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녁 산사 종소리에 삶의 등짐 내려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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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광주광역시에서 보내고 있다. 낮에는 더위가 무서워 감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었다. 하루가 저물고 더위도 힘이 빠질 때쯤 이른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다. 지글거리는 도로를 벗어나 산길에 접어든다. 오후 여섯 시, 여의산에 있는 무각사에서 범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육중하게 쿠~웅 울리는 범종소리는 사람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한다. 그 여운이 오랫동안 허공중에 머물다 사라지려는 찰나 다시 두 번째 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에 이끌려 일주문을 지나고 사천왕문을 지나면 좌측에 종루가 있다. 그곳에서 한 스님이 종을 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스님 같다. 인사를 드렸더니 한국에 온 지 15년 됐다면서 자신이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한다. 한국사람이 된 것을 뿌듯해하는 것 같다.
이징(李澄, 1581~?)이 그린 ‘연사모종(煙寺暮鍾)’은 ‘해질녁 산사의 종소리’라는 뜻으로 번역된 작품이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은 산과 산이 중첩된 장면을 장대하게 묘사했는데 그 사이사이를 구름과 안개로 채워넣어 공간감과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화면은 좌측이 무겁고 우측이 가볍다. 그래서 좌측은 무게감과 운동감이, 우측은 평온함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만약 양쪽 다 무겁거나 가벼웠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죽도 밥도 아니었을 것이다. 전경에는 대각선으로 뻗은 언덕 위에 네 그루의 소나무를 그려 감상자의 눈길을 자연스럽게 폭포가 떨어지는 중경으로 연결시킨다.
이런 구도는 이징이 몇 세대 앞에 살았던 안견(安堅)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꿈틀거리는 듯한 산의 형태, 산등성이마다 짧은 선으로 점을 찍는 묘사법도 안견화법의 특징이다. 다만 이징은 안견의 화풍을 바탕으로 조금 더 구도를 복잡하고 다채롭게 변형시켰다. 아무튼 산세는 소나무가 서 있는 근경의 언덕을 중심으로 좌측 위로 향해 있는데 대각선으로 펼쳐진 산속 깊은 곳에는 구름 위에 지어놓은 듯한 사찰이 보인다. 누각에 범종이 매달려 있는 모습까지 꼼꼼하게 묘사했다. ‘연사모종’은 8폭으로 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의 한 폭이다. ‘소상팔경도’는 중국의 명소인 동정호(洞庭湖)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의 여덟 경치를 소재로 해 그린 산수화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림 소재였다.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산과 구름과 사찰이 어우러진 단순한 산수화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지팡이를 짚은 스님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스님은 속세로 연결되는 길을 뒤로하고 다리를 건너 사찰로 향한다. 스님이 향하는 곳을 따라 사선으로 향한 곳 끝에 사찰이 있다. 사찰에서는 지금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웅장하게 울려퍼지고 있을 것이다. 이징이 유독 누각의 범종을 크게 그린 이유도 지금 범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함이었다.
무각사는 예전 군부대가 주둔했던 상무대에 있는 절이다. 지금은 군부대가 이전하고 주변이 전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됐지만 무각사가 있는 곳은 산림이 그대로 보존된 채로 5·18기념공원과 연결돼 있다. 그 덕분에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깊은 산골에 들어온 듯한 청정함을 느낄 수 있다. 한여름 더위를 뚫고 지나가는 때 아무 생각 없이 무각사 대웅전 마당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푸드덕거리는 까치의 몸짓을 보기를 권한다. 무각사에 가면 한 생애 동안 무겁게 짊어지고 왔던 소금가마 같은 등짐이 물속에 들어가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듯한 가벼움을 느낄 수 있다. 아마 김소월이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하염없기도 그지없다’라는 시를 쓰게 된 것도 그런 체험 덕분이었을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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