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청와대에 한국문학 숨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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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춘추관’ 전시 국립한국문학관 문정희 관장
이상·염상섭·현진건·윤동주. 한국문학계를 대표하는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청와대 인근 서촌 일대를 거닐며 작품 활동을 펼친 점이다. 자연과 도시가 맞닿은 서촌 일대에서 키운 문학적 감수성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꽃피운 것인데, 대한민국 영욕의 현대사를 품은 이 지역에 한국문학의 숨결이 아로새겨져 있기도 한 것이다.
그 숨결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리얼리즘문학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염상섭·현진건, 근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투시했던 이상, 영원한 젊은 시인 윤동주의 대표작 표지 장정, 삽화에서 고뇌했던 시간, 시대의 아픔, 사랑과 우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번 전시를 주최한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의 소회는 남다르다. 청와대가 국민 곁으로 돌아갔듯 한국문학도 국민과 향유하길 바라는 열망이 깊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숨 쉬는 문장이야말로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청와대와 한국문학과 국민이 함께하는 이 자리가 더 소중한 이유다. 문 관장은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해 50년 이상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온 현역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문인에게 듣는 100년 전 문인들의 이야기는 한층 흥미로웠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에서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 전시가 열리니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오랜 시간 청와대가 정치사적 맥락에서만 이해돼왔지만 청와대와 인근 서촌·북촌 일대는 한국문학 차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한국문학의 근간이 되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고 고전시가의 대표인물 송강 정철을 비롯해 조선 후기에는 중인계층의 위항문학이 꽃피웠던 곳이기도 하죠. 근대문학 시기에도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서촌 지역의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뿐만 아니라 북촌 지역에도 한용운, 박종화 등 유수한 작가들이 활동했어요. 청와대가 국민에게 돌아왔듯 한국문학도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립한국문학관의 첫 전시를 국민과 함께 시작한다는 지점에서도 춘추관 특별전시가 매우 뜻깊습니다.
관장님은 1969년 시인으로 등단한 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문학인으로서 바라본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는 어떤 인물인가요?
이상은 당대 문학계에서 전위의 선봉장이었으며 예술의 최첨단에 섰던 인물이에요. 지금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죠. 염상섭은 집필활동 시기 내내 전성기를 보낸 작가였습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끊임없이 문제작을 쏟아내며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시대의 모순을 이야기했고요. 현진건은 사실주의 작가였다는 점에서 염상섭과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염상섭이 비판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면 현진건은 하층민과 우리 민족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가예요. 현진건은 반어와 역설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모순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윤동주는 영원한 청년 시인이자 우리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시인이죠. 그의 순수한 마음과 이상에 대한 동경이 우리의 20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거예요. 네 명의 작가와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나혜석입니다. 나혜석은 염상섭과 교류하기도 했지만 한국 여성주의문학에 첫걸음을 내디딘 작가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유화전을 연 근대 여성화가죠. 문학과 미술, 삽화 그리고 여성운동가로서 나혜석의 모습을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상을 작가로만 알았는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본인 소설 ‘날개’ 삽화를 직접 그린 점이 흥미롭더군요.
이상은 자신의 소설 ‘날개’ ‘동해’뿐 아니라 김소운의 ‘아동세계’ 삽화를 그렸어요. 이상(李箱)이란 필명(본명 김해경)도 친구인 화가 구본웅이 선물한 ‘오얏나무(李) 화구상자(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탁월한 재능을 지녔습니다. 이상은 ‘물 속 오랑캐’라는 뜻의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삽화가 활동을 했어요. 친구 박태원은 ‘애욕’이라는 소설에서 이상을 모델로 한 ‘하웅’이란 화가를 등장시키기도 했죠. 박태원 역시 삽화를 많이 그렸는데 소설 ‘제비’ ‘적멸’ ‘반년간’ 삽화가 대표적이에요. 이런 지점들을 포착해나가며 한국 근대문학의 풍요로운 재미를 더 많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문인들이 활동했던 당시 청와대 인근은 어떤 풍경이었을까요?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서울을 보면 20세기 초 서울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어렵죠. 현진건과 염상섭의 집은 사라졌고 이상이 살던 집은 필지가 나눠져 현재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고요. 하지만 문학작품 속에는 당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변영로의 <명정 40년>에는 염상섭이 술 취해 이 일대를 갈 지(之)자로 걷는, 말 그대로 횡보(橫步, 염상섭 호)하는 모습이, 윤동주의 수필 ‘시종’에는 누상동에서 연희전문대학교로 통학했던 모습이 남아 있죠. 이상의 경성고등공업학교 동기들의 회고록에 의하면 인왕산에 함께 오르는 것을 즐겼다고 해요. 모두 이곳에서 문학적 감수성과 열정을 키워 창작했을 거예요.
