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농장’을 ‘보호소’로 바꾼 시민들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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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돌보는 ‘아크보호소’
비닐로 덮인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귓전을 때리는 맹렬한 짖음이 시작됐다. 가까이 다가와달라는 건지 나가란 건지 알 수 없는 흥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큰 얼굴에 새까만 입, 주름진 이마, 울타리를 잡고 선 두툼한 발바닥과 근육이 울근불근한 누렇고 큰 몸, 그리고 이와는 딴판으로 일제히 아련한 눈빛들. 난생 처음 마주한 ‘도사견’의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갑작스러운 한파특보와 함께 겨울이 성큼 찾아온 12월 첫날 인천 부평구 계양산(계양구 목상동 산 37번지) 깊숙이 자리한 ‘아크보호소’(아크)를 찾았다. 이곳에선 대형견 150마리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이 도사견이다. 직원 김왕영 씨는 “공격성이 있는 개들도 있지만 순하고 겁 많은 개가 더 많다”고 했다. 개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덩치가 큰, 이름표에 ‘이 구역의 마동석’이란 설명이 쓰인 ‘칸’은 김 씨를 향해 연신 40kg에 육박하는 큰 몸을 비비며 애교를 떨어댔다. 낯선 생김과 달리 너무나 익숙한 그 몸짓은 여느 반려견과 다를 게 없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280마리에게 새 삶 선물
불과 2년 전까지 이곳은 ‘개 농장’이었다. 1992년부터 이 모 씨 부부가 빌려 불법으로 300마리가 넘는 개를 키웠다. 번식을 위해 개들은 암수 구분도 없이 철로 된 뜬장에 마구잡이로 던져졌다. 그 속에서 추위와 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주린 배를 썩은 음식물 쓰레기로 채우며 버텼다.
태어남이 곧 죽음이었던, 고기가 될 그날에야 뜬장을 벗어날 수 있었던 개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건 시민들이었다. 2020년 4월, 계양산에 왔다가 우연히 개 농장을 발견한 한 시민이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개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당시 개 농장엔 계양구청의 철거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이 씨 부부는 매일 개들을 도살장으로 빼내고 있었다. 빨리 개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 동물권단체 ‘케어’가 농장주를 설득해 개들에 대한 소유권을 받아냈고 위로금 명목으로 3300만 원을 내줬다. 미국에 거주하는 케어의 한 회원이 보내온 돈이었다.
그 뒤 네 명의 봉사자를 주축으로 시민들이 30년 가까이 굳게 잠겼던 뜬장의 문을 열어젖혔다. 2020년 7월, 아크의 전신인 ‘롯데목장 개 살리기 시민모임’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민들은 갈 곳 없는 개들을 위해 직접 울타리를 둘러쳤고 280마리 개가 난생처음 맨땅을 밟았다. 시민모임을 주도한 김영환 아크 대표는 당시 상황이 “야전병원 같았다”고 회고했다.
“뜬장을 벗어나본 적 없는 개들은 문이 열려도 스스로 나오지 못했어요. 건강 상태도 무척 안 좋았죠. 오랜 뜬장 생활로 발바닥이 갈라지고 서로 물고 싸워 상처 입고, 암컷들은 반복된 임신과 출산으로 젖이 다 떨어져나갔어요. 더욱이 30~40kg에 달하는 개들을 받아주는 동물병원조차 없었죠. 의료 봉사자를 찾고 수십 년에 걸쳐 딱딱하게 굳어버린 배설물을 치우고 모든 걸 시민들이 직접 했어요. 매일 280마리에게 사료를 주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어요. 그릇을 써본 적 없는 개들은 밥과 물을 엎어버리기 일쑤였고 바닥에 깔아준 볏짚은 똥오줌과 섞여 견사는 금세 엉망이 돼버렸죠. 계양산은 인천 시내보다 7℃ 정도 기온이 낮은데 날이 추울 땐 손이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어요.”
철거 위기 앞두고 구청 상대 소송서 이겨
급한 대로 울타리는 둘렀지만 비가 올 땐 속수무책이었다. 지붕을 설치하려 했지만 계양구청에서 보호소 부지가 개발제한구역이라 어떤 시설물도 설치할 수 없다며 막아섰다. 거센 비가 내리치던 날, 잔뜩 웅크린 채 온몸으로 비를 맞는 개들을 지켜보던 봉사자들은 내리는 비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았더랬다. 2020년 겨울을 앞두고 후원금 2000만 원을 모아 시민들이 직접 비닐하우스를 설치한 뒤에도 구청은 아크가 토지 형질을 변경해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위반했다며 철거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2년여간 이어진 아크와 계양구청 사이의 법적 다툼을 막은 건 법원이었다. 아크가 구청을 상대로 낸 시정(철거)명령 등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인천지방법원은 2022년 10월 아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보호소 설치가 토지 형질 변경에 해당하지 않고 설령 해당한다 해도 철거 명령이 과도하다고 봤다. 재판장은 “보호소 철거는 개를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와 동물보호법 입법 취지에 반한다”며 “시정명령은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행동의 자유를 침해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김영환 대표는 법원의 결정이 동물보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을 확장했단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법원은 동물보호에 관한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강조했어요. 그런데 앞서 계양구청은 토지이용이나 시설물 설치와 같은 개별 법 위반 사안에만 집중해 소극행정을 한 거죠. 보호소를 옮길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데 다른 지자체들 역시 꺼리는 상황이라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지자체 보호소만으로 국내 유기 동물을 다 감당할 수 없는 데다 민간 보호소가 학대 등 위기 동물을 앞장서 구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환경이 열악한 민간 보호소를 대하는 지자체의 근본적인 관점부터 달라져야 해요.”
