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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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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주목받는 열쇳말(키워드)은 단연 ‘탄소’가 아닐까 싶다. 세계 각국은 현실화된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일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만들자”라는 약속 아래 국가마다 목표치를 설정해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도 2022년 10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켜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40% 줄이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신기술 개발을 포함한 산업구조의 전환, 국토의 저탄소화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탄소가 비난받아야 할 나쁜 원소가 아닌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원소라는 것이다. 탄소는 지구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생명체가 살아 숨 쉬도록 해준다. 그런데 왜 탄소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이토록 심각해진 것일까?
탄소(C. 원소번호 6번)는 모든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 중 18.5%가 탄소이다. 산소 다음으로 많은 질량이다. 현재 알려진 원소는 118개. 이 가운데 생명 현상을 가능하게 해줄 정도의 화학적 다양성을 가진 원소는 탄소뿐이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탄소는 생명의 원소다
탄소 원자 한 개는 최대 네 개의 원자와 결합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다양한 원소들과 결합해 수많은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가장 대표적 탄소화합물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물이다. 유전자(DNA), 단백질, 탄수화물, 포도당 등이 탄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탄소 없이는 생명 현상 자체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탄소화합물은 1000만 개 정도. 탄소를 ‘원소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구의 탄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순환하면서 균형을 유지한다. 대기에 있는 탄소 대부분은 이산화탄소 형태로 존재한다. 두 개의 산소와 결합하는 ‘산화’ 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CO2)로 전환하는데 이 이산화탄소 형태로 약 7500억 톤의 탄소를 포함하고 있다. 대기의 이산화탄소는 녹색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흡수된다. 자신의 영양분인 탄수화물을 만드는 식물의 광합성은 대기로부터 매년 약 120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는 동물은 식물에 함유된 이 유기물을 먹어 생명을 유지한다.
동물들에게 흡수된 탄소는 호흡을 통해 일부가 이산화탄소로 배출돼 다시 대기로 돌아간다. 또 동물 사체 속의 탄소는 오랜 세월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나 석탄 같은 탄소화합물이 된다. 탄소화합물로 된 화석연료는 연소 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배출한다.
이산화탄소는 물에 잘 녹는다. 따라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생태계적 장치는 물, 바다다. 수면이 넓을수록 이산화탄소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데 바다는 지구 수면의 75%가량 차지하고 있어 가장 규모가 크고 흡수력이 대단하다.
바닷물에 녹은 이산화탄소는 탄산염 이온 형태로 존재한다. 조개나 굴처럼 껍데기를 가진 해양 생물은 이 탄산염을 흡수해 껍데기를 만든다. 산호 또한 바닷물 속에 용해된 탄산염과 칼슘을 흡수해 탄산칼슘으로 바꾸고 이를 내뿜어 자신의 딱딱한 외골격을 만든다. 조개껍데기 등의 탄산칼슘이 깊은 해저에 퇴적되면 석회암 같은 암석의 형태로 저장되기도 한다. 석회암은 지구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물질이다. 암석 형태로 존재하는 탄소가 지구에 있는 탄소량의 99.9%를 차지한다.
한편 지구의 맨틀에는 지구가 형성될 시기에 저장된 탄소가 있다. 이 탄소는 화산 폭발을 통해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대기로 방출된다. 탄소는 이처럼 대기권에서는 이산화탄소, 지권에서는 화석연료나 석회암, 수권에서는 탄산염 이온, 생물권에서는 생물의 몸을 이루는 물질로 균형 있게 자리잡아 지구를 순환한다.

모두가 동참할 달성 가능한 정책을
탄소의 순환은 지구 역사의 초기부터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땅속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어야 할 화석연료를 강제로 꺼내 태우기 시작했다. 탄소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 형태로 대기에 배출된 것이다. 게다가 산림 파괴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마저 줄어들면서 결국 지구 탄소 순환의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의 지구온난화는 탄소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탄소를 함부로 썼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온실효과는 대기 중의 온실 기체가 지표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흡수해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대기(공기) 중에서 질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78%, 산소는 21%다. 두 개의 서로 같은 원자로 이뤄진 질소(N2)나 산소(O2), 0.93%를 차지하는 아르곤(Ar) 같은 단원자는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는다. 반면 서로 다른 세 개 이상의 원자로 구성된 이산화탄소, 메탄(CH4), 아산화질소(NO2), 프레온(CFC) 등은 적외선을 붙잡는 능력이 있어 온난화를 일으킨다. 공기 중의 약 0.04%에 불과한 이들을 온실가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전체 온실가스 중에서도 양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 기여도가 약 74%다. 이산화탄소는 100개의 공기 분자 중 한 개만 있어도 지구 평균 기온이 100℃에 도달할 정도로 강력한 온실효과를 낸다. 자연에 의한 온실효과는 인류가 따뜻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 적외선 에너지는 모두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 전 지구 평균 지상 기온이 영하 18℃로, 지구가 얼음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의한 온실효과는 기후 위기라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의 어느 나라든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계획처럼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의 시각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계에서도 비용, 시간, 능력 등을 이유로 ‘2050 탄소중립’의 목표가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극명하게 엇갈리는 입장도 포용해 정부와 기업, 국민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참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탄소중립 정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형자_ Newton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쉽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저서 다수.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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