전시 특별프로그램으로 오은, 황인찬, 정여울 등 오늘의 작가가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등 어제의 작가에 대해 대담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어떤 취지로 준비한 건가요?
과거 문학과 현재 문학을 나눈다는 것엔 공감하기 어려워요. 작가들은 언제나 시대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존재니까요. 새로운 창작은 언제나 과거와 대화 속에서 이뤄집니다. 과거 작가들을 ‘지금, 여기’로 호명할 때 현재 문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동시에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요. 오늘의 젊은 작가들이 과거 작가들을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것이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지점을 골라 본다면?
장승효 작가의 미디어아트를 많은 관람객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롱 리브 더 라이터(Long Live The Writer)’라는 제목으로 윤동주와 이상의 초상을 미디어아트로 꾸민 작품이에요. <문학사상>이 오랜 기간 동안 문인들의 초상을 활용해 문예지 표지화를 꾸몄는데요. 장승효 작가의 이번 작품은 문인들의 초상이 단순히 아날로그, 즉 책의 표지화로 꾸며지는 것을 넘어 디지털시대의 미디어아트로 진화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봅니다.
2022년 10월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취임하며 시인으로서 일상에 변화가 생겼겠군요.
처음에는 비상근직으로만 생각했는데 진행할 일이 쌓여 있더군요. 그렇지만 모든 순간에서 한국문학과 깊은 만남이 흥미로워요. 훼손된 고서 복원사업이나 해외로 유출된 자료를 가져온 분들의 역사를 보면 감동적인 게 많고요. 시인으로서 읽고 쓰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 고독과 자유가 사라진 점은 아쉽죠. 평소 아침저녁으로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거든요. 관장 임무를 하고 있을 때 메모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자리의 무거움을 생각합니다.
2019년 출범한 국립한국문학관이 많은 문인들의 숙원사업이었다고요?
한국문학은 1900년대 시작된 근현대문학 이전에도 역사가 깊어요. 우리도 문학관을 통해 문학을 잘 보존하고 분류해서 모아둘 필요가 있었죠. 고 하동호·김윤식·김용직 선생이 기증한 수많은 장서와 이문구·김소운 작가가 기증한 원고들을 보고 있자니 한국문학관이 존재할 이유를 명확히 느낄 수 있더군요. 문학은 한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의 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심장이 상징하는 정신적 위대함, 흔적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일제강점기나 전쟁을 겪으면서 늦어진 거죠. 이제 어느 정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기가 됐고 한국 문화예술 전반이 세계에서도 열기를 내뿜을 때가 됐어요. 우리 문학관은 근현대문학 자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전문학 자료들도 수집하고 있어요. 아마 개관할 때 즈음엔 많은 분들을 깜짝 놀라게 할 고전문학 콘텐츠들이 수집되지 않을까 싶네요.
완성된 공간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데 고속도로처럼 어느 시점에 완공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국문학이 살아 있고 발전하는 한 끝없이 새로 채워지고 그 존재가 크게 빛날 때 비로소 완공인 거죠.
50년 이상 아침저녁 글 쓰는 삶을 살아온 점이나 2022년에는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를 출간할 만큼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글을 쓰는 원동력이 무엇인지요?
반가운 질문이네요. 우리가 잘 아는 청록파, 생명파 등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어를 쓰지 못했지만 저는 해방 이후 세대예요. 한글과 태극기 아래서 학교를 다녔고 시를 쓰며 고등학생 시절 백일장을 휩쓰는 소녀가 됐어요. 요즘 같으면 아이돌인 셈이죠. 대학교 재학 중 등단해서부터 지금까지 속도와 물량주의 속에서 살아 왔어요. 문학은 속도와 자본에 대한 가치가 아니에요. 정신에 대한 가치고 느리고 침묵하고 사색적이죠. 그런 가치를 지키는 건 쉽지 않았어요. 독자들이 많은 사랑을 전해줘 힘든 과정 속에서도 가능했을 거예요. 현재 시집 14권이 11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얼마 뒤면 중국 인민문학출판사에서 6년 동안 기다리던 시집이 나와요. 여러 긍정적인 정황이 제 문학 삶에 일어나고 있는데 어느새 중견을 넘어 원로시인이 된 게 실감나지 않네요.