해외 입양 늘리기 위해 개 이름 영어로 바꿔
2022년 여름 아크엔 또 다른 경사가 있었다. ‘체리’가 가족을 찾은 것이다. 국내 입양으로는 세 번째다. 봉사자들은 “체리의 입양은 육견협회가 그동안 끊임없이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르다’고 주장한 걸 깨부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크의 개들은 대형견인 데다 과거 식용견이었다는 편견 탓에 여전히 국내 입양이 무척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는 별개로 아크엔 사람과 접촉을 두려워하는 개도 많아 훈련이 필요하다. 김왕영 씨는 “견사 밖을 나오면 무서워 바닥에만 붙어 있거나 개 농장 시절 생긴 올가미에 대한 공포 때문에 목줄조차 못하는 개들도 있다. 사람과 자주 접촉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 봉사자들은 개들의 이름을 모두 영어로 바꾸고 있다. 대형견을 선호하는 해외로 입양을 더 늘리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100여 마리가 하늘길을 따라 가족을 찾아갔다. 8월엔 입양 전문 사이트 ‘다리(projectdari.com)’도 개설했다. 일곱 마리의 자식을 모두 입양 보내고 남은 어미 ‘휘슬러’, 늘 두 발로 서서 봉사자들을 반기는 ‘버디’, 아크의 우사인 볼트 ‘롬’ 등 입양이 가능한 스물네 마리의 정보가 올라와 있다. 입양이 어렵다면 일대일 결연을 통해 후원하거나 해외 출국 시 입양 절차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김 대표는 모든 개가 입양을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걸로 보고 있다. 입양 가지 못한 개들은 평생 안고 갈 거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매달 수천만 원에 달하는 유지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은 김 대표를 포함한 열 명의 아크 기획위원과 정기후원자 100여 명이 이를 감당하고 있다. 대부분 평범한 직장인과 학생이다. 다들 어쩌자고 이런 끝 모를 일을 시작했을까?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용기가 놀라웠다. 김 대표는 “간이 부었었다”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제가 하는 일 가운데 이 개들을 돌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개들과 함께 있으면 제가 더 커지는 느낌이에요. 저라는 한계를 벗어나 제가 우주만큼 커지는 기분이죠. 우리가 개들을 돕는 동안 개들도 우리의 사랑과 정의감을 더 확장시켰어요. 인간과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욕망을 가진 그들의 ‘동물권’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해요.”
봉사자들의 끓는 열정에도 계양산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한낮 최고 기온이 영하 1℃를 기록하던 날, 고무장화 속 발은 몇 분 만에 꽁꽁 얼어붙었다. 한겨울엔 견사 안의 흙바닥까지 다 얼어버린다고 했다. 이번 겨울에도 녀석들이 잘 버틸 수 있을까? 아크의 우사인 볼트 ‘롬’과 짧은 산책을 마친 뒤 돌아오는 길, 봉사자들이 모인 오픈 채팅방엔 가정에서 임시 보호를 받고 있는 ‘피터’가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롬이 더 자유롭게 달릴 수 있기를, 피터의 단잠이 금방 깨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들에겐 여전히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글 조윤 기자, 사진 아크보호소
동물복지 강화 기반 만든다
2024년 ‘동물복지법’ 마련
정부가 동물복지 강화를 위한 법적 추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현행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한다. 동물복지법을 마련, 동물을 기르는 양육자의 돌봄 의무를 강화하고 동물 학대를 막을 수 있도록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를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같은 내용의 동물복지 강화 전망과 전략을 담은 ‘동물복지 강화 방안’을 12월 6일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사람·동물 모두 행복한 하나의 복지(One-Welfare) 실현’을 비전으로 윤석열정부에서 중점 추진해나갈 동물복지 정책 방향을 3대 추진 전략과 77개 과제로 구성됐다.
우선 농식품부는 보호에서 동물복지 관점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한다. 기존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 체계로 개편하면서 학대 방지를 넘어 출생부터 죽음까지 생애주기 관점에서 동물의 건강·영양·안전, 습성 존중 등 동물복지 요소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민간 주도로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동물보호단체 등이 동물복지 교육·홍보, 동물 학대 현장 지원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다양한 협업사업을 추진한다.
건전한 반려동물 양육 등 동물복지를 기반으로 반려동물 관련 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전담팀(TF)을 구성하고 2023년 1분기까지 반려동물 관련산업 육성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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