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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뛰어넘은 영웅들 메달보다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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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막바지 여름을 뜨겁게 달궜다. 2024 제17회 파리하계패럴림픽(이하 파리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도전에 한계는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냈다.
8월 29일(현지시간) 축포와 함께 시작한 파리패럴림픽은 9월 8일 폐회식까지 12일간의 열전을 이어갔다. 지체·지적장애 등이 있는 운동선수가 참가하는 국제 종합대회인 패럴림픽은 1960년 로마에서 시작해 60년이 넘는 역사를 쓰는 중이다. 현재까지 전 세계 4000여 명의 선수가 22개 종목(양궁, 육상, 배드민턴, 시각축구, 보치아, 카누, 사이클, 승마, 골볼, 유도, 역도, 조정, 사격, 수영, 탁구, 태권도, 트라이애슬론, 좌식배구, 휠체어농구, 휠체어펜싱, 휠체어럭비, 휠체어테니스)에서 경쟁을 펼쳤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17개 종목 177명(선수 83명, 임원 94명)으로 1988 서울패럴림픽 이후 역대 최다 인원이었다. 장애인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대한민국은 1988 서울 대회부터 2008 베이징 대회까지 6회 연속 패럴림픽에서 두 자릿수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2012 런던 대회 9개,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7개 금메달을 딴 뒤 직전 대회인 2020 도쿄 대회에선 금메달 2개에 그쳤다. 도쿄 대회 이후 유망주 발굴에 전념한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이번 대회를 위해 절차탁마했다. 그 열정과 땀은 12일 동안 메달과 상관없이 파리 곳곳에서 새로운 감동의 드라마를 써냈다.





탕! 탕! 패럴림픽도 사격서 메달 명중
사격은 2024 제33회 파리하계올림픽대회에 이어 패럴림픽에서도 효자 종목이었다. 우선 ‘사격 간판’ 박진호가 패럴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9월 2일 사격 R7 남자 50m 소총 3자세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에 올랐다.
50m 소총 3자세는 무릎쏴(슬사), 엎드려쏴(복사), 서서쏴(입사) 등 세 자세를 번갈아 취하며 50m 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히는 경기다. 박진호는 이날 본선에서 1200점 만점에 1179점(슬사 392점, 복사 394점, 입사 393점)을 쐈다. 파리패럴림픽 본선 신기록을 작성하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박진호는 낙상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됐다. 큰누나의 도움으로 장애인 사격 선수로의 인생 2막을 시작했다.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와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에서 각각 3개와 4개의 금메달을 따며 맹활약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에서 세르비아의 라슬로 슈란지가 세웠던 기존 패럴림픽 결선 기록(453.7점)을 갈아치웠으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에서는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절치부심한 그는 파리에서 생애 첫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더니 두 번째 금메달도 명중했다. 그리고 9월 5일 사격 R6 혼성 50m 소총 복사에서 3관왕까지 도전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도 사격에서 나왔다. 주인공은 조정두다. 조정두는 8월 29일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237.4점을 쏴 인도의 마니쉬 나르왈(234.9점)을 2.5점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는 군복무 중이던 2007년 뇌척수막염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후유증으로 척수장애인이 됐다. 7~8년을 집에서만 지내다 용기를 내 밖으로 나와 사격을 시작했다.







보치아 ‘10회 연속 금메달 획득’ 대업
한국 ‘보치아’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올림픽에 한국 양궁이 있다면 패럴림픽에는 한국 보치아가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탄생한 스포츠로 ‘땅 위의 컬링’이라고도 한다. 장애등급에 따라 막대기를 입에 물거나 머리에 매달고 공을 굴려 표적구 주변으로 공을 더 많이 모으면 이기는 경기다.
정호원은 9월 2일 남자 개인전 결승전에서 호주의 대니얼 미셸을 5대 2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이에 따라 한국 보치아는 1988 서울패럴림픽 때부터 ‘10회 연속 금메달 획득’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전 세계 보치아 대표팀 중 가장 많은 금메달 수다.
정호원 개인으로는 7번째 패럴림픽 메달(금 4개·은 2개·동 1개)이다. 다시 한 번 ‘보치아의 전설’임을 입증했다. 그는 생후 100일이 지났을 무렵 평상에 있다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뇌병변장애(뇌성마비)를 갖게 됐다.



