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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당신의 영혼에 휘몰아치는 조용한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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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팝 음악’으로써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로 케이팝의 확장이 필요하다. 정책브리핑은 케이팝의 발전과 음악감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중음악의 다채로운 장르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콰이어트 스톰’이라는 명칭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름, 혹은 라디오 프로그램 포맷으로 시작됐다.

콰이어트 스톰의 특징을 거칠게 축약하면 재즈에 영향받은 부드럽고 낭만적인 R&B, 소울 정도로 말할 수 있겠는데, 이는 느리고 편안한 리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심야 시간에 라디오에서 재생됐다.

1976년, 대학생이었던 멜빈 린지는 라디오 방송국 WHUR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어느 날 메인 DJ가 자리를 비우면서 멜빈 린지가 그 공석을 담당하게 됐고 이후 R&B와 소울을 기반으로 한 듣기 편안한 곡들을 선곡했다.

이런 선곡에 청취자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결국 자신의 프로그램을 따로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그램 이름을 가수 ‘스모키 로빈슨’의 1975년도 앨범 에서 가져온다.

멜빈 린지가 약 4시간에 걸쳐 심야 시간 동안 방송하는 이 소울풀한 음악들은 친밀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제공했고 이 곡들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분위기는 청취자들을 너무도 쉽게 매혹시켜냈다.

당시 미국 도시의 라디오 방송은 보통 심야시간을 비워 뒀지만 멜빈 린지의 ‘콰이어트 스톰’으로 인해 몇 년 사이 미국 전역의 거의 모든 방송국이 심야시간에 흑인 음악 중심의 프로그램을 편성할 정도로 이 포맷은 인기를 끌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지역 방송국 경우 24시간 내내 콰이어트 스톰을 방송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토대로 콰이어트 스톰은 R&B의 하위 장르로 간주되었다.

고전적인 재즈와 관능적인 그루브, 그리고 친밀한 주제와 세련된 가사를 지닌 매혹적인 노래들이 우아하게 심야 시간을 수놓았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콰이어트 스톰은 스모키 로빈슨의 앨범 제목에서 가져왔다. 모타운의 혁신가 스모키 로빈슨은 미라클스를 해체시키고 솔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는 당시 인종차별 및 사회 문제를 노래했던 커티스 메이필드, 슬라이 스톤, 제임스 브라운과는 결을 달리했다.

그러니까 마빈 게이가 ‘What's Going On’이라는 노래로 바깥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모키 로빈슨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려 했다.

당시 소울 앨범들 중에는 대체로 정치적인 작업물들이 고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는데 스모키 로빈슨의 성숙하고 획기적이었던 작업물 은 1999년 무렵 Q 매거진이 꼽은 가장 위대한 모타운 앨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모키 로빈슨이 지난 6월 16일 목요일 뉴욕 메리어트 마퀴스 호텔에서 열린 제51회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인덕션 및 시상식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Invision/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콰이어트 스톰은 미국 흑인 중산층 인구가 증가하고, 더불어 흑인 부자와 빈곤층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던 시기에 번성했다.

인종 차별 철폐와 민권 운동이 진행되면서 점차 흑인 중산층이 형성되었는데, 콰이어트 스톰 트랙들의 가사에는 무거운 정치적인 내용 같은 것은 없었고 흑인의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거리를 유지했다.

교외에 사는 중산층 흑인 인구는 1970년에서 1986년 사이 두배로 늘어났고 대학에 다니는 흑인의 수는 1960년에서 1977년 사이에 500% 증가했다.

흑인 소비자들이 강력한 구매층으로 새롭게 급부상하면서 흑인 소유의 사업 또한 번창했고 이들이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흑인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 또한 늘어났다.

깨끗한 고음질의 스테레오 FM 라디오 신호, 그리고 하이파이 스피커의 보급 또한 콰이어트 스톰의 움직임에 불을 붙였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은 경제적 불평등과 흑인의 탄압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 콰이어트 스톰은 정치와 마찰로부터의 일종의 도피처가 됐다.

이 노래들은 평범함과 안정감을 선사했고 마치 흑인들을 안심시켜내는 듯한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콰이어트 스톰을 비난하는 흑인들 또한 있었다.

이들은 이 노래들이 사회 현실로부터의 무의미한 도피 혹은 후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이거노믹스가 흑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격차를 넓혀가던 상황 속에서 그저 현실에 안주하라 최면을 거는 노래일 뿐이라며 빈정대기도 했다.

이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간에 결국 흑인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구매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70년대의 ‘배리 화이트’, ‘빌 위더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도 콰이어트 스톰의 흐름이 유지됐다. ‘루더 밴드로스’라는 거물이 등장했고 ‘아니타 베이커’와 ‘샤카 칸’, 그리고 ‘샤데이’가 제각기 활약해갔다.

물론 90년대에도 ‘토니 브랙스턴’이나 ‘어셔’를 통해 계승됐지만 힙합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젊은 청중들에게서는 멀어졌다.

흑인 중산층을 위한 콰이어트 스톰이 사라지면서 다시금 갱스터, 혹은 길거리를 배회하는 거친 흑인들이 흑인 음악 씬의 중심부를 탈환했다.

그리고 1992년, 콰이어트 스톰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던 멜빈 린지가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해 36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슬로우 잼’이라는 이름 하에 결이 비슷한 R&B들이 새롭게 업데이트 됐다. ‘미겔’같은 이들은 실제로 콰이어트 스톰을 거론하면서 이 분야의 부활을 넌지시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시작된 지 수십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콰이어트 스톰 형식의 심야 라디오 방송은 고정 층을 유지해내고 있으며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의 핵심 포맷으로써 남아 있다.

콰이어트 스톰은 예술이나 급진성 보다는 팝이나 보편성에 닿아 있었다. 이지 리스닝과 쉽게 혼동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뭔가 인간의 내면, 혹은 영혼을 탐구해가는 듯한 뉘앙스가 있었다.

그러니까 콰이어트 스톰은 그 시대의 R&B와 소울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게끔 존재하는 일종의 우산과도 같았다.

수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소울을 들으며 휴식을 취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었던 아름다운 소울에 마음을 뺏기기도 했다.

여전히 누군가는 깊은 밤보다 어두운 소울 뮤직을 최적화된 분위기 속에서 듣기 위해 자정이 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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