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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역사 품고 美 국가사적지 된 대한제국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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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이 1882년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조미조약·朝美條約)이다. 고종은 1888년 초대 주미외교관으로 박정양 주미특명전권공사를 워싱턴 D.C.에 파견했다. 1889년에는 백악관에서 1.6㎞ 거리에 있는 로건서클의 건물을 매입해 주미조선공사관으로 사용했다. 첫 재외 외교공관으로 현재는 워싱턴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싼 지역 중 하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할 때까지 16년 9개월간 다섯 명의 공사가 이곳을 지켰다. 결국 이 건물은 1910년 일본에 단돈 5달러에 강제로 빼앗겼다.
2012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을 중심으로 재미한인들의 모금과 국내 기업,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힘을 모아 350만 달러에 다시 사들여 소유권을 되찾았다. 복원 및 보수를 거쳐 2018년 ‘옛 대한제국공사관 박물관(Old Korean Legation Museum)’으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박물관 1층 정당(正堂)에는 한 장의 가족사진이 전시돼 있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제2차 만국평화회의 특사인 이위종(1884~?)이 아버지 이범진과 어머니 풍양 조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범진은 1896년부터 1900년까지 주미공사를 지냈고 이후 주러시아공사를 지냈다. 1910년 대한제국이 국치를 당하자 귀국을 포기하고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범진은 고종황제와 후손에 남긴 유서에 ‘나라를 잃은 자는 머물 곳도 없고 편히 쉴 땅도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적었다.
19세기 워싱턴 D.C.에는 32개 외국 공사관이 있었다. 그중 현존하는 건물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유일하다. 컬럼비아 특별구 사적지 목록에 포함돼 있으며 올해 9월에 미국의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공식 등재됐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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