긴 시간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등단 초기에 썼던 시와 요즘 들어 쓰는 시의 맛은 깊이가 다를까요? 이를 테면 겉절이와 익은 김치 같은 느낌이랄까요?
시인으로서 저는 매번 다른 순간으로 태어나고 다른 얼굴로 얘기합니다. 요즘의 겉절이를 할 수도 있어요. 자칫 길들여진 작가일 뻔했는데 문학관을 통해 각도가 바뀌었어요. 새삼스럽게 저를 확인하고 선배들의 유작에서 다른 가치를 보면서죠. 작가의 죽음은 몸이 아닌 작품이 죽을 때 행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죽은 뒤에도 작품이 더 긴 삶을 누리면 좋겠지만 그건 다음 사람들의 이야기겠죠. 시간의 잣대에 맡기고 저는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끝으로 새해에 어울리는 희망찬 시를 권해달라고 했다. 문정희 관장은 ‘희망’을 직접 입에 올리기보다 문학의 언어로 답했다.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가 일제강점기 때 고통 속에서 극도의 상처를 입었지만 그들의 언어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고. 진정한 가치는 어떠한 질곡의 시간을 거쳐도 끝내 빛을 낸다는 의미였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담담히 걸어가리라 읊조린 윤동주의 마음이 떠올랐다. 생명력을 잃지 않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 뿌리내린 보석 같은 언어, 그 자체가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 청와대에서 그 희망을 만날 수 있다.
선수현 기자
국민 품에 안긴 청와대, 문화예술역사공간으로
청와대에 이토록 많은 방문객이 다녀간 적이 있었던가. 2022년 5월 10일 청와대를 개방한 지 한 달 만에 관람 인원은 77만 명을 돌파했고 2022년 말까지 누적 276만 명이 청와대에 발걸음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따라 활짝 열린 청와대가 국민 품에 안긴 결과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기자송고실과 기자회견장으로 활용하던 춘추관은 갤러리로 거듭났다. 2022년 8월 첫 전시인 장애예술인 특별전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는 7만 명 넘는 관람객이 방문할 정도로 흥행했다. 이번에는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 특별전이 열려 청와대와 한국문학과 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시는 ▲1부 ‘횡보 염상섭과 정월 나혜석, 달빛에 취한 걸음’ ▲2부 ‘빙허 현진건, 어둠 속에 맨발로’ ▲3부 ‘이상,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 ▲4부 ‘윤동주, 젊은 순례자의 묵상’ ▲5부 ‘문학과 함께한 화가들’로 구성됐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1월 16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전시기간 동안 매일 전문 안내원(도슨트)의 작품 해설도 준비돼 있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
청와대 개방 축하공연
2022년 5월 10일
● 국가무형문화재 농악단의 신명 한마당
● 줄타기연희단의 전통 줄타기 공연
● 밴드 두번째달의 퓨전 음악 공연
● 무사등용 의식 재현 및 정악 공연
KBS <열린음악회> 27년 만에 열려
5월 22일
● 피아니스트 임동혁, 전통 예술단체
소나기프로젝트, 소리꾼 김율희 출연
● 관람 신청자 2만 9237명, 경쟁률 약 20대 1
장애예술인 특별전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
8월 31일 ~ 9월 19일
● 관람객 7만 2000여 명 방문
주말이면 공연장이 되다
10월 매주 주말
● 토요일 - 가야금·해금·타악기 등 퓨전 국악 공연
● 일요일·공휴일 - 버블카 퍼레이드, 드로잉서커스 등 거리예술 공연
‘청와대 가을을 물들이는 K-클래식’
11월 1 ~ 11일
● 피아니스트 김선욱·선우예권·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공연
문학특별전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
12월 22일 ~ 2023년 1월 16일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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