적인 무슬림 아빠들도 딸이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고 K-드라마를 보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딸과 함께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하다가 본인도 여기에 빠져서 밤을 새면서 ‘정주행’하는 경우도 여럿 목격했다. 다음 에피소드를 궁금하게 만드는 ‘악마의 편집’으로 무장한 K-드라마를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도저히 끝까지 안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생성됐던 팬층도 생각보다 견고했다. 2000년대 “K-컬처는 아시아에서만 통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전 세계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것이 아시아 아닌가. 뒤집어 말하면 아시아에서 통하면 세계인 열 명 중 일곱 명이 인정하는 콘텐츠란 소리다. 이미 동남아 국가와 중국, 일본 등에서 널리 사랑받으면서 그 잠재성을 오랫동안 인정받아왔다. 갑자기 뜬 게 아니라는 것이다.
두바이와 아부다비 같은 국제도시가 포진해 있는 UAE는 중동의 허브이자 아랍에서 가장 큰 영향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유행하는 대중문화는 같은 걸프존에 위치한 인근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주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필자가 거주하는 두바이의 경우 전 인구의 90%가 외지인이다. 세계에서 몰려온 가지각색 문화가 각자의 무기를 갖고 무한 서바이벌을 해서 강한 자만 살아남는 곳이다. 재미가 없거나 특색 없는 문화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곳에서 K-컬처가 살아남아 하나의 메인스트림(주류)이 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성과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다.
현재 ‘K’ 열풍은 한국 연예인·영화·드라마 등 민간이 주도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UAE 국빈 방문에서 300억 달러 투자유치란 쾌거를 이루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문화체육관광부가 UAE 문화청소년부와 연계해 ‘제2의 중동 붐 태스크포스(TF)’를 만든 것은 그 열기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류를 음악이나 영상미디어 같은 대중문화 영역에 한정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첨단산업 영역까지 확장해야 할 것이다.
원요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UAE 통신원/ 파일럿)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