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갈등 넘어 소통과 화해의 춤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2022년을 마무리하는 달인 12월 첫째날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열린 모로코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풍자와 해학’으로 지친 서민의 시름을 달래준 한국의 전통 가면극 탈춤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오른 것이다. 등재 명칭은 한국어 발음 ‘탈춤’을 영문으로 옮긴 ‘한국의 탈춤’(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이다.
이번 등재로 한국은 총 22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탈춤은 무형문화유산 제도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1960년대부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한국인에게는 무형유산의 상징으로 인식돼온 종목이기 때문에 이번 등재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유네스코가 등재 결정문에서 밝힌 따끈따끈한 주요 등재 사유를 함께 살펴보면 기쁨이 배가 될 것 같아 아래 발췌했다.
“탈춤은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역할 이외에도 지역 방언과 지역 민요를 포함함으로써 지역의 정체성 강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탈춤 공연은 지역 축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략) 전통 탈춤 공연은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적 신분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들이다. 탈춤은 전승 지역의 문화 정체성에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중략) 탈춤 등재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전통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무형유산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민중의 삶과 의식 구체적 묘사
한국의 탈춤은 조선시대 성행했던 가면 놀이다. 조선 전기 각 지역에서 연행되다가 17세기 중반 궁궐 주관 아래 산대(민속놀이를 하려고 마련한 무대)에서 주로 상연됐으나 인종 12년인 1634년 궁중 공연이 폐지되면서 민중에 유입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탈춤은 춤과 음악, 노래, 연극의 모든 요소가 총망라된 종합예술이다. 정식으로 차려진 무대가 아니더라도 배우와 관객만 있으면 공터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다. 탈춤의 주요 내용은 부조리한 사회 이슈와 윤리적 모순 등을 주제로 했다. 여기에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재치 있게 풀어내면서 배우와 관객이 소통했다. 탈춤은 배우의 드라마뿐만 아니라 관객의 동조와 호응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소통 예술의 특성을 보인다.
한국의 탈은 모양이 귀엽거나 예쁘다기보다는 기괴하다는 인상을 준다. 너털웃음을 짓는 하회탈조차도 다소 과장된 주름과 표정에 깜짝 놀랄 때가 있을 정도다. 왜 그럴까. 공연에 사용하는 탈은 배우가 자신을 감추고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도구다.
한국의 탈을 종류별로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 자신이 일생 짓게 되는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챌 것이다. 인간의 표정을 감추려고 쓴 탈이 인간 내면의 솔직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탈춤에 사용되는 가면은 바로 한국 민중의 삶과 의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갈등 넘어선 조화의 전통유산
한국의 탈춤은 총 18개 무형유산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봉산탈춤과 북청사자놀음, 하회별신굿탈놀이, 양주별산대놀이, 통영오광대 등이다. 맛보기로 봉산탈춤을 한번 들여다보자. 강령탈춤과 함께 해서(海西)탈춤의 대표 격인 봉산탈춤은 황해도 일대에서 추어오던 탈춤이다. 중부지역의 양주별산대놀이와 견줘 볼 때 뛰어노는 춤이 많아 굉장히 활달하고 씩씩하며 빠른 템포의 특징을 갖고 있다.
탈도 사실적 외관을 하고 있다. 봉산탈춤은 몰락한 양반과 하인, 무당, 파계승, 서민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권선징악을 주제로 익살스러운 재담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한다. 무속과 불교신앙적 색채도 가미돼 있지만 종교적 의미는 크지 않고 민중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오락적 요소가 풍부하다.
한국의 탈춤은 언뜻 부조리와 갈등을 공론화하고 단순히 이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기서 더 나아가 화해의 춤으로 마무리한다. 갈등을 넘어선 화해와 조화의 전통유산이라는 문화예술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는 관객과 적극적으로 환호와 야유를 주고받으며 양반과 사회의 문제를 호되게 비판하지만 마지막으로 흐르면서는 모두가 더불어 하나되는 세상을 지향하는 상호 존중의 유쾌한 공동체적 퍼포먼스로 극을 흐르게 한다. 상대의 말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는 요즘 세태에 신명 나는 탈춤 한마당을 펼쳐 보이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건 어떨까.
김정필 <한겨레>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