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거대한 물결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파도 타고 앞으로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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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공지능(AI)위원회 염재호 부위원장
서울 종로구 태재대학교 총장실에서 만난 염재호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 부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국가AI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국가 AI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위해 9월 26일 출범했다. 태재대는 2023년 문을 연 미래형 교육기관이다.
대학 총장에 대통령 직속 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묵직한 직책인 만큼 진중하고 딱딱한 인터뷰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염 부위원장은 ‘행복’, ‘다양성’, ‘문화’, ‘미래’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염 부위원장은 “AI 시대를 맞는 지금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결국 우리 사회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낯설게 느끼면 미래를 온전히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
AI를 친숙하게 여기고 일상화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염 부위원장은 이 같은 자세를 두고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파도를 뚫고 나아가려 하지 말자”고 표현했다. 염 부위원장 본인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 중 하나는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며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주어진 자리에서 파도를 타며 최선을 다해 살다보니 어느덧 머리가 세었다”고 말했다.
염 부위원장은 “국가AI위원회를 이끌고 가는 부위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리면서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해 대전환할 수 있도록 문화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시간을 쪼개어 사는 염 부위원장과 국가AI위원회 설립의 의의와 역할, AI 시대를 맞는 자세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눠봤다.
2024년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들 중에는 AI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부정적 전망을 하는 이들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는 AI에 대한 세계적 기대가 과장됐다고 지적한 반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간을 장악할 수 있는 ‘초지능’을 경고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비관론 혹은 부정적 전망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도 모두 AI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AI 시대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것이다. 이런 변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됐을 때로 돌아가보자. 말을 끄는 마부들은 일자리를 잃는다고 두려워했고 사람들은 자동차를 거대한 괴물로 취급했다. 그러나 현명한 인류는 자동차에 브레이크를 달아 속도를 조절하게 했고 마부들은 운전기사가 됐다. AI 시대가 온다는 것도 이와 같다. AI 기술은 계속해 발전할 것이다. 마치 자동차가 계속해 진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AI의 발전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에단 몰릭 교수의 ‘Co-intelligence(공동 지능)’인데 ‘공진화’라는 개념이 나온다. AI와 지성이 함께 발전한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로 우리는 스마트폰을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면서부터 전화번호를 외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대신 스마트폰 ‘주소록’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인간에게 전화번호를 더 많이 외우게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전화번호를 활용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의 지능은 상당 부분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AI를 활용하고 고도화하는 방법으로 우리 역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AI 시대에 살아남게 될까?
‘살아남는다’는 개념은 20세기의 사고방식이다.
어떤 의미인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경쟁한다는 것인데 ‘경쟁’은 산업화 사회의 개념이다. AI 시대에서는 아마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이 바뀔 것이다. 근무시간을 예로 들면 1940년대 미국인은 주 70시간 일했다. 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앞으로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AI가 일을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대신 인간은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 된다. 놀이하는 인간은 경쟁하지 않을 것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노벨 화학상을 탄 데미스 허사비스의 업적은 AI로 인류가 끙끙 연구하던 단백질 구조를 순식간에 알아낸 것이다.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던 작업들은 AI가 가져간다. 집약적이고 반복적인 노동에서 벗어난 인간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삶의 유형이 매우 다양해질 것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인간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나. 선진국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남태평양에서 배를 띄워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미래 AI 시대에 인간은 더 행복해질까?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하는 나’보다 ‘나답게 사는 나’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될 것이다. 모두가 인재가 될 필요가 없다. 아마 30년 후에는 우리가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며 왜 저렇게 살았을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상상해보자. 마음대로 읽고 마음대로 운동하고 마음대로 능력을 펼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정유정 작가가 말한 대로 행복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면 아마 미래는 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낙관하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누가 ‘인재’가 될까?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호기심을 갖고 창의력을 펼치고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다. 지식으로는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공감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끌고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변화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어와 ‘의대’에 집착하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태도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교육자는 ‘미래를 제시해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본다. 교육기관에서는 지(知)·덕(德)·체(體)를 가르친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교육자들은 ‘지’에만 집중한다. 이제는 ‘지’가 AI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교육자는 다른 관점을 가져야 한다.
교육자뿐 아니라 모두가 생각이나 관점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리 해야 할 것 같다.
바로 그것이 국가 정책을 수립하면서도 적용되는 얘기다. 우리는 AI 시대를 맞이하면서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불안해하고 ‘살아남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 경쟁력을 갖추는 데만 몰두한다. 물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AI를 잘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AI를 안정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투자를 충분히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나는 그보다 더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 30년 뒤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와 인식의 대전환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국가AI위원회를 출범하면서 발표한 ‘국가 AI 전략 정책방향’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해 글로벌 AI 중추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AI 인프라와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AI 컴퓨팅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AI 인프라를 가지고 고부가가치의 무엇을 생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법률·의료·교육·행정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AI를 활용하고 고도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생각을 버려야 한다. AI는 힘들다, AI는 무섭다. 그런 생각으로 대격변의 시기를 흘려보낸 적이 있다. 구한말 발전의 기회를 쇄국정책으로 놓친 것처럼. 이런 인식을 바꿔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간혹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는 것도 재고해봐야 한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언젠가는 도입될 문제다. 이걸 반대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 도입을 반대하는 마부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신 AI 디지털 교과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떤 교과서를 만들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그래도 미래기술에 대한 안전장치는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안전이나 규범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문제들도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저작권 문제를 NFT(대체불가능토큰) 등을 활용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가 얘기했다. 한국 사람들은 전부 창틀에 매달려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데 알고 보면 손을 놓아도 떨어지는 곳은 겨우 30㎝ 아래 바닥이라는 것이다. 30㎝ 아래 바닥이 두려워서 여기저기서 제동을 거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
국가AI위원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반드시 올 미래라면 우리는 앞장서서 가야 한다. 기술적으로 앞장서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모든 국민이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은 강화하고 잘하는 부분은 더욱 잘하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현재 우리 AI 국가 역량은 6위권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3위에서 6위까지는 별 차이가 없어서 조금만 노력하면 AI 3대 강국에 진입할 수 있다.
앞으로 4년간 민간과 정부가 65조 원을 투자해 AI 강국으로 도약할 것이다. 국가AI위원회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AI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들 예정이다. 위원회에는 5개 분과위원회와 3개의 특별위원회가 있는데 여기에서 분야별로 정책을 수립해오면 전체적인 조율을 하면서 빠진 부분을 채워나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큰 그림을, 방향을 잡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
국가 경쟁력 3대 게임체인저…민·관 역량 총결집
정부는 인공지능(AI)이 미래 국가기술 경쟁력의 3대 게임체인저라는 인식 아래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를 구성했다. 미국에는 대통령실 산하에 민·관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AI자문위원회가 설치돼 있고 영국에는 관계부처 장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문가가 협력하는 AI위원회가 있다. 우리 역시 국가AI위원회를 통해 범국가적 역량을 결집한다는 방침이다.
위원회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해 부위원장 1명과 45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됐다. AI 관련 주요 정책, 연구개발(R&D) 및 투자전략을 수립하고 국가 AI 정책 전반을 심의 및 조정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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