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스라이팅’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어머니의 ‘밥스라이팅’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혜진아, 저녁 먹어야지.” “어머니, 저 회사에서 밥 먹고 왔어요!” “내가 고등어조림 했는데 기가 막혀. 쬐끔만 더 먹어봐.” “아…, 안돼요 진짜!”
배부른 자랑 혹은 푸념일지 모르겠다. 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시어머니와 같이 산다. 몇 년 전 집을 지었다. 우리 집이 일층, 어머니네가 위층이다. 일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고 싶어 고민하던 내가 시어머니에게 “같이 살자”고 덜컥 말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남들은 보통 친정 엄마 근처로 이사를 간다지만 난 시어머니가 더 편했다. 평생 사업하고 일한 어머니는 워킹맘인 내 맘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아이 낳고 복귀하는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옷 멋있게 입고 가. 애 낳은 티 내지 말고.”
딱 하나, 그래도 고충이 있다. 어머니는 날 보면 자꾸, 끊임없이, 뭔가를 먹이려 한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위층으로 부른다. 달걀찜, 생선구이, 닭날개구이….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얼마나 맛있는지. 한 그릇을 싹싹 비우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머니는 슬쩍 밥 한 공기를 더 들이민다. “좀만 더 먹어.” “어머니, 저 배불러요!” “일하느라 힘들었잖아. 국이랑 달걀찜은 살 안 쪄.”
이른바 ‘시엄니표’ 밥스라이팅(밥+가스라이팅)이다. 어머니와 사는 동안 ‘다이어트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요)’이다. “저 살 빼야 돼요, 진짜 그만 주세요.” 해도 소용없다. “너 요즘 피곤해 보이는데 그게 다 밥 적게 먹어서 그래. 얼른 먹어라.”
어머니가 해준 밥을 안(덜) 먹기 위해 밖에서 먹고 왔다는 거짓말도 해봤지만 이도 안 통했다. “집밥을 먹어야지. 좀만 줄게. 요만큼은 절대 살 안 찐다.” “….”
나만 이런 고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외국계 회사 임원으로 일하는 A도 비슷했다. 그도 시어머니와 같이 산다. 어머니가 계속 챙겨주는 음식을 받아먹다 감당할 수 없이 살이 쪘다고 했다. “출근 때마다 떡이며 과일이며 과자며 야채 갈아 만든 주스까지 잔뜩 싸서 가방에 넣어주시는데 정성스러워서 버릴 수도 없잖아?”로 시작된 A의 하소연은 끝이 없었다. 한번은 아침에 운전하며 싸준 음식을 억지로 다 먹다 꽉 막힌 도로에서 화장실이 급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울었단다. 겨우 눈에 띈 커피전문점 주차장에 차를 ‘끽’ 세우고 직원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를 외친 후 화장실로 뛰어가 화를 면했다고. 그날 저녁 퇴근해서 “며느리가 화장실 못 가서 죽은 사람으로 뉴스에 나올 뻔했어요! 먹을 것 좀 그만 싸주세요!”라고 외쳤다는 대목에선 그만 웃다 데굴데굴 구를 뻔했다.
“그치만 안 변해. 퇴근하면 하다 못해 오이라도 깎아놓고 앉아서 쳐다보셔. 어쩌겠어, 그게 부모의 마음인 걸?” A의 결론이었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서 젤 좋은 시어머니와 사니 이쯤은 감당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퇴근한 그날 밤, 어머니가 또다시 은근하게 날 불렀다. “찰옥수수 쪄놨어. 옥수수는 살 안 쪄.” “아악… 어머니, 살 안 찌는 음식은 없어욧!”


송혜진
장래희망이 ‘퇴사’인 20년 차 신문기자.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나 싶다가도 그래도 ‘질문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종종 생각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