두 팔 없이 센강 건넌 김황태, 트라이애슬론 완주
메달은 못 땄지만 그보다 더 값진 도전도 있었다. 김황태는 9월 1일 남자 트라이애슬론(스포츠등급 PTS3)에서 1시간 24분 01초 종합 10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팔이 없는 김황태는 PTS3 출전 선수 중 장애 정도가 가장 중하다.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750m, 사이클 20㎞, 육상 5㎞ 코스 합산 기록으로 최종 순위를 정한다. 그는 첫 종목인 수영에서 센강의 심한 유속과 싸우며 주로 배영으로 물살을 헤쳤다. 이를 악물고 헤엄쳤지만 24분 58초나 걸렸다. 1위 선수와는 13분 이상 차이가 났다. 수영으로 허벅지에 무리가 가면서 사이클과 육상에서도 기대에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왔다. 사이클은 35분 29초로 7위, 육상은 21분 19초로 5위였다. 그러나 그에겐 성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꿈에 그리던 패럴림픽 무대에서 완주를 해냈기 때문이다.
김황태는 2000년 8월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가 고압선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사고 후 1년 동안 절망에 빠져 살다가 운동에 도전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패럴림픽 출전의 꿈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김황태는 육상, 노르딕스키,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했다.
그러나 쉽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두 팔이 없는 선수가 경쟁할 수 있는 스포츠등급 종목도 많지 않았다. 김황태는 파리패럴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전향했다. 그는 트라이애슬론 결승선을 통과한 뒤 눈물을 흘리며 “(아내인) 김진희 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세 바퀴의 레이서’ 김용기와 ‘철의 여인’ 이도연
패럴림피언의 꿈을 이룬 김용기의 도전도 빛났다. 김용기는 9월 3일 도로사이클 남자 도로독주(타임 트라이얼) 스포츠등급 T1-2 경기에서 14.1㎞ 코스를 29분 41초 83의 기록으로 통과했다. 장애가 더 심한 T1등급으로 팩터(장애등급에 따른 시간 조정)를 받은 김용기는 최종 기록 25분 58초 03으로 12명 가운데 10위를 차지했다. 김용기는 몸을 가누기 힘든 선수들이 타는 트라이-사이클을 탄다. 앞바퀴는 하나, 뒷바퀴는 2개다. 그를 ‘세 바퀴의 레이서’라 부르는 이유다. 2020 도쿄패럴림픽 티켓을 아쉽게 놓친 김용기는 극적으로 패럴림픽 쿼터를 따내며 파리에 왔다. 트라이-사이클 한국 선수로는 첫 패럴림픽 출전의 역사를 썼다.
김용기는 출생 직후 뇌병변장애를 입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두발자전거를 배울 만큼 의지가 강했다. 20대 후반에야 검정고시를 통해 나사렛대학에 진학한 그는 재활을 위한 운동을 하다가 사이클을 접했다. 그리고 불혹이 돼 마침내 패럴림픽에 나서게 됐다.
이도연은 9월 3일 도로사이클 여자 도로독주(타임 트라이얼) 스포츠등급 H4-5 경기에서 14.1㎞ 코스를 28분 36초 01의 기록으로 통과해 13명 중 11위에 올랐다. 스무 살에 사고를 당해 하반신 장애가 있는 이도연은 뒤로 누운 채 팔로 페달을 굴리는 핸드사이클로 경기에 나섰다.
이도연의 별명은 ‘철의 여인’이다. 5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꾸준히 국내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선 노르딕 스키에 출전하기도 했다. 패럴림픽만 네 번째다. 세 딸의 응원을 받으며 이번 대회에 출전한 그는 “딸이 임신해 내년에 할머니가 된다. 할머니가 돼도 출전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박지현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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